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침묵하는 강철

회색빛으로 물든 지하 공동체, ‘요새’는 늘 축축하고 차가웠다. 한때 문명을 지탱했던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콘크리트 잔해들이 켜켜이 쌓인 지상과는 달리, 이곳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복원된 생존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그 견고한 강철의 심장부마저 때때로 균열을 보였다.

오늘처럼 말이다.

요란한 비상등이 깜빡이며 좁은 통로를 붉게 물들였다. 요새의 핵심 구역 중 하나인 ‘엔진 동력실’로 향하는 길목은 이미 삼엄한 경비로 가로막혀 있었다. 경비대원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굳게 닫힌, 거대한 방폭문으로 향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강 팀장?”

낮게 깔린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타난 이는 요새의 실질적인 해결사, 서진이었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번뜩이는 비상등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낡고 헤진 코트 차림의 그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 팀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진에게 다가왔다. 그의 땀에 젖은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서진 씨, 큰일 났습니다. 김도진 기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다고요? 어떤 식으로요?” 서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밀실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 강 팀장이 이를 악물었다. “동력실은 안에서부터 잠겨 있었습니다. 문은 잠금쇠로 굳게 걸려 있었고, 외부에서 강제로 열려는 시도도 없었어요. 환기구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고, 비상 통로는 어차피 바깥쪽에서만 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창문은 없고요.”

“시신은 누가 발견했죠?”

“김 기장님 조수인 유미 씨가 발견했습니다. 김 기장님이 출근 시간에 나오지 않자 걱정돼서 찾아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 다른 대원들과 겨우 열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문을 열기 전 상태는 어땠습니까? 훼손된 곳은 없었고요?”

“전혀요. 잠금쇠는 안에서 완전히 걸려 있었습니다. 쇠 지렛대 같은 걸로 겨우 비틀어 열었죠. 지금은 다시 닫아놓았습니다. 훼손된 부분은 그대로 두었고요.”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강철 방폭문을 훑었다. 견고한 강철 표면에 희미하게 남은 긁힌 자국들과, 강제로 열면서 생긴 새로운 금속의 번뜩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문에 손을 얹어 차가운 온기를 느꼈다.

“안으로 들어가 보죠.”

문이 다시 열리고 서진은 동력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퀴퀴한 기름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동력실은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엔진의 낮은 윙윙거림이 음산하게 울리고, 여기저기 연결된 전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얽혀 있었다.

중앙에 놓인 작업대 옆, 김도진 기장이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녹슨 스패너가 깊이 박혀 있었다.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이미 싸늘하게 굳은 그의 얼굴에는 고통과 함께 알 수 없는 의문이 서려 있었다.

“사인은 등 부위의 강한 충격으로 인한 출혈 과다입니다.” 요새의 의료 담당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망 시각은 대략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작업 중 변을 당하신 것 같습니다.”

서진은 시신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스패너에는 손대지 않고, 김 기장의 손가락 마디마디, 작업복 주머니, 그리고 그 주변 바닥에 흩어진 작은 부품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시선은 흡수 스펀지처럼 모든 정보를 빨아들였다.

“이 스패너는 기장님 개인 공구함에 있던 겁니다. 저런 특별한 크기는 기장님만 사용하셨어요.” 유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서진은 일어서서 동력실 전체를 다시 한번 훑었다. 기계 패널, 제어장치, 그리고 저 뒤편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엔진 블록들.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지만, 김 기장이 주로 사용하던 작업대 주변만큼은 비교적 깨끗했다.

“문은 안에서 잠겼다고 했죠?” 서진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네, 분명히요!” 강 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 문은 김 기장님이 직접 개조한 겁니다. 내부에서 저 육중한 빗장을 걸면, 외부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열 수 없게 설계되어 있어요. 지문 인식 장치도 자동으로 비활성화됩니다. 오직 안에서만 풀 수 있는 거죠.”

“그럼 저 빗장은 누가 걸었을까요? 기장님 스스로요?” 서진의 목소리에 미묘한 뉘앙스가 섞였다.

“그럼요! 기장님은 워낙 조심성 있는 분이셨습니다. 특히 밤샘 작업 때는 늘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셨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요.”

서진은 문 안쪽의 빗장을 응시했다. 거대한 강철 빗장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잠겨 있을 터였다. 그는 문틀과 빗장 사이에 희미하게 보이는 미세한 마모 흔적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사용으로는 생기기 어려운, 묘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마모였다.

그는 문 주변 바닥을 살폈다. 미세한 쇳가루가 빗장 아래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문틀의 가장자리, 콘크리트와 강철이 만나는 지점에 손톱만 한 검은 그을음 자국이 보였다. 너무나 미미해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흔적이었다.

“이 검은 그을음은 무엇입니까?” 서진이 무릎을 굽혀 그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강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원래 없던 것 같은데. 아마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흔적일까요?”

“아니요.” 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고열로 인한 흔적입니다. 어떤 금속이 순간적으로 녹아내리면서 생긴 자국이죠. 그리고 이 쇳가루들은… 문의 빗장을 강제로 열 때 생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훨씬 더 미세하고, 균일해요.”

그는 문 안쪽의 빗장을 한 번 더 만져보았다. 묵직한 강철의 차가움.

“강 팀장, 김 기장님이 이 문의 잠금장치를 직접 개조했다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기존의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자랑하셨어요.”

“이 빗장이 안에서 걸리면, 외부의 지문 인식 장치가 비활성화된다고요?”

“네, 동시에요. 완전히 밀폐되는 겁니다.”

