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독립적인 단편 소설

현우는 늘 ‘옛것’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의 아파트 20층 창문 밖으로는 차가운 도시의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지만, 그의 방 안은 앤티크한 시계, 낡은 망원경, 그리고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기묘한 금속 조형물들로 가득했다. 번쩍이는 크롬과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홀로 뚝 떨어진 듯한 그의 공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박물관 같았다. 최근에 그는 벼룩시장에서 ‘공간 공명 장치’라고 쓰인, 놋쇠와 구리로 정교하게 세공된 물건을 하나 들여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복잡한 태엽과 톱니바퀴, 그리고 미세한 증기 게이지들이 얽혀 있는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장식품처럼 보였다. 늙은 상인은 먼지 낀 그것을 그에게 넘기며 묘한 눈빛으로 “밤에 더 잘 어울리는 물건일세.”라고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공간 공명 장치’를 책상 한구석에 놓고, 밤늦게까지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설계도를 그렸다. 현우는 도시의 고층 빌딩들을 위한 미래형 ‘에테르 순환 시스템’을 구상하는 건축가였다. 그의 설계는 언제나 기계적인 미학과 유기적인 흐름을 결합한 것이었다.

이상한 일은 며칠 뒤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미세한, 그래서 착각이라 치부하기 쉬운 것들. 자정 무렵, 작업에 몰두하다가 잠시 고개를 들면 거실의 괘종시계가 ‘똑… 따악… 똑…’ 하던 평소의 리듬을 잃고 ‘따악… 똑… 따악…’ 하고 불규칙하게 울리곤 했다. 현우는 낡아서 그렇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 번은 밤늦게까지 설계도를 그리다가 허기가 져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돌아오니, 분명히 펼쳐 두었던 책상 위의 설계도가 반쯤 접혀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내가 피곤해서 그랬나.”

그는 잠시 눈을 비비고 다시 설계도를 펼쳤다. 피곤해서 생긴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조금 더 분명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우가 잠든 새벽,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은색 펜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잠결에 몸을 뒤척이며 펜을 주웠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 펜은 협탁 중앙에 놓여 있었고, 그 어떤 진동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현우는 자신의 서재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끼이익… 툭…’ 마치 오래된 문이 천천히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 같았다. 현우는 방문을 열고 서재 안을 살폈다. 책장 가득 꽂혀 있던 책들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필이면 그가 최근에 읽고 있던 양자 역학에 대한 두꺼운 원서였다. 페이지는 제멋대로 펼쳐져 있었고, 그가 책을 주우려는 순간, 책상 위에 놓인 그의 ‘공간 공명 장치’에서 미세한 ‘째깍’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장치 중앙에 박힌 작은 황동 구슬이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이게… 작동하는 건가?”

현우는 장치를 집어 들었다. 태엽은 감겨 있지 않았고, 외부 전원 연결부도 없었다. 그저 정교한 기계 예술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방금 그 깜빡임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장치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톱니바퀴는 부드럽게 돌아갔고, 작은 게이지의 바늘은 미동도 없었다. 잠시 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일련의 사건들은 더 이상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늦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부엌에 갑자기 ‘쿵!’ 하는 굉음이 울렸다.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돌아보니 거실의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 화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섬뜩한 무늬를 만들었다.

“이게 뭐야… 대체…”

현우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때였다. 바닥에 놓인 그의 스케치북이 스르륵,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스스로 펼쳐졌다. 종이 한 장이 펄럭이며 넘어갔고, 그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스케치북 위로, 그가 며칠 전 그렸던 ‘에테르 순환 시스템’의 초기 구상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림 위에, 마치 오래된 만년필로 누군가 낙서한 것처럼, 희미한 잉크 자국이 나타났다. 여러 개의 선이 구상도를 가로질러 그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작은 톱니바퀴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현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 책상 위, ‘공간 공명 장치’는 아까보다 더 밝은 붉은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게이지의 바늘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장치를 들어 올렸다. 놋쇠와 구리로 된 표면에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장치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리고 장치 밑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글자를 발견했다.

