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새까만 우주가 유리창 너머로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아라호의 함교는 늘 그렇듯 고요했고, 은하수 먼지 사이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함선의 유일한 소음이라곤 생명유지장치의 규칙적인 숨통 트는 소리와 컴퓨터 패널의 미미한 팬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항해사 박선우는 눈을 깜빡였다. 벌써 지구 시각으로 237일째, 미개척 영역 깊숙한 곳을 탐사 중이었다. 그의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모니터에 떠오른 예측 항로선은 그 어떤 변칙도 보이지 않았다. 지루한, 너무나도 지루한 평화였다.

“함장님.”

그때였다. 박선우의 목소리에 미약한 떨림이 섞였다. 캡틴 한유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늘 그렇듯 침착하고 단단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 눈빛은 한순간에 수만 개의 은하를 꿰뚫어 볼 듯 날카로웠다.

“무슨 일인가, 선우?”

“예측 경로에서 벗어난… 아니, 저희 시야에는 없던 에너지 서명이 잡혔습니다. 패턴은… 비정형입니다.”

비정형. 그 단어는 정적인 함교에 돌멩이를 던진 듯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이 미개척 심우주에서 ‘비정형’이라니. 그건 곧 ‘인공적인’ 혹은 ‘알 수 없는’ 이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한유진 함장의 시선이 메인 스크린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제 막 피어오른 꽃잎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한 자주색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주변의 우주 배경과는 이질적인, 섬뜩할 정도로 선명한 존재감이었다.

“데이터 분석 결과는?”

뒤편에서 조용히 대기하던 과학 총괄관, 서지혜 박사가 재빨리 스크린으로 다가섰다. 그녀의 눈은 이미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늘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에 미묘한 흥분감이 떠올랐다.

“아직 미약합니다, 함장님. 하지만… 저희가 이전에 발견한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에너지 파동이… 매우 복잡합니다. 마치 스스로 조율하는 듯한…”

“스스로 조율한다고?” 함장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네. 흡사 지성을 가진 개체가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적. 침묵이 함교를 짓눌렀다. 지성체. 그것도 이런 심우주에서. 이 아라호가 우주를 떠돈 지 수백 일 만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미지의 존재였다.

“함장님, 제 생각엔 즉시 접근하여 조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혜 박사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학자 특유의 탐구욕이 가득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위험할 수도 있다, 박사.”

그때 옆에 서 있던 보안 팀장 강민준이 낮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가 그의 직책을 대변했다.

“미지의 존재에게 무턱대고 다가가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에너지 파동이 강하다면, 그만큼 위협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야 무엇을 얻겠습니까? 인류의 발전은 늘 미지의 위험을 감수해 온 대가였습니다.” 지혜 박사가 고개를 돌려 민준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유진 함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논쟁은 익숙했다. 탐구와 안전.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선우, 해당 좌표로 이동 준비. 속도는 3분의 1 광속으로 유지하고, 모든 센서와 방어막을 최대로 가동한다. 민준 팀장, 전 대원에게 비상 대비령을 내리고 무장 대기시킨다. 지혜 박사는 탐사 준비를 해두고. 절대 함부로 접촉해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예!”
“네, 함장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대원들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했다. 아라호는 이제 멈춰 서 있던 거대한 고래처럼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창밖의 별들이 점차 길게 늘어지는 광경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새로운 모험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다.

몇 시간 뒤, 아라호는 자주색 에너지 서명의 근원지 1천 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다. 메인 스크린에는 선명하게, 그것의 실체가 드러났다.

“세상에….” 박선우의 입에서 넋 나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직육면체였다. 매끄럽고 완벽하게 가공된 표면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흡사 우주 자체를 잘라낸 조각 같았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앞서 감지되었던 자주색 에너지가 약동하고 있었다. 섬광처럼 터져 오르다가도 이내 가라앉고,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규칙하게 고동쳤다.

“크기는 약 500미터, 질량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습니다. 밀도가 거의 없습니다.” 지혜 박사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표정은 경외심과 분석적인 사고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재질은 저희가 아는 어떤 원소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수 에너지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외계 유물이라는 건가….” 강민준 팀장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플라즈마 권총에 가 있었다.

“함장님, 무인 탐사 드론을 보내도 되겠습니까?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싶습니다.” 지혜 박사가 간청하듯 물었다.

한유진 함장은 잠시 망설였다. 저 미지의 존재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탐험가의 본능이 그를 이끌었다.

