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나 마법 학원. 이름만 들어도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환상적인 곳.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배움터. 하지만 하진에게 그곳은 금지된 지하실 통로만큼이나 답답한 곳이었다. 정해진 마법 공식, 반복되는 이론 수업, 획일적인 교복. 하진은 항상 정해진 길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충동은 오늘따라 유난히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디 가, 하진?”
점심시간, 교과서 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잠이 가득했다.
“궁금한 게 있어서.” 하진은 대충 답하며 어깨에 멘 가방을 고쳐 맸다.
유리는 하품을 길게 하며 다시 책 속으로 사라졌다. “또 어디 이상한 데 기웃거리지 마. 이번 학기에도 경고장 받으면 너 진짜…”
하진은 유리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학교 본관 지하로 향했다. 에테르나 학원에는 수많은 금지 구역이 있었다. 특히 구관 지하에 위치한 ‘별의 심장부 아래 서고’는 접근 금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출입 제한이 걸려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학원 설립자들이 최초의 마법을 연구했던 곳이며, 너무나 강력하고 위험한 마법 유물들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물론, 하진에게 그런 경고는 오히려 달콤한 유혹이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낡은 복도에는 마법 램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발소리가 텅 빈 복도에 메아리치며 기분 나쁜 침묵을 깨트렸다. 하진은 가방에서 꺼낸 마법 랜턴을 켜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녹슨 쇠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스쳤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을 법한 서고였다.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책장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낡은 마법 서적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진은 책등에 새겨진 알아보기 힘든 고대 문자를 손으로 더듬었다. 이곳이 바로 학원 설립자들이 ‘에테르나의 영원’을 맹세했던 장소라고 했다. 영원이라니. 과연 무엇을 위한 영원이었을까.
탐색은 길어졌다. 거미줄이 쳐진 복도를 지나고, 무너져 내린 책장 잔해를 넘어갔다. 문득, 한쪽 벽면에서 희미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다른 곳의 희미한 마력과는 확연히 다른, 불길하면서도 매혹적인 기운이었다. 하진은 홀린 듯 그 기운을 따라 벽에 손을 댔다. 차가운 돌벽 속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게… 진짜 벽이라고?”
손가락으로 벽을 더듬자, 돌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감촉이 전해졌다. 어쩌면 숨겨진 문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하진은 마력을 응집해 벽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던 벽이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더니, 이내 거대한 벽돌 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굉음도 없이, 먼지 한 톨 날리지 않고. 마치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 안은 서고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둥근 돔 형태의 공간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으나, 중심부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압도적인 마력의 무게가 하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곳은 학원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하진은 랜턴 불빛을 높여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중심부에는 거대한 흑요석 제단이 솟아 있었다. 그 위에는 마치 밤하늘의 모든 별을 응축해 놓은 듯한 검은 수정이 놓여 있었다. 수정은 미약하게 맥동하며 불길한 보랏빛을 내뿜고 있었다. 제단을 둘러싼 바닥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었고, 공기는 금속 비린내와 알 수 없는 향내가 뒤섞여 역겨웠다.
하진은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그러나 죽음을 담고 있는 존재 같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하진은 수정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흑요석 수정이 강렬하게 폭주하며 공간을 뒤흔들었다. 보랏빛 섬광이 시야를 집어삼키고, 온몸의 감각이 뒤틀렸다. 멀미와 함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하진은 여전히 그 둥근 돔형 공간에 서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흑요석 제단은 광택이 흐르는 새것 같았고, 바닥의 붉은 문양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기의 냄새는 더 강렬해졌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엘리야.”
“네, 아르테미스 교수님. ‘영원의 심장’은 곧 완성될 것입니다. 에테르나는 영원한 마력을 얻게 될 겁니다.”
하진은 재빨리 제단 옆의 거대한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목소리의 주인들은 앳된 모습의 남녀들이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에테르나 학원 도서관에서 본 초창기 학원 설립자들의 초상화 속 복장과 똑같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광기 어린 희열이 뒤섞여 있었다.
“이번 희생자들은 어떤가?” 아르테미스 교수가 수정 제단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고대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우수한 인재들입니다. 특히 아론은… 마력의 질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합니다. ‘핵’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엘리야가 냉정한 어조로 답했다.
하진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희생자? 핵?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엘리야가 제단 옆의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 위에는 족쇄가 채워진 어린 마법사들이 차례로 누워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에테르나 학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하진이 알던 것과 같은 교복. 하지만 그들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몸은 무력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생들이었다.
“아, 안 돼…!” 하진은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내뱉을 뻔했다.
아르테미스 교수는 그들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에테르나의 영원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대가는 당연한 것. 이들의 마력은 학원의 영원한 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가 피땀 흘려 세운 이 학원이, 사소한 자원의 고갈로 무너질 수는 없지.”
그녀는 수정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은 수정이 더욱 격렬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보랏빛 섬광이 테이블 위 학생들의 몸으로 연결된 듯한 가느다란 마력 줄기를 타고 흘러갔다. 학생들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들의 마력이, 그들의 생명이 수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하진은 분명히 보았다. 절규할 힘조차 잃은 채, 그들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하진은 깨달았다. 에테르나 학원의 놀라운 마력, 시대를 초월한 그 견고함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학원… 설립자들이…!”
하진은 역겨움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천재적인 마법 학원, 영광스러운 역사, 위대한 설립자들. 그 모든 것이 수많은 학생들의 피와 생명을 제물 삼아 세워진 잔혹한 거짓이었다.
아르테미스 교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영원의 심장’은 영원히 고동칠 것이다. 에테르나는 영원히 번성하리라.”
그녀의 시선이 문득 하진이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향했다. 하진은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들켰나?
“무슨 소리라도 들었나, 엘리야?”
“아닙니다, 교수님. 환청이신 듯합니다.”
엘리야의 대답에 아르테미스 교수는 다시 시선을 거두었지만, 하진은 몸을 웅크렸다. 들키는 순간, 자신도 저 제단 위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섬뜩한 확신이 들었다.
공간이 다시 뒤틀리기 시작했다. 제단 위의 흑요석 수정이 과부하라도 걸린 듯 격렬하게 진동했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진은 본능적으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숨죽이며 기둥 뒤에서 빠져나와, 재빨리 처음 들어왔던 벽돌 문을 향해 달렸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다시 보랏빛 섬광으로 가득 찼다.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다시 한번 세상이 뒤집혔다.
눈을 떴을 때, 하진은 축축하고 차가운 현재의 서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눈앞의 흑요석 제단은 여전히 어둡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하진의 눈에는 그 제단이 학생들의 피로 물든 괴물처럼 보였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서고의 공기는 여전히 낡은 종이와 먼지 냄새를 풍겼지만, 이제는 그 냄새 속에서 희미한 피비린내와 절규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진은 비틀거리며 서고를 빠져나왔다.
복도를 지나 본관으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학원 건물이 마치 낯선 괴물처럼 느껴졌다. 빛나는 탑, 웅장한 아치형 입구, 활기 넘치는 학생들. 모든 것이 끔찍한 위선으로 보였다. 이 모든 영광은, 과거의 끔찍한 제물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하진! 너 진짜 어디 갔다 이제 와? 점심시간 다 끝났어!”
본관 앞에서 유리가 투덜거리며 하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맑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의 진짜 비밀을.
하진은 유리를 응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목격한 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찬란하고 위대한 에테르나 마법 학원은, 아름다운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의 심장부는, 지금도 깊은 지하에서 끔찍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