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장: 심연으로
식은땀이 등에 달라붙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진우는 손에 쥔 오래된 손전등의 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끈적한 습기가 피부에 엉겨 붙었고,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흙먼지와 곰팡이 냄새는 이 지독한 환경의 일부가 된 지 오래였다. 무너진 지하철 터널의 잔해는 마치 거대한 괴물의 뼈대처럼 흉측하게 솟아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어둠은 모든 소리를 삼키는 듯했다.
“젠장, 끝이 없잖아.”
앞서 걷던 하준 형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투박한 장갑이 낡은 철골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형의 어깨에 걸쳐진 낡은 배낭은 온갖 잡동사니로 불룩했고, 등 뒤에는 녹슨 곡괭이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우리가 이곳, 과거의 수도를 관통했던 지하철 노선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희귀한 푸른 이끼 때문이었다. 오래된 정화 장치에 필요한 촉매제인데, 표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진우는 손전등 불빛을 좌우로 흔들었다. 빛이 닿는 곳마다 축축한 벽과 천장이 드러났다. 콘크리트는 갈라지고 부서져 있었고, 그 틈새로는 끈질긴 풀뿌리들이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듯 기어 나와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이 침묵을 깨고 있었다.
“푸른 이끼는 이런 곳에 주로 나타난다고 했잖아. 빛이 거의 닿지 않고 습기가 충분한 곳. 어쩌면 더 깊이 내려가야 할지도 몰라.” 진우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침묵은 늘 공포를 동반했다. 차라리 저 멀리서라도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편이 나았다.
하준 형은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아니, 잠깐. 뭔가 이상해.”
진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형의 예민한 감각은 늘 위기를 미리 감지했다. 진우도 숨을 죽이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는 것은 고작 자기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터널 저편에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물방울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스슥… 스슥…’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터널 안을 울렸다. 진우는 손전등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렸다.
“저기…!”
빛이 닿은 곳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대신, 벽의 한 부분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것이, 빛을 받자 기괴한 형체를 드러냈다. 거대한 지네를 닮은 괴물이었다. 다만 그 몸은 단단한 갑각이 아닌, 끈적이는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수많은 다리들이 벽을 기어 오르며 ‘스슥’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녹색 빛을 내는 더듬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저런 건 처음 보는데….” 하준 형의 목소리에는 드물게 당황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독이 있을 거야. 조심해!”
지네 괴물은 빛을 감지했는지, 갑자기 진우와 하준 형을 향해 몸을 틀었다. 놈의 기괴한 주둥이가 열리며 역겨운 악취가 터널 안에 퍼졌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튀어!” 하준 형이 외쳤다.
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거대한 지네 괴물이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아왔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치직’하는 소리를 냈다. 진우의 신발이 미끄러질 뻔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발을 놀렸다.
“젠장, 저게 왜 여기 있어!”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몰라! 지도에도 없던 놈이야!” 하준 형이 진우의 뒤에서 거의 울부짖다시피 대답했다. 형의 손에는 낡은 권총이 들려 있었다. 총성이 ‘탕!’ 하고 터널 안을 울렸지만, 지네 괴물의 두꺼운 몸에 명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잠시 휘청거릴 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갑각이 너무 두꺼워! 일반 탄으로는 안 돼!” 하준 형이 이를 갈았다.
진우는 앞서 달리며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어디 숨을 곳이라도 없을까? 아니면 놈을 따돌릴 방법은? 터널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괴물과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놈의 악취가 바로 등 뒤에서 풍겨왔다.
“저기, 폐기된 환풍구!” 진우의 눈에 낡은 철문이 들어왔다. 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과거의 흔적이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위험해! 길이 막혀 있을 수도 있어!” 하준 형이 외쳤지만, 이미 진우는 그쪽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진우는 전속력으로 환풍구 철문으로 달려갔다. 낡은 철문은 녹슬고 뒤틀려 있었지만, 그래도 간신히 붙어 있었다. 진우는 온 힘을 다해 철문을 밀어젖혔다. ‘끼이이익!’ 하는 끔찍한 쇳소리와 함께 철문이 간신히 안쪽으로 열렸다. 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형! 빨리!” 진우는 몸을 숙여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완전히 들어가자마자, 하준 형도 간발의 차이로 몸을 구겨 넣었다.
바로 그때, 거대한 지네 괴물이 환풍구 입구에 도달했다. 놈의 끈적한 몸뚱이가 낡은 철문에 부딪히며 ‘쿵!’ 하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철문은 덜컹거렸지만, 놀랍게도 부서지지는 않았다. 괴물의 더듬이가 틈새를 통해 안쪽을 휘저었다. 녹색 빛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번뜩였다.
“후우… 후우….”
진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등을 기댔다. 심장이 온몸의 피를 뿜어내며 격렬하게 뛰었다. 하준 형도 옆에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좁고 답답한 공간이었다. 먼지와 쇳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간신히 살았다….” 하준 형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이런 좁은 곳으로 들어오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네 판단이 옳았군.”
지네 괴물은 환풍구 밖에서 한동안 버둥거렸다. ‘스슥’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놈의 끈적한 몸이 철문을 자꾸 밀어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알 수 없었다.
진우는 손전등을 들어 내부를 비췄다. 좁고 낮은 통로가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흙과 찌꺼기가 뒤섞여 있었다. 환풍구의 목적은 분명 공기 순환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낡은 미로일 뿐이었다.
“여긴 어디지? 지하철 노선도는 이런 곳을 표시하지 않잖아.” 진우가 물었다.
하준 형이 머리를 흔들었다. “모르겠다. 아마 오래전에 폐쇄된 구역일 거야. 아니면… 지도를 만들기도 전에 괴물들이 점령해버린 미개척지거나.”
진우의 눈에 문득 통로 벽면에 희미하게 보이는 녹색 빛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지네 괴물의 더듬이 잔상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벽에 자라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이끼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이끼 가까이 다가갔다. 손전등 빛을 비추자, 선명하게 드러나는 푸른색 이끼의 모습.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이었다.
“하준 형… 이거….” 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밀어 이끼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하준 형이 진우의 뒤로 다가와 이끼를 확인했다. 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푸른 이끼… 이게 정말…?”
두 사람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지옥 같은 추격전 끝에 겨우 숨어든 미지의 공간에서, 그토록 찾던 보물을 발견하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슥… 스슥…’
환풍구 밖에서 들려오던 지네 괴물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곧이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마치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환풍구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우와 하준 형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들어온 곳은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 이 환풍구는 어둠 속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젠장, 설마….” 하준 형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이 지네 괴물을 피해 들어온 이 낡은 환풍구는, 어쩌면 또 다른 괴물의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손전등 빛이 닿지 않는 저 너머의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이곳은 그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 미지의 환풍구는, 또 다른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피로와 함께, 거친 생존자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푸른 이끼는 손이 닿는 곳에 있었지만, 그것을 안전하게 가져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풍구 밖의 지네 괴물과 안쪽의 미지의 존재 사이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어둠은 그렇게 짙어져만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