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비명
마법학교 ‘에테르나’의 가장 깊은 곳, 과거라면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을 이곳은 이제 퀴퀴한 곰팡이와 핏빛 흔적들로 얼룩진 폐허나 다름없었다. 차가운 지하 공기가 폐부를 찌르자 강준은 낡은 마력등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길고 기괴한 그림자들이 벽을 타고 꿈틀거렸다.
“이곳이… 그 금기된 구역인가요?”
서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녀의 손에서 피어난 섬광구슬은 겨우 몇 걸음 앞을 비출 뿐이었다. 평소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했을 에테르나 수석 생도의 얼굴에는 긴장과 경멸이 교차하고 있었다. 에테르나의 명예는 이미 산산조각 났지만, 그들의 탐사가 밝혀낼 진실은 더 추악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 학교 기록에도 언급조차 없는 곳이지. 비공식적으로 ‘심연’이라고 불렸어. 놈들이 처음 나타나기 전부터, 이곳에서 이상한 마력 반응이 감지됐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지민이 들고 있던 낡은 마력 감지 수정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녀는 에테르나 도서관에서 박혀 살다시피 했던 고대 마법학 전공자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의 광범위한 지식은 그 어떤 검이나 마법보다도 귀중했다.
그들은 미로처럼 얽힌 지하 통로를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원래는 마법진 연구나 고대 유물 보관용으로 쓰였을 법한 거대한 석실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부서진 실험 장비와 정체 모를 액체로 흥건한 바닥, 그리고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잔해들로 가득했다. 마치 격렬한 폭동이라도 일어났던 것처럼 모든 것이 난장판이었다.
갑자기, 서윤의 섬광구슬이 맹렬하게 요동쳤다.
“뭐지? 저기… 저것 좀 보세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거대한 철문이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음습하고 끈적이는 어둠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었다.
삐걱, 삐걱.
낡은 목마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소리. 아니, 움직이는 것은 목마가 아니었다. 철문 안쪽 벽에 매달려 있던 수십 개의 인형들이 저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하나같이 꿰매진 눈과 찢어진 입을 가지고 있었다. 섬뜩한 시선이 느껴지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장난감…?” 강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지하에 왜 저런 게….”
그 순간, 지민이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마력 감지 수정이 미친 듯이 붉게 번쩍였다.
“아니, 저건 장난감이 아니야! 마력 반응이… 이건 일종의… 제물…?”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문 안쪽의 어둠이 꿈틀거리더니 찢어진 인형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웃음은 인형의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알 수 없는 존재의 비명처럼 들렸다.
쿠구궁!
문 안쪽에서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인간의 형태를 잃은 채,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피부에는 거뭇한 혈관이 징그럽게 돋아 있었고,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팔은 날카로운 뼈 촉수로 변해 있었다. 머리 대신 흉터 자국으로 가득한 끔찍한 혹이 달렸고, 그 혹 가운데에서 썩은 이빨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괴물은 사지가 뒤틀린 채로 느릿느릿 기어 나왔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다 겨우 기어나온 망령처럼. 에테르나 학생들을 습격했던 일반적인 감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불쾌한 위압감이 흘렀다.
“젠장, 이런 놈은 처음 봐!” 강준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오른손에서 푸른색 마력의 검이 벼락처럼 솟아올랐다. “흩어져! 서윤은 마법 지원, 지민은 저 놈의 약점을 찾아!”
“네!” 서윤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자, 그녀의 손끝에서 여러 개의 마력 화살이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은 괴물의 몸에 박혔지만, 놈은 움찔거릴 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몸이 부풀어 오르며 더 거대해지는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아! 마력이… 마력이 너무 불순하고 뒤섞여 있어요!” 지민이 황급히 외쳤다. 그녀의 수정은 이미 깨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저건… 마법 실험의 실패작이야! 금지된 마법으로 만들어진 변이체라고요!”
