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변이

아파트는 낡지 않았다. 지훈이 이곳으로 이사 온 건 3년 전. 유리와 강철로 번쩍이던 신축 건물은 로비만큼이나 밝고 무균질적인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하지만 요즘은 달랐다.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그것은 모든 좋은 악몽이 그러하듯, 아주 미묘하게 시작되었다.

처음엔 전등이었다. 밤늦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작업을 하던 중, 거실의 스탠드 불빛이 픽, 하고 꺼졌다. 낡은 전구인가 싶어 갈아 끼웠지만, 며칠 뒤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그리고는 짧은 순간, 마치 전기가 끊겼다 다시 들어오는 것처럼 온 집안의 불이 동시에 깜빡였다. 지훈은 피곤에 절어 눈을 비볐다. “피곤한가 보네.” 그는 중얼거렸다. 그게 다였다. 아니, 그때는 그래야 했다.

다음은 소리였다. 아주 희미한, 벽 속에서 긁는 듯한 소리. 처음엔 쥐인가 싶었다. 도시 아파트에 쥐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쥐가 움직이는 것과는 달랐다. 일정한 패턴이 없었고, 때로는 아주 느리게,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묵직하게 ‘끄윽… 끄윽…’ 하는 소리가 났다. 지훈은 벽에 귀를 대봤지만, 소리는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사라졌다.

가장 이상했던 건 물건들이었다.

분명히 어제 밤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열쇠 꾸러미가 다음 날 아침 현관 신발장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기억력이 나빠졌나 싶었다. 며칠 뒤엔 늘 침대 옆 협탁에 두던 휴대폰 충전기가 거실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장난도 아니고… 누가 만진 것도 아닌데. 지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충전기를 다시 협탁에 올려두었다.

어느 날 저녁,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욕실 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냉기가 후욱 하고 몸을 감쌌다. 여름밤이었다.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뭐야?” 그는 팔뚝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욕실 거울에 김이 서려 있었는데, 그 김 위에 손가락으로 그린 듯한 흐릿한 자국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긴 손가락으로 거울을 쓸어내린 것 같은 자국. 하지만 그는 샤워 내내 아무것도 만진 적이 없었다.

그날 밤부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누우면 천장과 벽에서 희미한 ‘틱… 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대한 시계의 초침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내부에서 자라나며 벽을 갉아먹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훈은 밤새도록 눈을 감고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애썼지만, 소리는 들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그의 신경을 갉아먹었다.

사흘 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지훈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몸을 겨우 가누며 비틀비틀 거실로 들어섰을 때였다. 불이 꺼진 거실 한가운데, 테이블이 뒤집혀 있었다. 컵과 접시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유리 파편 위로 술병에서 쏟아진 술이 흥건하게 고여 섬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훈은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뭐야… 이거…”
그는 더듬거리며 벽 스위치를 눌렀다. 거실의 모든 불이 ‘파직!’ 소리와 함께 동시에 들어왔다. 밝은 불빛 아래 드러난 거실은 더욱 참혹했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고, 소파 쿠션은 찢겨져 솜이 삐져나와 있었다. 마치 누군가 격렬하게 싸움을 벌인 흔적 같았다. 하지만 집에는 지훈 혼자였다.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시선이 느껴졌다. 숨을 들이쉬자 비릿하고 곰팡이 냄새가 섞인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전에 맡아본 적 없는 낯선 냄새였다.

“누구… 누구 없어요…?”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텅 빈 공간을 울리다 사라졌다.

그때였다.

벽에서 ‘끄윽… 끄으윽…’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마치 바로 지훈의 등 뒤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실 벽지 한가운데,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하얀 벽지 위에, 검고 축축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진흙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지하에서 솟아나는 기름 같기도 했다. 그 검은 얼룩은 점점 퍼져나가며 징그러운 촉수처럼 불규칙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검은 얼룩의 한가운데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빛은 차가운 푸른색이었고, 마치 저 깊은 심해의 생물에게서 나오는 생체 발광처럼 음산했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발악했다.
그는 얼룩 안쪽의 푸른빛을 응시했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 안에서, 지훈은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색깔도, 형태도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을 비틀어버릴 것 같은, 광대하고 무한한 공포가 그 푸른빛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져 오는, 깊고 음산한 속삭임이었다.
*`…문을 열어라… 너의 집은… 이제…`*
속삭임은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왜곡되어 있어 지훈의 뇌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 할수록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검은 얼룩은 점점 더 크게 부풀어 오르며 벽지를 찢고 마치 살아있는 피부처럼 꿈틀거렸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더니, 얼룩 안쪽에서 기이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뼈도, 살도, 피부도 아닌… 오로지 어둠과 불안정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듯한, 비현실적인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천천히 움직였다. 한 발짝, 두 발짝. 벽에서 떨어져 나와, 지훈에게로 향했다.
지훈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몸은 공포에 질려 굳어버렸다. 그는 단지 뒷걸음질 쳤다. 공포에 질린 눈은 검은 그림자 속에서 깜빡이는 푸른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순간, 그림자의 형태가 흐물거리며 바뀌었다.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처럼, 그림자의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더니, 손가락 끝에서 무언가 뾰족하고 거무스름한 것이 돋아났다. 그것은 마치… 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작은 아파트의 모형, 하지만 비틀리고 찌그러져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집의 모형.

그리고 그 집의 모형에서, 수많은 작은 푸른빛들이 반짝였다. 각각의 빛은 마치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처럼 지훈을 노려보는 듯했다.

지훈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귓가에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이제는 속삭임이 아니라, 수천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외치는 절규 같았다.
*`…너는… 보았다… 너의… 집…은… 우리의… 문…`*

그림자가 지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간신히 눈을 들어 그림자 속의 푸른 눈을 마주했다.
그곳에는 광대한 어둠과 함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무한한 허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훈은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다.
이것은… 아파트가 아니다.
이것은… 문이었다.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이 세계로 넘어오기 위한, 살아있는… 문.

차가운 손이 그의 어깨를 감싸는 감각과 함께, 지훈의 시야는 암전됐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아파트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정적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끄으윽… 끄윽…’ 소리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