서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김 기장의 시신으로 향했다. 등 뒤에 박힌 스패너, 굳어버린 표정,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작은 부품들. 그의 머릿속에서 조각난 정보들이 마치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손전등을 꺼내 문 주변을 구석구석 비췄다. 그리고 문틀과 벽이 만나는 미세한 틈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섬세한 긁힌 자국을 발견했다. 마치 얇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듯한 흔적이었다.

“강 팀장, 여기 요새에 김 기장님 말고 이 동력실 문의 구조와 잠금장치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강 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기장님의 조수인 유미 씨가 어느 정도는 알 겁니다. 그리고 과거에 기장님과 함께 이 동력실의 보수 작업을 했던 몇몇 인원들이요. 하지만 저 잠금장치 개조는 기장님이 거의 혼자 하셨습니다.”

유미는 불안한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저는 기장님께 배운 대로 조작할 줄은 알지만, 설계까지는 모릅니다.”

“그렇군요.” 서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서진 씨, 도대체 뭘 발견한 겁니까?” 강 팀장이 답답한 듯 물었다.

“밀실의 트릭은 문 자체에 있었습니다.” 서진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문 안쪽 빗장과 그 주변의 미세한 흔적들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이 문은 겉으로는 완벽한 밀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인이 밖에서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함정’이었습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 기장님은 이 빗장이 안에서 걸리면 외부 지문 인식이 비활성화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죠. 즉, 밖에서 문을 잠그고 싶으면, 빗장이 안에서 걸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밖에서 빗장을 걸 수 있었을까요?”

“말도 안 됩니다! 빗장은 안에서만 조작 가능해요!” 강 팀장이 흥분해서 외쳤다.

“겉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서진은 침착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저 빗장은 강철로 되어 있죠. 그리고 김 기장님은 이 동력실에서 온갖 금속 가공 작업을 하셨습니다. 범인은 김 기장님의 공구를 이용했을 겁니다.”

그는 그을음 자국이 있던 문틀의 미세한 틈새를 가리켰다. “여기에 남은 그을음은 강력한 전류로 금속을 녹여 절단할 때 생기는 흔적입니다. 그리고 이 미세한 쇳가루들. 그리고 문틀의 긁힌 자국.”

“범인은 얇고 긴 특수 공구를 만들었거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구를 이 문틀의 아주 작은 틈새로 밀어 넣었던 겁니다. 안에서 빗장이 걸린 상태에서, 그 공구를 이용해 빗장 내부의 특정 부분을 조작한 거죠. 김 기장님이 설계한 잠금장치의 맹점을 파고든 겁니다. 안에서 걸린 빗장을 외부에서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빗장을 걸 수 있도록 만든 ‘함정’을요.”

서진은 틈새에 손가락을 대고 설명했다. “김 기장님은 이 빗장을 외부로부터 더욱 견고하게 잠그기 위해, 빗장이 내부에서 걸리는 순간 외부에서 특정 전압을 가하면 빗장이 더욱 깊이 결합되는 ‘이중 잠금’ 구조를 만들었던 겁니다.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역으로 이용된 거죠.”

“범인은 이 틈새로 특수 전극을 삽입했고, 김 기장님 작업대 주변에 있던 고전압 전원 장치에 연결했을 겁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류를 흘려보내 빗장 내부의 특정 금속 부분을 순간적으로 녹여 결합을 유도하고, 빗장을 밖에서 완전히 걸리게 만든 겁니다. 그리고 재빠르게 전극을 빼내면서 생긴 흔적이 바로 저 미세한 그을음과 긁힘 자국, 그리고 쇳가루들이죠. 그 후에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침입했던 겁니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발하고 잔혹한 트릭이었다.

“그럼 범인은 누가 되는 겁니까?” 강 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진의 시선은 조용히 유미에게 향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은 이 문의 설계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김 기장님 작업대와 공구들에 능숙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특히 그 고전압 전원 장치와 연결하는 방식은 더욱 그렇죠. 그리고 김 기장님의 특수한 스패너를 사용해 살해할 정도로, 그의 작업 습관과 개인 물품을 잘 아는 사람.”

“유미 씨, 당신은 김 기장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가장 능통한 사람이죠. 그리고 당신의 작업복에는 방금 설명한 것과 같은 종류의 미세한 쇳가루가 묻어 있습니다. 틈새에 삽입했던 전극을 빼내는 과정에서 옷에 묻었을 겁니다.”

유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것은 슬픔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아닙니다!”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김 기장님이 이중 잠금 시스템을 시험하기 위해 안에서 빗장을 걸고 외부 전압을 기다리던 순간, 당신은 그를 죽이러 들어갔습니다. 어쩌면 그에게서 중요한 설계도를 빼내려 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당신은 그가 죽은 후, 문의 틈새로 공구를 넣어 빗장 내부의 회로를 조작하여 밖에서 다시 잠근 겁니다. 그리고는 쇠 지렛대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연극을 한 거고요.”

서진의 마지막 한 마디는 비수가 되어 유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는 결국 무너져 내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읍… 기장님이… 기장님이 저한테만 핵심 설계를 안 알려주셨어요… 저보다 능력 없는 다른 사람들한테만…”

요새의 비상등은 여전히 붉게 깜빡였지만, 그 빛은 더 이상 수수께끼를 감추고 있지 않았다. 서진은 말없이 돌아섰다. 복잡한 기계음만이 울려 퍼지는 동력실에서, 그의 존재는 이미 흐릿한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밀실이 풀리고,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났지만, 요새의 차가운 강철은 여전히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