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썩은 심장과 검은 역병
잿빛 하늘 아래, 제국의 심장부가 아닌 발치에 버려진 ‘까마귀 골목’은 늘 그랬듯 사람들의 악다구니와 땀 냄새, 쉰 음식물 냄새로 가득했다. 거대한 제국, ‘황금의 제국’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의 수도, 아스터 시티의 변두리 중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 강민은 허름한 작업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묵묵히 폐기물을 수거하는 수레를 끌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수레바퀴 소리는 낡은 골목의 음산한 침묵을 더 부각시키는 듯했다.
저 멀리, 아스터 시티의 중심부를 감싸는 거대한 내벽 너머로 황궁의 첨탑이 희미하게 보였다. 황금으로 번쩍이는 그곳은 강민이 사는 이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들의 세계는 비단옷과 기름진 음식, 그리고 불로장생을 꿈꾸게 하는 영생의 연구로 가득하겠지. 이곳은? 매일 끼니를 걱정하고, 제국군 병사들의 채찍질을 피해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삶 자체가 투쟁인 곳이었다.
“어이, 강민! 오늘은 또 얼굴이 죽상이구먼!”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좌판 뒤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육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주름진 얼굴의 순덕 할머니가 낡은 짚신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할머니의 손에는 방금 잘라낸 듯한 물고기 토막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 누가 좋다고 웃겠어요. 오늘 새벽부터 황궁 근위대 놈들이 이골목까지 내려와서 곡물 세금 더 걷어간다고 난리였잖아요. 시장은 난장판이었고.” 강민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순덕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차더니 강민의 수레 위에 물고기 한 토막을 툭 던졌다. “이거나 먹고 기운 내. 자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걸 보면 내가 다 안쓰러워.”
강민은 순간 목이 메었다. 그의 부모님은 제국의 가혹한 징발에 끌려가 북부 광산에서 일하다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제국은 시신조차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때부터 강민의 가슴 속에는 황궁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강민은 겨우 말을 이었다.
“고맙다는 소리 대신, 나중에 이 나라가 뒤집히면 우리 까마귀 골목 사람들 배불리 먹여줄 생각이나 해라.” 순덕 할머니는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묘한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이 골목의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은 원한을 품고 살았다. 제국에 대한 원한을.
그때였다.
저 멀리, 내벽 너머의 상류층 거주 구역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 비명은 하나둘 늘어나더니, 미친 듯이 찢어지는 듯한 절규로 바뀌어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무슨 소리여? 저건 사람 비명 아녀?” 순덕 할머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갑자기, 황궁 쪽에서 거대한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비상 상황을 알리는 소리였다. 이어 곧바로 수많은 경비병들이 내벽으로 향하는 길을 막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벽 안쪽은 황족과 귀족, 고위 관리들만이 살 수 있는 신성한 구역이었다.
“비켜! 비켜라! 전염병 발생이다! 바깥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
내벽 경비대장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전염병? 강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평범한 전염병이라면 저렇게까지 요란하게 징을 울리고 길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상류층 거주 구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눈이 뒤집힌 채,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다. 살점과 피가 튀었다. 그 광경은 마치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귀들의 싸움 같았다.
“젠장, 저게 뭐야?!” 강민은 눈을 비볐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 젊은 여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까마귀 골목으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했고, 눈은 이미 혼탁하게 풀려 있었다. 그녀는 입을 찢어지게 벌리며 강민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이 없는 짐승의 움직임이었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수레에서 긴 쇠꼬챙이를 집어 들었다. 꼬챙이를 휘둘러 여인의 머리를 가격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인은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몸을 뒤틀며 일어서려 했다.
“어이쿠, 저 미친년 좀 보게!” 순덕 할머니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내벽 안쪽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제국군 병사들이 사정없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화살은 미쳐 날뛰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머리에 화살이 박혀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자신들의 주군을 지키기 위함인지, 내벽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완전히 봉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강철 문이 굉음을 내며 닫혔다. 내벽 안으로 들어가려던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가 문 너머에서 찢어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문을 열어라! 우리도 시민이다!”
문밖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제국은 그들을 버렸다. 황족과 귀족들이 사는 ‘안전한’ 내벽 안쪽 세계를 지키기 위해, 바깥의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까마귀 골목뿐만이 아니었다. 아스터 시티의 수많은 평민 구역들이 버려졌다.
강민은 닫힌 강철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이 분노로 끓어올랐다.
이것이 제국이었다. 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잔혹하게 자신들의 백성을 버리는 것. 그들은 평소에도 우리를 짐승처럼 대하더니, 이제는 문자 그대로 짐승들 속에 우리를 던져 넣은 것이다.
골목 저편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전염병은 까마귀 골목으로까지 퍼져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순덕 할머니는 이미 피가 잔뜩 묻은 생선칼을 쥐고 벌벌 떨고 있었다. 다른 골목 사람들도 각자 손에 잡히는 대로 몽둥이나 식칼을 들고 공포에 질린 채 서 있었다.
“강민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순덕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민은 꽉 쥐고 있던 쇠꼬챙이를 고쳐 잡았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공포에 질려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골목 어귀를 바라보며, 강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를 버리는 것이 너희들의 방식이라면… 우리 또한 너희를 버릴 것이다. 아니, 반드시 끌어내릴 것이다.’
그의 시선은 닫힌 강철 문 너머,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궁을 향했다. 그들의 안전은 우리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이제 그 안전을 박살낼 때가 온 것이다. 이 검은 역병이 모든 것을 뒤엎는 시작점이 되리라. 죽음의 문턱에서, 제국에 대한 증오가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반란의 불씨는, 썩어 문드러진 제국의 심장부가 아닌, 버려진 까마귀 골목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