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서울, 22세기.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인공강우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길바닥에 번뜩이는 기름 물감처럼 흩뿌렸다. 100층 높이의 백금그룹 본사 첨탑은 그 모든 빛을 흡수하며 밤하늘을 꿰뚫는 검은 송곳처럼 서 있었다. 그 안, 최고층에 위치한 한태수 회장의 집무실은 밖의 혼란스러운 도시와는 완벽히 단절된 고요한 밀실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는 이제 죽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경감 박선우는 얼굴에 드리운 땀을 닦아낼 생각도 못 한 채 유리벽을 응시했다. 제아무리 첨단 기술로 무장한 네오 서울의 경찰이라도 이 상황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보고 드린 대로입니다, 박 경감님. 외부 침입 흔적 없음. 내부 감시 시스템은 정상 작동. 한 회장님은 열두 시간 전쯤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선 이후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습니다. 문은 생체 인식 잠금장치로 안에서 걸려 있었고, 창문은 삼중합성유리로 외부 충격에 완벽 방어됩니다. 환기구는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그마저도 보안 센서가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박 경감의 옆에 선 감식반 팀장이 로비에서부터 집무실에 이르는 모든 보안 기록을 홀로그램 패드로 띄워 보였다. 투명한 홀로그램 영상 속에는 한태수 회장이 혼자 집무실로 들어서는 모습만 반복 재생될 뿐, 그 외의 어떤 인물도 포착되지 않았다.
“사인은?” 박 경감이 딱딱하게 물었다.
“신경계 쇼크사로 추정됩니다. 정확히는 연수 부위, 뇌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미세한 레이저 스칼펠에 의해 절단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외부 상처는 거의 없습니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미세한 흔적뿐입니다. 마치 정밀 수술을 받은 것처럼….”
박 경감은 이를 악물었다. 밀실 살인. 그것도 22세기의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고층 빌딩의 밀실에서. 범인은 대체 어떻게?
그때,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렸다. 박 경감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복도에 서 있는 남자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마른 몸에 비해 어깨가 넓었고, 짙은 눈썹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의 옆구리에는 조그만 데이터 포트가 반짝였다. 강세준, 일명 ‘블랙박스’라 불리는 사설 탐정이었다. 경찰도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만 골라 해결하며 전설이 된 남자. 그러나 그만큼 예측 불가능하고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오셨습니까, 블랙박스.” 박 경감이 마지못해 인사를 건넸다.
강세준은 아무 대답 없이 집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은 이미 주변의 모든 정보를 흡수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야에만 보이는 듯, 공기 중에 미세한 데이터들이 얇은 막처럼 겹겹이 쌓여 반짝이는 것이 박 경감에게도 어렴풋이 보였다. 그의 뇌에 심어진 신경 임플란트, ‘회로(The Circuit)’가 주변의 모든 환경 정보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중이었다.
강세준은 아무 말 없이 피해자인 한태수 회장의 시신 앞에 섰다. 최고급 인체 공학 의자에 앉은 채, 책상 위로 엎어져 있는 자세였다. 핏자국은 없었다. 죽음은 너무나도 정교하고 깨끗했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강세준 씨. 범인이 어떻게 이 방을 드나들었는지… 아니, 드나들긴 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박 경감이 설명했다.
강세준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시야에는 이미 사건 현장의 3D 재구성 영상이 홀로그램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시신의 목덜미와 주변을 아주 느리게 훑었다. 그의 눈동자는 미세한 떨림과 함께 초점을 바꾸는 듯했다.
“의자가… 미세하게 움직였군.” 강세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신경 임플란트를 통해 전달되는 디지털 음성처럼 정확했다.
“네?” 박 경감이 되물었다.
“평소 한태수 회장이 앉는 방식이 아니야. 그의 체형과 습관을 감안할 때, 등받이에 기대어 앉는 경향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몸이 너무 앞으로 쏠려 있어. 그것도 아주 조금. 의자 바퀴가 1도 정도 틀어져 있고, 착석 센서의 압력 분포도 미묘하게 다르군.”
박 경감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시신을 바라봤다. 그 정도의 미세한 움직임을 어떻게 포착한단 말인가?