“『時空間 왜곡 제어기』. 이 장치는… 활성화되어 있다.”

갑자기 방 안의 모든 불빛이 ‘파직!’ 소리를 내며 동시에 깜빡이기 시작했다. 전등은 한동안 제 기능을 잃고 불안하게 점멸했다. 그의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재즈 음악은 끔찍한 잡음으로 변했고, 스피커에서는 ‘쉬이이이익…’ 하는 증기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마치 압축된 공기가 주위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젠장!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현우는 소리쳤다.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놓여 있던 책장이 ‘끼이이이익!’ 하는 비명과 함께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벽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책장과 벽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며 그 안에 꽂혀 있던 책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공포에 질려 몸을 돌렸다.

책장 사이로,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마치 뜨거운 공기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 아지랑이 속에서, 낡은 톱니바퀴들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책장과 벽 사이의 공간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현우는 직감했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은 ‘공간 공명 장치’였다. 이 기묘한 앤티크 물건이 그의 아파트 공간에, 아니 어쩌면 시공간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장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놋쇠 표면이 뜨거워져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그는 장치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중앙의 황동 구슬이 붉은색으로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주변의 작은 태엽들이 혼자서 돌아가고 있었고, 미세한 증기 게이지의 바늘은 한계치를 넘어설 듯이 흔들렸다. 그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이 장치는 ‘제어기’라고 쓰여 있었다. 제어한다는 것은, 끌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는 장치를 돌려보며 숨겨진 스위치나 레버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거실의 조명이 갑자기 더욱 격렬하게 점멸했다. 그의 눈앞에서 테이블이 삐걱거리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테이블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것처럼 공중에 불안정하게 떠 있었다. 그 위로, 깨진 화병의 유리 조각들이 중력을 거부하듯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 돼! 멈춰!”

현우는 필사적으로 장치를 만졌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미세한 전류가 느껴졌다. 그러다 그의 손가락이 우연히 장치 측면에 숨겨진 작은 놋쇠 나사를 건드렸다. 그 나사는 다른 나사들과 달리 미세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그 나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드드드드드…’

기계음이 울렸다. 장치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방향을 바꾸는 듯한 소리였다. 붉게 깜빡이던 황동 구슬의 빛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게이지의 바늘도 서서히 중앙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공중에 떠 있던 테이블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 조각들도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책장 역시 ‘쿵!’ 하고 다시 벽에 밀착되는 소리를 냈다. 모든 불빛이 제자리를 찾았고, 전축의 잡음은 멎었다. 다시 방 안은 고요해졌다. 다만,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그 고요를 찢었다.

현우는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들린 ‘공간 공명 장치’는 이제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내려놓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지만, 깨진 유리 조각들과 어질러진 책들은 방금 벌어진 일들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장치 쪽으로 기어갔다. 아까 돌렸던 놋쇠 나사가 여전히 미세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현우는 그것을 다시 시계 방향으로 살짝 돌려보았다.

‘째깍…’

아주 미세한 소리와 함께 장치 중앙의 황동 구슬이 다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붉은빛을 띠었다.

현우는 얼른 나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되돌렸다. 빛은 즉시 사라졌다.

“이건… 살아있는 거였어.”

그는 장치를 노려보았다.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공간의 특정 주파수와 공명하며 시공간의 얇은 막을 왜곡시키는, 이 세계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장치 자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밤새도록 잠들지 못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도시의 소음이 그의 아파트를 다시 에워쌀 때까지, 현우는 그 ‘공간 공명 장치’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 기묘한 기계는 대체 무엇이며,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고 그 상인이 말했던 “밤에 더 잘 어울리는 물건”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의 현대적인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놋쇠와 구리로 빛나는 그 앤티크 장치는, 언제든 다시 그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 준비가 되어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