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독립적인 단편 소설

회색 증기의 그림자

낡은 가죽 고글 너머로 강철은 흐릿한 시야를 비집고 폐허를 응시했다. 거대한 강철 뼈대가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녹슨 증기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이곳은 한때 ‘번영의 도시’라 불리던 곳의 잔해였다. 지금은 그저 바람만이 쉭쉭거리는 무덤. 바닥에 깔린 자갈은 한때 유리창이었을 조각들로 반짝였다. 매캐한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강철은 이미 익숙했다. 이곳의 공기는 늘 이랬다.

“젠장, 아무것도 없군.”

강철은 중얼거리며 손에 든 육각 렌치를 단단히 쥐었다. 닳고 닳은 가죽 장갑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등에는 무거운 배낭이 찰싹 붙어 있었고, 허리춤엔 오래된 증기 피스톨과 톱니날 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동반자인 ‘증기 삼륜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낡은 기계음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연료도 거의 바닥이었다. 이대로라면 다음 탐사는 불가능할 터였다.

그는 부서진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때 우아한 곡선을 자랑했을 기어 장식들은 이제 고정된 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강철은 숙련된 움직임으로 파이프를 두드리고, 패널을 열고, 톱니바퀴를 살폈다. 그의 눈은 부식된 틈새 속에서 쓸모 있는 부품, 한 방울의 유체, 한 조각의 금속이라도 찾아내려 혈안이었다. 몇 시간을 뒤진 끝에, 손에 쥔 것은 낡은 ‘고압 증기 캔’ 서너 개와 녹슨 나사 몇 개뿐이었다. 실망감이 뼛속까지 스몄다.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강철은 이마를 짚었다. 그의 삼륜차는 ‘재생 증기 엔진’을 사용했지만, 그 재생에도 희귀한 ‘에테르 활성제’가 필요했다. 그 활성제는 이곳에서는 거의 전설에 가까웠다. 대륙 동쪽, 사라진 ‘시계탑 도시’에 마지막 ‘에테르 연산기’가 남아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려면 지금 가진 연료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였다. 귓가에 낡은 통신기가 작게 ‘치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미약한 신호였다. 강철은 귀를 기울였다. 흐릿한 노이즈 뒤로 아주 희미하게,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듯했다.

“—도움… 신호… 시계… 탑… 서쪽… 구역…”

목소리는 이내 끊겼다. 강철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시계탑 도시? 그곳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혹은… 누군가 조작한 유인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희미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곳에 에테르 연산기가 있다면, 이 황폐한 세상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터였다.

“젠장, 미쳤지.”

강철은 이를 악물고 삼륜차에 올랐다. 간신히 시동이 걸리자 낡은 엔진이 기침하듯 덜컹거렸다. 연료 게이지는 위태롭게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고글을 단단히 고쳐 쓰고, 황무지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

증기 삼륜차는 황토빛 먼지를 휘날리며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가로질렀다. 거친 바람이 뺨을 때리고, 타이어는 갈라진 지면 위에서 위태롭게 미끄러졌다. 사흘 밤낮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강철 묘지’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거대한 증기선들의 잔해와 비행정의 날개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 과거의 영광이 거대한 뼈대가 되어 굳어있는 풍경이었다.

강철은 삼륜차를 멈춰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통신기의 신호는 이곳에서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이 근처에 분명히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폐기된 증기선의 내부로 들어섰다. 녹슨 철판들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때, 저편에서 작은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강철은 증기 피스톨을 뽑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빛은 거대한 증기 엔진의 잔해 뒤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근원에는, 작은 소녀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소녀는 낡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휴대용 ‘에테르 측정기’를 쥐고 있었다. 복잡한 기계 장치를 해체하려는 듯, 작은 렌치로 나사를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작동이 멈춘 작은 ‘정찰 드론’이 놓여 있었다.

“거기 누구냐!” 강철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렸다.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금세 주저앉아 강철을 올려다보았다. 겁에 질린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영민함이 깃들어 있었다.

“누… 누구세요? 저는 아무것도… 해치지 않았어요.”

“너 혼자냐?” 강철은 소녀의 손에 들린 측정기를 보았다. 저 작은 기계가 통신 신호의 근원이었나?

“네… 혼자예요. 전 솔아예요. 이 드론이 고장 나서… 고치려고 했어요.”

