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독립적인 단편 소설

에테르나 행성 상공, 찬란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결정체 도시는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 정점에 자리한 아르카나 성역 학원은 우주 전역의 마법사 지망생들에게 꿈의 요새이자, 희망의 등대였다. 하늘을 뚫고 솟아오른 흑요석 첨탑들, 유영하는 마법선들, 그리고 행성을 감싸는 에테르의 흐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완벽함은 종종 그 이면에 깊은 그림자를 숨기는 법이다.

“시안, 이것 봐. 이번 고대 문명학 리포트는 진짜 골치 아프다고.”

렌이 홀로그램 단말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투덜거렸다. 시안은 수정구 너머로 펼쳐진 마법 진형을 응시하다가 눈썹을 치켜떴다. 렌은 늘 그렇듯 복잡한 마법 이론보다는 공학 장비에 더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그녀의 회색빛 작업복에는 기름때와 알 수 없는 액체의 흔적이 얼룩져 있었지만, 렌은 개의치 않았다.

“하긴, ‘고대 에테르나인의 마법 공학 기원에 대한 재해석’이라니. 교수님도 참.” 시안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자료는 풍부하잖아?”

렌은 콧방귀를 뀌었다. “풍부하긴 뭐가 풍부해? 학술원 자료 열람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특히 고대 에테르나인들이 썼다는 그 ‘시원의 제련소’에 대한 기록은 죄다 검열되어 있거나 접근 불가더라. 무슨 국가 기밀이라도 되나?”

시안의 눈이 순간 빛났다. “시원의 제련소? 전에 읽은 고대 문서 조각에서 이름만 본 적 있어. 전설에 따르면, 에테르나 행성의 모든 마법 에너지가 처음 발현된 곳이라던데….”

“그 전설이 문제야. 교수님은 우리에게 그 전설의 ‘이면’을 밝혀내라고 하셨거든. 하지만 이면을 파헤치려니 벽만 만나는군.” 렌은 다시 단말기를 톡톡 건드렸다. “학술원 최하층, 폐쇄된 고문서 보관소에 접근해야 할 것 같아. ‘망각의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 말이야.”

시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망각의 구역. 아르카나 학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곳이었다. 수백 년 전, 금지된 마법 연구가 이루어지다 봉인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한 곳. 아무도 그곳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렌, 거긴 안 돼. 엘라라 교수님께서도 늘 경고하시잖아. 호기심이 너를 파멸로 이끌 거라고.”

“파멸이라니, 너무 과장됐네. 그냥 몇 개 문서만 빼내면 된다고. 너의 마법 해제 능력과 내 기술력이면 충분할 거야.” 렌의 눈에는 이미 장난기 가득한 빛이 돌고 있었다. “어때? 대담한 학술적 탐험에 동참할 생각 없으셔, 아르카나의 빛나는 별 시안 양?”

시안은 한숨을 쉬었지만, 렌의 말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시원의 제련소’라는 이름에 이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호기심은 언제나 가장 강력한 마법이었다.

* * *

밤이 깊어지고, 에테르나 행성의 이중 위성이 어스름한 그림자를 드리울 무렵, 시안과 렌은 학술원 최하층 복도에 숨어들었다. 차가운 금속과 낡은 양피지 냄새가 섞인 공기가 음산하게 감돌았다.

“이쪽이야.” 렌이 손목의 소형 스캐너를 보며 속삭였다. “여기 마법 방어막이 엄청나. 엘라라 교수님 아니면 아무도 못 풀 걸.”

“못 풀 마법은 없어.” 시안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망각의 구역 입구를 막고 선 고대의 마법 문양들이 그녀의 손길 아래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시안은 마법의 흐름을 읽고, 그 구조를 역설계하여 한 겹 한 겹 해제해 나갔다. 땀방울이 그녀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마침내, 거대한 금속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 시안! 너 정말 천재 아니냐?!” 렌이 눈을 빛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에는 빛 한 점 없었다. 렌이 소형 라이트를 켰고, 낡은 선반 가득 쌓인 먼지 쌓인 책들과 두루마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서고가 아니었다. 렌의 스캐너가 불규칙적인 에너지 반응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상해… 이 안쪽에 뭔가 더 있어. 단순한 보관소가 아닌데?” 렌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서고를 지나 복도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또 다른 금속 문이 있었다. 이전 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껍고, 그 위에 새겨진 마법 문양은 훨씬 더 복잡하고, 악의적이기까지 했다.

시안은 문에 손을 대자마자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 에너지의 벽이었다. “이건… 봉인이야. 단순한 방어막이 아니야. 무엇인가를 ‘가두려는’ 목적의 마법이야.”

“무엇을? 이 학원에 가둘 만한 게 뭐가 있겠어?” 렌은 스캐너를 들어 올렸다. “맙소사, 시안. 이 안에서 측정되는 에너지 파장이… 우리가 아는 어떤 마법 에너지와도 달라. 엄청나게 강력하면서도, 기분 나쁘게 균일해.”

시안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녀는 이 봉인을 해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시원의 제련소’라는 이름이 그녀의 뇌리를 맴돌았다. 이 문 너머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감춰진 진실이.

그녀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법의 눈을 떴다. 봉인의 복잡한 구조가 그녀의 시야에 펼쳐졌다. 봉인은 수십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층마다 강력한 주술과 고대 에테르나인의 언어로 된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잠든 것은, 빛이자 어둠. 힘이자 고통. 깨우는 자, 파멸을 맞으리라.’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시안은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 마법 봉인의 핵심을 찾아냈다. 손끝에서 푸른빛이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봉인이 진동하고, 주변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쾅!

