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썩은 살점과 피,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역겨운 화학 약품 냄새가 뒤섞여 폐를 찔러댔다. 현우는 한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는 낡은 철제 선반을 짚었다.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며칠 밤낮을 굶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였다.
“현우야, 괜찮아?”
낮게 속삭이는 준영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희미한 잔광을 찾아 헤맸다. 유리창이 깨진 건물 외벽을 통해 달빛이 부서져 들어오는 듯했다. 이곳은 한때 번화했던 도심의 백화점, 이제는 죽은 자들의 성지가 된 폐허였다.
“식량은 더 없어?” 현우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목이 타는 듯했다.
“아니, 없어. 전부 뒤졌어. 물도 바닥났고.” 준영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묻어 있었다.
두 사람은 며칠째 이곳, 백화점 3층 구석 창고에 갇혀 있었다. 처음에는 ‘것들’이 몰려드는 소리에 정신없이 도망쳐 들어왔지만, 이제는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는 굶주린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위층에서는 무언가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현우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굶어 죽거나, 저것들에게 찢기거나 둘 중 하나야.”
“그럼 어떻게 해? 밖은 지옥인데.” 준영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신경질적인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현우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낡은 환풍구 덮개가 눈에 들어왔다. 저 위로 올라가면 옥상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며칠 전, 무심코 든 지도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옥상에는 군용 헬기가 올 수도 있다는 막연한 소문이 떠돌았다. 사실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이곳보다는 안전할 터였다.
“저기로 올라가야 해. 환풍구.” 현우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준영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저기? 너무 높아. 어떻게 올라가? 밧줄도 없잖아.”
“선반을 밟고 올라가야지. 저 위로 이어지는 서비스 통로가 분명 있을 거야. 어차피 이대로 죽을 바엔 시도라도 해봐야 해.”
준영은 한숨을 쉬었지만,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현우는 망설임 없이 먼저 움직였다. 낡은 철제 선반을 밟고 위로 올라가려 했다. 선반은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현우는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렸다. 삭은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나, 둘. 세 번째 선반까지 올랐을 때, 발아래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젠장, 뭐야?” 준영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것들’이었다. 아래층에서 소리에 이끌려 올라온 ‘것들’이 창고 문을 부수고 들어오고 있었다. 눈먼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달려드는 시체들이 냄새와 소리로 그들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다.
“빨리 올라와, 준영아!” 현우가 소리쳤다.
준영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현우와 ‘것들’을 번갈아 봤다. “현우야, 어서!”
현우는 최선을 다해 몸을 끌어올렸다. 환풍구 덮개에 손이 닿았다. 낡고 부식된 덮개는 겨우 한두 번의 힘으로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것들’의 손이 현우의 발치에 닿을락 말락 했다.
“젠장!” 현우가 이를 악물고 덮개를 잡아당겼다. 끽, 끽. 낡은 나사가 비명을 지르며 뜯겨 나갔다. 덮개가 떨어져 나가자 어두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훅 끼쳐 왔다.
“됐어! 어서 올라와!” 현우가 준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준영은 허둥지둥 선반을 밟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우는 통로 입구에 매달려, 불안정한 자세로 준영을 기다렸다. 아래에서는 ‘것들’의 손이 더는 닿지 않는다는 듯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름 끼치는 긁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준영이 현우의 발치까지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피가 모두 빠져나간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서! 내가 먼저 올라갈게!” 현우가 소리쳤다.
“잠깐만!” 준영이 현우의 발을 잡았다. “현우야, 내가 먼저 올라가야 해. 네가 아래에서 받쳐줘.”
“뭐라고?!” 현우는 황당했지만, 준영의 얼굴에 어린 광기를 보자 순간 말을 잃었다.
그때였다. 창고 문이 완전히 부서지고, 수십 마리의 ‘것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썩은 이빨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비명과 울부짖음이 귀청을 찢는 듯했다.
“현우야!” 준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공포, 그리고 무언가 냉혹한 결심이 그 안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현우는 분명히 보았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더 끌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준영의 손이 그의 발을 잡고 매달렸다. 준영은 아래에서 현우의 몸을 발판 삼아 올라가려는 듯 거칠게 현우의 다리를 휘둘렀다.
“준영아! 뭐 하는 거야?!” 현우가 버둥거렸다. 불안정한 선반 위에서 몸이 흔들렸다.
그 순간, 준영의 얼굴이 잔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은 현우가 아는 친구 준영의 눈이 아니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본능, 그리고 그 이상의 이기심이 번뜩였다.
“미안하다, 현우야…! 나도 살아야겠어!”
쿵!
준영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현우의 가슴을 강타했다. 현우는 억 소리를 내며 움찔거렸다. 매달려 있던 손아귀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준영은 현우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어냈다.
“야! 준영아!” 현우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러나 준영은 현우의 절규를 무시하고 미친 듯이 몸을 끌어올렸다. 그의 발길질은 현우의 손을 놓게 만들었다. 낡은 철제 선반 위에서 현우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
‘아니… 이럴 수는 없어…!’
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준영을 올려다봤다. 준영은 이미 환풍구 통로 안으로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그의 얼굴은 공포와 죄책감, 그리고 생존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감정보다도, 현우의 뇌리에 박힌 것은 자신을 버리는 준영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퍽!
현우의 몸이 낡은 선반에서 떨어져 나갔다. 추락하는 짧은 순간, 그는 아래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것들’의 썩은 얼굴들과, 멀어져 가는 통로 속 준영의 뒷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통로 안에서 덮개가 닫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그리고 현우의 몸은, 아래층을 가득 메운 시체들 위로 무참히 떨어져 내렸다.
살아남은 자들의 아비규환 속에서, 현우는 절규했다. 온몸을 찢는 듯한 고통보다 더 큰, 배신감과 분노가 그의 심장을 집어삼켰다.
‘준영… 네가… 나를…!’
그때, 현우의 피 묻은 손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잡혔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이것으로 죽든, 살든.
하나 확실한 건, 현우의 눈동자에 핏빛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증오뿐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준영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잔혹한 예감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