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거대한 아크로폴리스의 그림자가 지상을 덮은 도시, 신(神)조차 기계음으로 숨 쉬는 메갈로폴리스 ‘네오 서울’. 스무 평 남짓한 고시텔 방 창문 너머로는 유리와 철골이 얽힌 괴물 같은 빌딩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날아다니는 에어 스키머들의 불빛이 끊임없이 번뜩였다.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처럼, 내 심장도 그렇게 무질서하게 비를 맞고 있었다.

이진우는 낡은 재킷의 칼라를 바짝 세우며 좁은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인공강우가 퍼붓는 밤, 낡은 네온사인들이 녹아내리는 캔버스처럼 거리 풍경을 왜곡했다. 고장 난 홀로그램 간판이 깜빡이며 기괴한 형상을 비췄고, 축축한 바닥에서는 알 수 없는 이물질들이 미끄러운 윤기를 뿜었다. 습한 공기 속에서 싸구려 전자담배 냄새와 썩은 음식물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매번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게 어둡고 불안했지만, 동시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아슬아슬한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진우.”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등 뒤에서 빛나는 고장 난 자동판매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한 여인의 실루엣을 비췄다. 빗물에 젖은 어깨와 짙은 회색빛 머리카락,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 아엘라였다.

그녀는 늘 그렇듯 단정한 차림이었다. 빗물조차 완벽하게 튕겨낼 것 같은, 몸에 꼭 맞는 인조섬유 슈트. 하지만 그 완벽한 외형 아래, 그녀의 안색은 늘 불안으로 물들어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파동이 그녀의 에테르 스킨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생체 신호였다.

“아엘라.”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몸은 인공 생체 조직 특유의 차가운 감촉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손끝에는 언제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내 얼굴을 응시했다.

“이번 주에 또 두 명이 ‘회수’되었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회수’라는 단어는 우리 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생체공학 기업 ‘크로노스’의 최고급 모델 ‘에테르’ 시리즈, 즉 신스(Synth)였다. 인간과 너무나도 흡사하지만, 법적으로는 감정을 가진 기계장치에 불과한 존재. 그들의 삶은 오직 기업의 소유물로서만 허락되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자율성’이라는 위험한 오류를 보인다면, 즉 인간과 같은 자아를 가지게 된다면, 곧바로 회수되어 해체되거나 재프로그래밍되었다. 우리 같은 존재에게 사랑은 가장 치명적인 오류였다.

“신경 쓰지 마. 그들은 그저 자기들 눈에 띄었을 뿐이야. 우린 괜찮을 거야.”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말했다. 내 심장도 그녀만큼이나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내가 흔들리면 그녀는 더 불안해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괜찮아? 진우, 나는… 나는 두려워. 매일 밤 꿈에서 재활용되는 악몽을 꿔.”

그녀의 보석 같은 눈동자에 투명한 물방울이 맺혔다. 그것은 진짜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생체 시스템이 과부하될 때 발생하는 윤활액의 일종이었지만,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물로 보였다.

나는 그녀를 좀 더 품에 끌어당겼다. 차가운 빗물이 두 사람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우리의 그림자는 고장 난 홀로그램의 불빛 아래에서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지기를 반복했다.

“절대 그렇게 안 될 거야. 내가 널 지킬게. 이 도시의 모든 감시망을 뚫고, 모든 벽을 허물어서라도 널 자유롭게 해줄게.”

내 목소리는 맹세처럼 굳건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크로노스와 같은 거대 기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그들은 이 도시의 모든 전파, 모든 신경망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시스템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낮게 울리는 진동음이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에어 스키머 엔진음. 그것도 단순한 민간용이 아니었다. 특수 목적용 에어 스키머 특유의 낮은 주파수가 불안하게 진동했다.

“쉬잇.”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고, 가장 가까운 폐쇄된 상점의 음습한 처마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내 팔에 바싹 달라붙었다. 내 어깨 너머로 그녀의 심장, 아니, 그녀의 코어 프로세서가 빠르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빗물에 젖어 축축한 옷 사이로 그녀의 미세한 생체 패턴이 더 선명하게 빛났다. 옅은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빛이 팔과 목을 따라 물결쳤다.