마침내, 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그 너머는 거대한 나선형 통로였다. 차가운 금속과 인공적인 빛이 그들을 맞았다. 통로의 벽면에는 수많은 케이블이 얽혀 있었고,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법적인 요소보다는 공학적인 설계가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봐, 이건… 고대 에테르나인의 건축 양식은 아닌 것 같아. 훨씬 현대적이야.” 렌이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나선형 통로를 따라 지하 깊숙이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통로는 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시안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끔찍한 것이었다.

거대한 지하 공간은 수십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구획마다 투명한 에너지 막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원통형 장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장치들 안에는…

“저게 뭐야…?” 렌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장치들 안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피부, 다양한 형태의 팔다리, 기묘한 머리 모양을 가진 이종족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인간과 흡사했고, 어떤 이들은 심해 생물처럼 기괴했다. 그들은 모두 혼수상태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수많은 가는 케이블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케이블들을 통해 투명한 액체와 함께 희미한 빛이 끊임없이 빨려 나가고 있었다.

그 빛은 바로 마법 에너지였다.

장치의 바닥에는 거대한 에테르나 행성의 마법 핵을 모방한 듯한 인공 코어가 번쩍이고 있었고, 그 코어로 수많은 생명체에게서 뽑아낸 마법 에너지가 흘러들어 응축되고 있었다.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학원 전체를 지탱하고도 남을 만큼 막강했다.

이것이 ‘시원의 제련소’의 이면이었다. 에테르나 행성의 마법 에너지가 발현된 곳이 아니라, 강제로 추출되고 착취되는 곳.

“말도 안 돼… 이 모든 게… 아르카나 학원의 에너지원이라고?” 시안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학원의 모든 영광과 마법 기술이, 수많은 생명체의 고통 위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그때,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이곳에 당도했군, 시안 양.”

차가운 목소리였다. 시안과 렌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통로 입구에 엘라라 교수님이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했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녀의 뒤에는 검은 로브를 걸친 심층 마법 연구회 소속 학자들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엘라라 교수님… 이게… 도대체….” 시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엘라라 교수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눈은 수많은 생명체가 갇힌 장치들을 한 번 훑더니, 시안에게 고정되었다.

“자네는 호기심이 많지. 그리고 정의감도 강해. 하지만 때로는 가장 큰 선(善)을 위해 가장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

“희생이요? 이건 희생이 아니에요! 이건 학살이에요, 교수님! 저들은 살아있는 존재들이에요!” 시안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그녀의 손에서 마법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피어올랐다.

“학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엘라라 교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들은 수천 년 전, 에테르나 행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선조들이 발견한 미개한 종족들이다. 그들의 마법 에너지는 우리 행성의 존속과 발전에 필수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르카나 학원이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 무한한 에너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저들을 강제로 가두고, 생명력을 빨아먹는 게 정당하다는 말씀이세요?!” 렌이 분노에 차서 끼어들었다.

엘라라 교수의 얼굴에 미세한 경멸의 기색이 스쳤다. “미숙한 아이들이군. 이 우주는 정글과 같아.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만이 살아남지. 우리가 이들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에테르나는 진작에 멸망했거나, 다른 강대국에 흡수되었을 거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수백억의 에테르나인이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거다.”

“이건 평화가 아니에요! 이건 거짓 위에 세워진 폭력이에요!” 시안은 손을 뻗어 한 장치에 연결된 케이블을 끊으려 했다.

“멈춰라, 시안.” 엘라라 교수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녀의 손에서 강력한 마법 구체가 형성되었다. “이 진실은 영원히 봉인되어야 해. 너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녀의 뒤에 선 학자들이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했다.

“렌! 도망쳐!” 시안은 재빨리 렌을 밀치며 자신에게 향하는 마법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 그녀의 온몸이 저릿했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 끔찍한 진실을 폭로해야만 했다.

“증거… 증거가 필요해…!” 시안은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단말기에 꽂혔다. 아마도 이 시설의 운영 기록을 담고 있는 단말기일 터였다.

그녀는 온몸의 마력을 끌어모아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학자들의 마법 공격이 방어막에 부딪혀 폭발음을 냈다. 그 틈을 타 시안은 단말기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렌은 그녀를 돕기 위해 주변의 장비들을 향해 해킹 파장을 날렸다.

“시안! 내가 시간을 벌게! 빨리!” 렌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시안은 단말기에 손을 대고, 마법 해제와 동시에 데이터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정보가 그녀의 마법 단말기로 흘러들어왔다.

바로 그때, 엘라라 교수의 마법이 그녀의 방어막을 뚫고 시안의 어깨를 강타했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시안은 이를 악물었다. 데이터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다!

“붙잡아라!” 엘라라 교수의 명령이 떨어졌다.

시안은 복사된 단말기를 움켜쥐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려 나갔다. 렌은 이미 통로 입구로 달려가 그들을 가두기 위해 통로의 문을 다시 봉인하려 했다. 하지만 심층 마법 연구회 학자들의 마법은 너무나 강력했다.

“렌, 가!” 시안은 소리쳤다.

렌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 후, 전속력으로 복도를 달려나갔다. 시안은 뒤따라오는 학자들의 마법을 막아내며 탈출을 도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어두운 지하 공간에서 진실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학원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하늘을 뚫고 솟아오른 아르카나의 흑요석 첨탑들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거대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생명체의 고통 위에 세워진 이 찬란한 거짓이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시안은 손에 든 단말기를 꽉 쥐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이 우주의 평화를 위해, 거짓된 영광의 가면을 벗겨낼 싸움이. 그녀는 더 이상 순진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실을 아는 자, 그리고 그 진실을 세상에 드러낼 전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