“좋다. 드론 세 대를 보낸다. 접근 거리는 100미터까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드론에는 EMP 방출 장치를 장착하고, 강 팀장은 특수부대원 두 명과 함께 셔틀에 탑승 대기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드론 세 대가 아라호의 격납고를 빠져나가 검은 유물로 향했다. 스크린에는 드론 시점이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서서히 다가갈수록, 유물의 검은 표면은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그 내부에서 요동치는 자주색 빛은 거대한 존재의 숨결 같았다.

드론들이 100미터 지점에 도달했다. 그때였다.

지이잉-!

아라호 함선 전체가 전력 서지에 휘말린 듯 흔들렸다. 메인 스크린의 영상이 일그러지고, 함교의 모든 패널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박선우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외부 전자기 간섭! 유물에서 강력한 전자기파가 방출됩니다!” 다른 오퍼레이터가 다급히 보고했다.

한유진 함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론은?! 드론 상황 보고해!”

“연결 끊겼습니다! 세 대 모두 동시에…!”

지이잉-!

다시 한번 강력한 전자기파가 아라호를 강타했다. 전원이 깜빡거리고, 몇몇 보조 스크린이 꺼졌다.

“안정화 중입니다! 보조 동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기술 담당 크루가 외쳤다.

“이것 봐….” 지혜 박사가 화면을 가리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 반, 경이로움 반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자주색 빛이 더욱 격렬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화난 심장처럼, 주변 공간을 뒤틀고 있었다. 그리고, 유물의 표면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검은 유리창에 금이 가듯, 빛나는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져갔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유물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끈적한 검은 안개였다. 안개는 찰나의 순간에 주변 공간을 잠식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유물의 잔해만이 자주색으로 빛났다.

“저건… 뭐지?” 강민준 팀장이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떨어져 나간 유물의 조각이 스크린에 포착되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조각,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자주색 섬광. 그 조각이, 아라호의 방어막에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쉬익-!

조각은 방어막을 뚫고, 외벽을 관통하여 아라호의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경고! 외부 물질 침투! 제7구역 격납고에 침투했습니다!” 시스템 경고음이 찢어지는 듯 울렸다.

한유진 함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7구역 격납고에 침투했다고? 민준 팀장! 즉시 제7구역으로 이동하여 침투한 물질을 확보해!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모든 조치는 격리 프로토콜에 따른다!”

“알겠습니다!” 강민준 팀장이 특수부대원들을 이끌고 함교를 뛰쳐나갔다.

지혜 박사의 표정은 창백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유물이 있던 자리의 검은 안개를 응시하고 있었다. “함장님… 저 안개… 뭔가 불길합니다. 센서가… 센서가 오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작동?”

“네. 미세한 생체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그것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격납고에서부터 비명소리가 함선 전체의 통신망을 통해 울려 퍼졌다.

“크아악!”

그리고 통신은 그대로 끊겼다.

함교의 모든 대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비명소리는 분명 강민준 팀장 휘하의 특수부대원 중 한 명의 것이었다.

“강 팀장! 강 팀장! 응답하라!” 한유진 함장이 다급하게 통신 채널을 열었다.

정적. 침묵이 흐르는 동안, 함선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제7구역 격납고에… 생체 반응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활동이 감지됩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유진 함장의 손이 떨렸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재앙의 씨앗이었다.

그때, 메인 스크린에 새로운 영상이 깜빡이며 잡혔다. 격납고 내부의 비상 카메라 영상이었다.

피 웅덩이 위에 쓰러진 특수부대원 두 명,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강민준 팀장.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온몸의 혈관이 검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찢겨나간 특수부대원의 살점이 들려 있었다.

쿠웅-! 쿠웅-!

그의 어깨가 불규칙하게 들썩였다. 숨소리는 거칠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했다. 텅 빈 눈동자에 광기어린 집착이 서려 있었다.

“함장님! 강 팀장이…!” 박선우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모든 구역 폐쇄! 강 팀장과 제7구역 격리!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 한유진 함장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절망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강민준 팀장의 입가에 피범벅인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는 피로 물든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에는, 검은 유물의 작은 조각이 들려 있었다. 자주색 빛이 불길하게 깜빡이는 조각.
조각은 그의 손에서 맥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그 조각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천천히 입안으로 가져갔다.

통신 시스템 전체에서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건 더 이상 강민준 팀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굶주리고, 갈증에 시달리는, 무언가의 포효였다.

우주선 아라호는, 미지의 심우주에서 외계의 재앙과 조우했다. 그리고 그 재앙은, 이미 함선 내부로 침투했다.
절대 멈추지 않을, 끝나지 않을 지옥의 서막이 지금,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