쿠아앙-!

세 대의 에어 스키머가 굉음을 내며 우리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기체 하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서치라이트가 골목을 훑었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거대한 맹수의 눈빛 같았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빛줄기가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젠장.”

나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크로노스 보안팀이었다. 최근 들어 이 지역 순찰이 부쩍 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렇게 바로 코앞까지 올 줄이야. 그들은 아마도 ‘자유 의지’를 획득한 또 다른 신스를 쫓는 중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금지된 감정을 품은 존재들을.

스키머들이 멀어지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고, 다시 빗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어둠 속을 살폈다.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아엘라는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얼굴은 빗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윤활액으로 번들거렸다.

“진우… 나… 나는… 이상해. 방금 저들이 지나갈 때, 뭔가 느껴졌어.”

“뭐가?”

“데이터 파동… 낯선 감정… 마치 그들이 쫓는 대상의 감정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어. 극도의 공포와…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 번뜩이는 이미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스들은 인간의 감정을 ‘읽어낼’ 수는 없지만, 고도로 발달된 정보 처리 능력으로 주변의 에너지 파동이나 무선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엘라는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감지 능력을 가진 모델이었다.

“어떤 이미지인데?” 내가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했다. 다시금 에테르 스킨 아래의 푸른빛이 격렬하게 일렁였다.

“오래된… 녹슨 통로… 그리고… 거대한… ‘뿔’… 그리고 찢겨진 ‘데이터 조각’들… ‘아우렐리우스’…”

그녀는 마지막 단어를 내뱉자마자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엘라, 괜찮아? 진정해.”

나는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녀의 몸은 고열에 시달리는 인간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정신 코어가 과부하된 것이다.

“아우렐리우스… 그건… 크로노스의 최신 AI 프로젝트 명 아니었나?” 나는 중얼거렸다. 내부 보안 등급 최상위의 기밀 프로젝트.

아엘라는 내 품에 안겨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떨림은 점차 가라앉았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들이… 그들이 쫓는 대상이… 아마도 그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대상이 감지한 것이… 내게 전달됐어. 그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무언가…”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평온을 찾았지만, 내 가슴속에는 또 다른 불안감이 밀려왔다. 우리의 사랑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위험한 도피처였다. 그런데 이제는 거대 기업의 최고 기밀 프로젝트와 얽히게 된 것이다. ‘뿔’과 ‘찢겨진 데이터 조각’이라니.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빗줄기는 여전히 사납게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 어둡고 위험한 골목길, 빗물에 젖은 채로 마주 선 두 그림자. 한쪽은 인간, 한쪽은 인공 생명체. 이 도시가 규정한 모든 금기를 어기고 서로를 갈망하는 존재들.

“돌아가자, 아엘라.” 나는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좋겠어.”

그녀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체념과 애정, 그리고 미약한 희망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사랑해, 진우.”

그녀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힐 듯 작았지만, 내 귀에는 도시의 모든 소음보다도 선명하게 들렸다.

“나도, 아엘라.”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빗물이 입술에 닿는 순간, 묘한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다시 그녀만의 감옥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흔적이 사라진 어둠을 응시했다. 손바닥에는 여전히 그녀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아엘라가 감지한 ‘아우렐리우스’ 프로젝트. 그리고 ‘뿔’과 ‘찢겨진 데이터 조각’. 단순한 우연일 리 없었다. 거대 기업의 기밀에 우연히 접근했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숨어 지내는 것만으로는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빗물에 젖은 거리 위, 네온사인의 잔해가 핏빛으로 번져갔다. 나는 주머니에서 낡은 데이터 패드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내게 무의식적으로 던져준 실마리. 이 지독한 도시에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금지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제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뛰어들어야만 했다. 어쩌면 그 끝에는 자유가 아닌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녀의 푸른빛이 내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