괴물의 혹에서 썩은 이빨들이 비틀거리며 벌어지자, 그 안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과 함께 주변의 낡은 철골 구조물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그들의 정신을 뒤흔드는 불쾌한 마력이 온 사방을 뒤덮었다. 서윤은 비명에 몸을 움츠렸고, 강준은 마력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잔해들을 부쉈다.
“금지된 마법… 대체 뭘 하려던 거지? 저런 괴물을 만들어서?” 강준의 목소리에도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괴물은 두 팔의 뼈 촉수를 휘둘러 바닥을 내려쳤다.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그 틈에서 검은 액체가 솟구쳐 올랐다. 액체는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마법등의 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했다.
“안 돼! 저건 ‘혼돈의 눈물’이야! 접촉하면 마력이 오염되고 정신이 파괴돼요!” 지민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재빨리 고대 마법의 보호막을 펼쳐 바닥에서 솟아나는 액체로부터 자신과 서윤을 지켰다.
강준은 빠르게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마력 검을 강하게 휘둘러 뼈 촉수 하나를 잘라냈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잘려나간 촉수 자리에서 검은 피가 솟구치더니 금세 새로운 뼈가 돋아났다.
“재생력이 너무 강해! 끝이 없어!”
“놈의 약점은… 약점은 머리예요! 하지만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그 혹 속에서 마력이 집중되고 있어요!” 지민이 겨우 외쳤다. “마력을… 순수한 마력을 정제해서 혹의 핵을 직접 공격해야 해요!”
순수한 마력. 그것은 에테르나의 특기였다. 서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구슬들이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마력을 끌어모아 응축하는 마법사의 궁극기였다. 그녀는 괴물의 비명과 혼돈의 눈물 속에서도 오직 한 점에 정신을 집중했다.
“서윤! 준비됐나?!” 강준이 괴물의 발목을 잘라내며 외쳤다. 괴물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고, 그 순간 혹이 강준을 향해 돌아섰다.
“지금이에요!”
서윤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손에서 응축된 빛의 창이 섬광처럼 뿜어져 나갔다.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은 주변의 모든 불순한 마력을 밀어내며, 정확하게 괴물의 끔찍한 혹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크아아아악!
괴물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절규를 내질렀다. 혹이 터져 나가고, 그 안에서 검붉은 마력 핵이 파괴되는 것이 보였다. 괴물의 몸은 빠르게 부패하기 시작했고, 이내 검은 재가 되어 바닥에 스러졌다.
세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싸움은 끝났지만,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 그들이 겪은 것은 일반적인 감염자가 아니었다. 에테르나 내부의 금지된 실험이 낳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었다.
“젠장… 대체 뭘 하려 했던 거야, 이 학교는…” 강준이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지민은 부서진 마력 감지 수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건 시작일 뿐일 거예요. 저런 괴물이 하나뿐일리 없어.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더 끔찍한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시선은 괴물이 기어나왔던 반쯤 열린 철문 안쪽,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로 향했다. 복도 끝, 아주 멀리서, 흐릿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규칙적이고 음산한 소리. 그것은 생명의 박동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깨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전조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소름 끼치게 왜곡된 마력의 흔적이 느껴졌다.
“저건… 안 돼… 설마….”
지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무언가 끔찍한 진실을 깨달은 듯 철문 안쪽을 노려봤다.
“서윤, 강준 선배… 저 소리… 혹시 ‘그것’ 아닐까요?”
강준과 서윤은 지민의 얼굴에 떠오른 극심한 공포를 보고 숨을 멈췄다. ‘그것’. 에테르나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만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마탑의 근원과 관련된, 존재해서는 안 될 금기의 힘.
그 힘이, 지금 이 지하에서, 박동하고 있었다.
철문 안쪽,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금기된 마력의 흐름과 함께, 셀 수 없는 작은 목마 인형들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장 박동과 함께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죽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듯이.
끔찍한 진실이, 그들 앞에서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