솔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먼지로 얼룩져 있었지만,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야무져 보였다.

“그 드론에서 아까 신호가 왔어. 시계탑 도시에 대한.”

솔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거요? 드론이 갑자기 잡았어요. 희미했지만 분명히 ‘활성 연산기’ 신호였어요! 시계탑 도시에 아직 에테르 연산기가 살아있다는 뜻이에요!”

강철은 솔아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 작은 아이가 혼자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그런 고성능 드론을 가지고 있다니.

“널 어떻게 믿지? 혼자 여기까지 온 것도 수상한데.”

솔아는 고개를 숙이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저… 사실은… 아버지가 시계탑 도시로 가셨어요. 그곳에서 에테르 연산기를 찾아 세상을 다시 살리겠다고… 그런데 얼마 안 가 통신이 끊겼어요. 이 드론은 아버지가 제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에요. 아버지의 신호를 찾으려고 계속 조종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강철은 그녀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드론이 에테르 연산기 신호를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활성 연산기 신호라고 했지? 확실해?”

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드론의 ‘에테르 스펙트럼 분석기’가 그렇게 표시했어요. 아주 오래되었지만, 분명히 작동 중인 에테르 동력원이에요.”

강철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이 현명할까? 위험은 두 배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드론과 지식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에테르 스펙트럼 분석기는 강철의 낡은 통신기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그럼 같이 가자. 하지만 내 규칙을 따라야 해. 위험한 상황이 오면 내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솔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 따를게요! 정말 감사해요!”

***

시계탑 도시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황무지는 ‘역병 바람’으로 뒤덮여 있었고, 낡은 로봇 경비병들의 잔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강철은 삼륜차를 능숙하게 조종하며 장애물들을 피했고, 솔아는 옆에서 작은 드론을 조종하며 전방의 위험을 알려주었다. 솔아의 드론은 강철의 예상보다 훨씬 정교했다.

“오른쪽으로! 낡은 증기 압축기가 불안정해요!”

“서쪽 건물에 ‘태엽 좀비’ 두 마리! 움직임이 빨라요!”

태엽 좀비는 과거의 노동 로봇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폭주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목표물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들었고, 그들의 톱니바퀴 손은 무엇이든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었다. 강철은 여러 번 그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의 증기 피스톨은 제한된 탄약을 가지고 있었고, 톱니날 검은 낡은 기계 부품에 부딪혀 이가 나가는 소리를 냈다.

“이런 젠장, 연료가…!”

거대한 ‘강철 비룡’의 골격을 지나던 중, 삼륜차의 엔진이 갑자기 멈췄다. 강철은 당황하며 시동을 다시 걸었지만, 낡은 기계음만 헛될 뿐이었다. 연료가 완전히 바닥난 것이었다.

“이제 어떡해요…?” 솔아의 얼굴에 절망감이 스쳤다.

“걸어야지.” 강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시계탑 도시는 이제 눈앞에 보였다. 거대한 시계탑이 구름을 뚫을 듯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복잡한 파이프와 기어들이 얽혀 있는 건축물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그 도시는 마치 거대한 유령선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저기까지 걸어가려면 며칠은 걸릴 거예요. 게다가 저 안은…” 솔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강철은 배낭을 고쳐 메고 증기 피스톨을 손에 쥐었다. “걱정 마. 도착만 하면 돼. 어쩌면 그 안에서 연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들은 삼륜차를 버려두고 시계탑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낡은 금속과 썩어가는 에테르 잔해의 냄새가 진동했다. 거대한 도시의 문은 이미 녹슨 채 열려 있었다.

도시 내부는 과거의 번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멈춰 있었다. 멈춰선 태엽 시계들, 먼지 쌓인 상점들, 그리고 한때 사람들이 오고 갔을 거대한 증기 이동 통로. 모든 것이 정지된 박물관 같았다.

“에테르 연산기 신호는 저 중앙 시계탑에서 나와요!” 솔아는 드론을 띄워 지도를 분석하며 말했다.

중앙 시계탑은 도시의 심장부였다. 거대한 시계 문자판이 깨진 채로 시간을 알 수 없는 정지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은 좁은 골목과 부서진 다리를 건너며 시계탑을 향해 나아갔다.

갑자기, 등 뒤에서 굉음이 울렸다.

“젠장, ‘파괴자’다!” 강철은 소리쳤다.

