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화된 세상 속, 찢겨나간 하늘 아래 선명하게 비치는 그림자. 그 그림자를 쫓아 우리는 걸었다.
거대하고 장엄했던 마법 학교, ‘엘레나르 학원’의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은 폐허. 한때 지식과 마법의 빛으로 반짝였을 첨탑들은 이제 부러진 이빨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갈라진 대리석 바닥에는 바싹 마른 덩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깨진 창문으로는 먼지 섞인 바람이 음산한 비명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이게 다야?” 카인이 거친 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의 두꺼운 방호복 위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도서관은 이미 싹 털렸을 거고, 생활관은…… 뭐, 볼 것도 없겠지.”
“아니.” 내가 낮게 읊조렸다. 시선은 학교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은밀했던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엘레나르 학원의 진정한 가치는 지상에 있지 않았어. 고위 마법사들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들은 언제나 지하에 숨겨져 있었지.”
세라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낡은 지도를 펼쳤다. 종잇장은 너덜너덜했고, 잉크는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학원 기록에 따르면, 지하에는 ‘고대 아티팩트 보관실’, ‘금지된 마법 실험실’, 그리고… ‘봉인된 구역’이 있다고 해요. 특히 이 봉인된 구역은 접근조차 금기시되어 있었대요. 학원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고.” 세라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특유의 영적 감수성으로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다.
“봉인된 구역이라.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군.” 카인이 큼지막한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그의 눈빛은 탐욕과 기대감으로 번뜩였다. 우리는 생존자다. 이런 폐허 속에서 ‘금기’는 때로 ‘생존의 열쇠’와 동의어였다.
우리는 중앙 강당의 거대한 잔해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강당은 천장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 한때 장엄했을 연단 위로 굵은 햇빛 기둥이 쏟아지고 있었다. 빛줄기 속을 부유하는 먼지 입자들이 마치 잊힌 유령들처럼 춤을 추는 듯했다.
강당의 가장 안쪽, 무너진 석상 더미 뒤편에 숨겨진 문이 드러났다. 문은 단단한 마법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표면에는 섬뜩한 형상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일곱 개의 눈이 달린 뱀이 제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 그 뱀의 비늘 하나하나가 마력으로 번득이는 듯했다.
“잠깐, 이 문양… 어디서 본 것 같아.” 세라가 손전등을 비추며 문양을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어둠의 서적에서,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영혼을 찢는 뱀’의 상징과 비슷해요. 이 문양은… 악마와의 계약에 쓰였다고 전해지는 건데…”
“악마? 젠장, 학교가 아니라 무슨 교단이었던 거 아니야?” 카인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내가 손을 뻗어 문양을 만졌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희미한 마력의 잔류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마력은 어딘가 뒤틀리고 삐걱거리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었다. “보통의 봉인과는 달라. 이건 뭔가를 가두기 위한 봉인이라기보다는… 뭔가를 *지키기 위한* 봉인에 가까워.”
나는 허리춤에 찬 고대 마법석을 꺼내 들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돌은 내가 가진 유일한 마법 도구였다. 마법석을 문양에 갖다 대자, 차가운 금속 위로 따뜻한 에너지가 퍼져나갔다. 마법 강철 문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며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수백 년 만에 열리는 문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우리를 휘감았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토해내는 숨결처럼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었다. 흙먼지 섞인 곰팡이 냄새,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금속성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 계단이었다. 낡고 축축한 석회암 계단은 미끄러웠고, 벽면에는 이끼가 징그러울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젠장, 이런 곳에 뭐가 있다고 이렇게 깊이 파 놓은 거야?” 카인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경박함 대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십여 층을 내려갔을까. 계단은 마침내 평평한 복도로 이어졌다. 복도 양옆으로는 견고한 나무 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그중 일부는 부서진 채 안쪽의 어둠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라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안! 저기… 저것 좀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복도 끝, 가장 크고 견고해 보이는 문 앞이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는데, 문틈 사이로 삐져나온 것은… 사람의 손바닥이었다. 바싹 말라 비틀어진 손바닥. 피부는 갈색으로 변색되어 있었고, 손가락은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마치 절규하는 형상 그대로 굳어버린 듯했다.
카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냐… 저 꼴로 죽은 건.”
나는 천천히 그 손바닥에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손목에는 낡은 학원 배지가 채워져 있었다. 마법 교수임을 나타내는 은색 펜던트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학원 교수야… 그것도 고위 교수였던 모양인데.”
문 안쪽에서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문을 완전히 열자, 우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방 안은 거대한 홀이었다. 홀 중앙에는 불규칙한 모양의 검은색 제단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주변에는… 수많은 인간 형상의 조각상들이 서 있었다.
처음엔 조각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들은 돌이 아니었다.
몸통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늘었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입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듯 활짝 벌어져 있었다. 피부는 회색빛으로 바싹 말라붙어 있었는데, 그 위로 마치 석회화된 혈관처럼 검붉은 줄기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지만, 어딘가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이게… 뭐야?” 세라의 목소리가 귀뚜라미 소리처럼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나는 제단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섬뜩한 호기심이 공포를 압도했다.
제단은 검은 마법석과 뼈가 뒤섞인 듯한 기괴한 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피처럼 검붉은 액체가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그리고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낡은 일지가 놓여 있었다. 찢어지고 얼룩진 가죽 표지의 일지였다.
일지를 펼쳤다. 낡은 종이에서 곰팡이 냄새와 피비린내가 함께 풍겼다. 글씨는 필사적이었다.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죽음을 극복하고, 완전한 생명을 부여하는 마법. 하지만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생명을 부여하는 대신, 그것은 삶을 비틀고 왜곡했다. 영혼은 껍데기에 갇히고, 육체는 고통의 표본이 되었다. 이것은 금기였다. 절대로 발설되어서는 안 될 저주…*
손이 떨렸다. 일지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곳은 생명을 창조하려던 마법사들의 마지막 발악이자, 그들이 빚어낸 끔찍한 실패작들이 전시된 지옥이었다. 저 기괴한 형상들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마법에 의해 변이된 인간들이었다.
“이건… 마법 실험으로 만들어진 거야.” 내가 겨우 말을 이었다. “죽음을 극복하려다가… 이렇게 된 거야.”
세라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홀 중앙의 검은 제단에서 웅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검은 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검붉은 액체가 미세하게 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에 서 있던 기괴한 인간 형상들 중 하나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동자가 우리를 향했다.
홀을 가득 채운 정적을 깨고, 끔찍하게 갈라진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악-!”
그것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심장을 찢는 듯한 절규였다. 동시에, 제단 위 검붉은 액체가 부글거리며 거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거품 속에서… 마치 태아의 형상처럼 웅크린 무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엘레나르 학원의 가장 깊은 곳, 가장 끔찍한 금기 속에 갇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