연재 웹소설 <심연의 유산> 최신화
## 아홉 번째 별의 그림자
광활한 우주, 그 아득한 침묵 속을 아르테미스호는 끊임없이 미끄러져 나아갔다. 지구로부터 수십 광년 떨어진 미개척 심우주 탐사 임무는 길고도 지루한 정적의 연속이었다. 이서진, 과학장교인 그녀는 늘 그랬듯 홀로 함선 중앙 모니터 앞에 앉아 스크롤 되는 무미건조한 항성간 데이터들을 훑고 있었다. 지루한 숨을 내쉬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던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익—!
정적이 깨졌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메인 패널을 가르고, 이서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됐다. 스크린 한구석에, 분명히 비어있어야 할 좌표에, 거대한 에너지 신호가 붉은 점멸을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서진은 벌떡 일어섰다. 감지된 신호는 기존에 알려진 어떤 천체 현상과도 달랐다. 행성도, 항성 잔해도, 심지어 블랙홀의 중력 렌즈 현상도 아니었다. 파형 자체가 낯설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맥동.
“선장님! 박 대원! 최 대원! 긴급 상황입니다!”
이서진의 목소리가 함선 내부에 울려 퍼지자, 정적이 깨지고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강태민 선장과 박지훈 항해사, 최유리 의무장교가 속속 관제실로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이서진 과학장교?” 강 선장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침착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확인 에너지원입니다. 좌표는… 우리가 현재 탐사 중인 성도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곳입니다. 기존 스캔에서는 전혀 감지되지 않던 위치인데,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박지훈이 빠르게 콘솔을 조작하며 데이터를 분석했다. “믿을 수 없군요. 반경 수십만 킬로미터 내에 이런 규모의 물체가 숨어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파형은… 인공적인 것 같기도 하고, 자연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최유리가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에너지 방출량은요? 생명체 반응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에너지 맥동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요.” 이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쥐었다.
강 선장이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했다. 미개척 심우주. 예상치 못한 조우는 늘 가장 큰 위험을 동반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발견이기도 했다.
“진로 변경. 해당 좌표로 이동한다. 속도 최저. 모든 센서 가동. 비상 프로토콜 준비.”
강 선장의 명령에 함선 전체가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아르테미스호는 둔중한 금속음을 내며 새로운 항로로 머리를 돌렸다. 미지의 존재를 향해, 어둠 속으로.
수 시간 후, 그들은 미지의 존재와 마주했다.
모니터에 잡힌 것은 상상 이상의 광경이었다. 그것은 어떤 행성도, 유성도 아니었다. 거대한, 불가능한 규모의 구조물.
“맙소사…” 박지훈의 입에서 감탄사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빛을 흡수하는 듯한 완벽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너무나도 검어서, 주변의 별빛조차 그 검은 윤곽을 침범하지 못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찢겨나가 그 자리에 생긴 공허의 구멍 같았다. 하지만 그 구멍은 거대한, 기하학적인 형태로 굳어진 듯 보였다. 매끄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서진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감히 ‘아름답다’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와 경외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거대한 존재가 눈앞에서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자료 없음… 외계 구조물로 보입니다.” 이서진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건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어떤 지성체가 만들었다고 해도, 이런 규모와 재질은…”
“이해할 수 없는 기술력이다.” 강 선장의 목소리도 낮게 깔렸다. “모든 센서가 여전히 오류를 뿜어내고 있어. 가까이 다가갈수록 간섭이 심해진다. 내부 구조도, 에너지원도 파악 불가.”
그때, 최유리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다들 느껴지십니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이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함선 안은 평소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졌다. 피부 아래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한 소름. 그리고 머리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듯한… 낮은 울림. 마치 거대한 종이 아주 멀리서, 깊고도 느리게 한 번씩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는… 머리가 좀 지끈거리는 것 같습니다.” 박지훈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함선 내부의 공포지수 그래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서진이 불안하게 모니터를 가리켰다. 인공지능이 승무원들의 생체 신호를 분석해 산출하는 심리지수였다. 그래프는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었다.
“접근 중단. 현재 위치에서 정지.” 강 선장이 명령했다. “이서진 과학장교, 해당 구조물에 대한 추가 분석을 진행한다. 박 대원, 장거리 스캔 장치 최대 출력으로 가동해봐. 최 대원, 승무원들의 상태를 계속 체크해.”
모두가 각자의 임무에 몰두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자꾸만 메인 모니터 속 검은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 거대한 침묵의 존재가 뿜어내는 기묘한 압력은 함선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함선 내에는 숙면을 위한 최소한의 조명만이 켜졌다. 그러나 아무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이서진은 자신의 침대에서 뒤척였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라기보다는… 환각에 가까웠다.
어둠 속에서 무수한 별들이 차갑게 빛나는, 그 검은 구조물과 똑같은 형태의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공간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이서진은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존재 자체로 압도하는 거대한 침묵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아주 오래된, 수억 년의 시간을 품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
‘알고 싶으냐… 보라… 너희는 그저 한 조각의 먼지…’
목소리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이서진의 정신을 찢어발기는 듯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가 녹아내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으윽…!”
이서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꿈이 너무나 생생했다. 마치… 실제로 겪은 일처럼.
정신을 수습하려 애쓰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물이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복도로 나섰다. 그런데 복도 끝, 박지훈의 방 문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낮은 중얼거림.
궁금한 마음에 이서진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문틈으로 엿본 박지훈의 방 안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박지훈은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입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거기… 있어요… 거기… 어둠이… 보여요…”
박지훈의 중얼거림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졌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는 듯했다.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 그것은 분명… 아까 모니터에서 본 그 검은 구조물의 일부와 닮아 있었다.
“박 대원…?” 이서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박지훈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그의 눈동자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빛을 삼킨 듯한, 그 검은 구조물과 똑같은 색깔. 그 검은 눈동자가 이서진을 응시하자, 그녀의 등줄기에 얼음물이 쏟아지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스쳤다.
박지훈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박지훈의 것이 아니었다. 깊고, 낡고, 우주의 먼지를 뒤집어쓴 듯한, 아까 꿈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너희는… 왔구나… 나의… 아홉 번째 별에…”
그와 동시에,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상등이 깜빡이고,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관제실 쪽에서 긴급 호출음이 들려왔다.
이서진은 두려움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박지훈은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함선 외부를 향한 창밖으로, 아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검은 구조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아르테미스호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서진의 눈에, 박지훈의 검게 물든 눈동자 안에서, 무한한 어둠과 그 안에 잠긴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의 군집이 비쳤다.
마치, 그의 눈이… 우주 자체를 담고 있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