거대한 몸집의 로봇이 나타났다. 온몸이 녹슨 강철과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파괴자 로봇은 도시의 방어 시스템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제멋대로 움직이며 침입자들을 파괴하려 들었다.

강철은 솔아를 자신의 뒤로 숨기고 증기 피스톨을 쏘았다. ‘쉬이익’ 소리와 함께 고압 증기탄이 파괴자의 팔을 강타했지만, 묵직한 강철 팔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솔아! 저 녀석의 약점은 심장에 있어! 저 거대한 증기 코어를 노려야 해!”

솔아는 겁에 질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작은 드론을 조종해 파괴자의 주변을 날아다니게 했다. 파괴자가 드론에 시선을 빼앗긴 틈을 타, 강철은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톱니날 검을 뽑아 들고, 파괴자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내부의 증기 코어를 노렸다.

‘챙!’

검이 강철에 부딪혀 불꽃을 튀겼다. 파괴자는 거대한 팔을 휘둘러 강철을 날려버렸다. 강철은 벽에 부딪혀 숨을 헐떡였다. 그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저씨!” 솔아가 소리쳤다.

그때, 솔아의 드론이 파괴자의 등 뒤에 있는 작은 패널을 발견했다. “아저씨! 저기! 등 뒤에 비상 패널이 열렸어요! 아마 충격 때문에!”

강철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그는 다시 파괴자에게 돌진했다. 파괴자의 팔이 다시 그를 향해 휘둘러지는 순간, 강철은 몸을 숙여 아래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톱니날 검을 패널 안으로 쑤셔 넣었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파괴자의 증기 코어가 터져 버렸다. 강철은 폭발의 충격에 다시 날아갔지만, 이번에는 솔아가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아저씨?”

“크흑… 괜찮아. 겨우… 해냈군.”

그들은 간신히 중앙 시계탑 안으로 들어섰다. 시계탑의 내부는 거대한 기계의 미로였다. 수많은 톱니바퀴와 증기 파이프, 그리고 거대한 크랭크축이 정지된 채 고요했다. 가장 꼭대기에 다다르자, 그들은 마침내 ‘에테르 연산기’를 발견했다.

그것은 거대한 유리 튜브 안에 봉인된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복잡한 회로와 작은 에테르 결정들이 보였다. 하지만 연산기는 아무런 활성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신호는 여기서 나오는데… 왜 작동하지 않지?” 솔아가 의아해했다.

강철은 연산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때, 그는 연산기 아래에 놓인 낡은 단말기를 발견했다. 단말기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솔아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주었던 드론의 문양과 같았다.

“이건… 네 아버지의 것이군.”

솔아는 단말기에 손을 댔다. 그러자 단말기에서 희미한 불빛이 켜지며 음성이 흘러나왔다.

“—솔아… 내 딸… 이걸 찾았다면… 기쁘구나. 연산기는 작동 중이다. 하지만… 외부 동력을 차단해 놓았다. 위험한 자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오직 ‘계약자의 지문’과 ‘특정 에테르 주파수’만이 연산기를 깨울 수 있다. 드론에 그 주파수 기록이 있다. 너는… 이제 이 세상의 희망이다.”

솔아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버지…!”

강철은 솔아에게 드론을 건넸다. “네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사용해봐.”

솔아는 떨리는 손으로 드론을 단말기에 연결했다. 드론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와 단말기로 이어졌다. 동시에, 솔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단말기의 지문 인식기에 댔다.

‘윙—’

거대한 진동과 함께 연산기 내부의 에테르 결정들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연산기를 감싸고, 이내 탑 전체로 퍼져나갔다. 멈춰있던 시계탑의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도시 곳곳에서 멈춰있던 증기 파이프들이 다시 굉음을 내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죽어있던 도시가, 마치 거대한 심장이 다시 뛰는 것처럼 소생하는 듯했다.

“성공했어…! 아저씨! 우리가 해냈어요!” 솔아가 강철을 끌어안으며 외쳤다.

강철은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솔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산기의 활성으로 인해 도시 전체에 다시 에테르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바닥난 삼륜차의 연료 걱정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이제 이 시계탑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이 에테르 에너지를 세상에 다시 퍼뜨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 솔아. 이제 시작이야.” 강철은 흐릿한 고글 너머로 푸른빛으로 물든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황폐했던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길고 긴 생존기는 이제 새로운 장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