강세준은 이어서 책상 위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데이터 오버레이는 책상 표면의 미세한 먼지 입자들을 붉은 점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건… 고도 유지 보수 드론의 잔해군.” 강세준이 손가락 끝으로 먼지 하나를 집어 올렸다. 렌즈가 달린 그의 눈동자 속에서 먼지 입자가 수천 배로 확대되어 보였다. “특정 고도에서 운영되는, 공기 역학적 필터링 시스템을 가진 드론만이 배출하는 미세 결정 입자야. 네오 서울의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 더구나 이 집무실은 24시간 공기 정화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공기 중의 불순물은 99.9% 이상 제거되는 최고 등급의 시스템입니다.” 감식반 팀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입자는 어디에서 온 거지?” 강세준의 시선이 천천히 천장을 향했다. 천장은 매끄러운 합성 재질로 된 패널들로 완벽하게 덮여 있었다. 이음매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장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모든 패널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고, 감지 센서 역시 작동 이상을 보고한 바 없습니다.” 박 경감이 말했다.
강세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야에 보이는 데이터 파동은 천장 한 지점에서 아주 미세한 에너지 변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회성이었고, 너무 짧아서 일반적인 센서로는 감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한태수 회장이 사망한 시각으로 추정되는 시점, 이 방의 천장 한 지점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 흐름의 교란이 발생했어. 극소형 장치가 순간적으로 작동하면서 발생한 전자파 노이즈와 미세한 진동… 그리고 직후, 방 전체의 자동 청소 시스템이 가동되었군.”
박 경감은 감식반 팀장과 눈을 마주쳤다. 자동 청소 시스템?
“어젯밤 11시 32분. 한 회장님의 사망 추정 시각 직후, 평소에 설정되지 않은 자동 청소 모드가 원격으로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방에 침입한 흔적이 없어 단순 오작동이나 시스템 오류로 판단했습니다.” 감식반 팀장이 홀로그램 패드를 조작하며 로그 기록을 띄웠다.
“시스템 오류가 아니야.” 강세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천장의 특정 패널을 가리켰다. “이 패널은 평범한 장식용이 아니다. 고도 유지 보수 드론을 위한 진입/출구 포트야. 평소에는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지만, 특정 시그널에 반응하여 개폐될 수 있지. 그리고 저 드론은… 아마도 내부 공기질 관리용으로 위장했을 거야. 아니면 빌딩 외벽 관리용이거나.”
박 경감과 감식반 팀장의 얼굴에 서서히 경악이 번졌다.
“범인은 한 회장을 살해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초소형 드론을 사용했어. 그 드론은 빌딩의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잠입했거나, 혹은 이미 빌딩 유지 보수 시스템에 침투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방의 천장에 위장된 포트를 통해 침투한 드론은 정교한 레이저 스칼펠로 한 회장의 연수를 절단했고, 곧바로 포트를 통해 빠져나갔지. 그리고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동 청소 시스템을 원격으로 가동시켰을 테고.”
강세준은 시신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한 회장의 몸이 미세하게 앞으로 쏠려 있던 건… 드론이 고정된 위치에서 정확한 사격을 위해 그의 머리 위치를 조정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주 정교한 조작이었다는 뜻이지.”
박 경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밀실의 트릭은 너무나도 간단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첨단적이고 기발해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범인은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밀실’이라는 고정관념을 역이용하여, ‘드론’이라는 비인간적인 존재를 침투시킨 것이다.
“그럼… 범인은 누구죠? 드론을 조종한 사람?” 박 경감이 간신히 물었다.
강세준은 천장의 패널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드론의 경로는 추적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 드론을 조종하고, 자동 청소 시스템에 원격으로 침투할 수 있는 접근 권한을 가진 자를 찾아야지. 단서가 없던 밀실은 이제 드론의 잔해와 에너지 기록이라는 명확한 흔적을 남겼다. 이제는 당신들 차례야, 박 경감.”
강세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네온사인의 강물이 번뜩이는 바깥 세상으로 그가 사라지자, 박 경감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완벽하게 밀봉된 듯 보였던 그곳에, 이제는 죽음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강세준의 말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밀실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