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내 눈앞에서 멀쩡한 유리컵들이 공중에 붕붕 떠다니며 불규칙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찻잎이 그대로 들어있는 찻주전자도 꿀렁꿀렁 거리더니, 뚜껑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그것도 모자라 벽에 걸린 달력은 휙휙 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날짜를 넘기고 있었다. 어제는 5일이었는데, 지금은 17일, 다시 3일, 또다시 29일.
“제발, 그만해!”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지난주에 우연히 골동품 가게 구석에서 발견한 이 이상한 돌멩이가 내 일상을 이렇게 박살 낼 줄 누가 알았을까.
그때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이나연 씨, 무사합니까?!”
문을 박차고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한재현 씨였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냉철함과는 달리 희미한 긴장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내 어수선한 거실을 한 번 스윽 훑어보더니, 공중에 떠다니는 찻잔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이번에도 그 돌멩이 짓입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과 함께 어렴풋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네! 맞아요! 제가 저번에 집주인 아저씨가 잔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작게 중얼거렸더니, 아저씨가 자기 집 현관에서 한 시간 동안 시공간이 꼬여서 계속 똑같이 넘어지는 버그에 걸렸다구요!”
그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시공간이 꼬였다니. 좀 더… 과학적인 표현은 없습니까?”
“지금 과학을 논할 때가 아니잖아요! 제 달력은 한 달에 네 번 개기월식을 보여주고 있다구요!” 나는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달력은 마침 1900년 1월 1일로 넘어가 있었다.
재현 씨는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내 손에 들린 작은 조약돌, ‘별의 조약돌’을 응시했다.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이 돌멩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예쁜 장식품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재앙의 씨앗이었다.
“돌려줘요, 이나연 씨. 더 늦기 전에.”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강압적이었다.
“돌려주다니요? 이게 제 건데요! 제가 찾은 건데요!” 나는 반사적으로 조약돌을 등 뒤로 숨겼다.
“이건 단순한 조약돌이 아닙니다. 고대의 강력한 마법이 봉인된 유물이에요. 당신 같은 일반인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한재현 씨 같은 ‘특별한 사람’은 다룰 수 있구요?” 나는 비꼬듯이 말했다.
“적어도 나연 씨보다는 이 현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무턱대고 소원이나 빌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낫겠죠.”
“사태를 악화시킨다니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 돌멩이만 만나고 다 박살이 났잖아요!” 내 목소리는 점차 격앙되었다.
내 격렬한 감정에 반응하듯, 공중에 떠 있던 유리컵들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찻주전자는 뚜껑이 아예 하늘로 튀어 올라 천장에 박혔고, 달력은 아예 종잇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날짜를 넘겼다. 급기야 탁자 위 사과가 둥실 떠오르더니, 내 머리 위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저 돌멩이는 강한 감정에 반응합니다. 특히 당신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에게는 더욱이요.” 재현 씨의 얼굴에 경고의 빛이 스쳤다.
“지금 제가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말씀이세요?” 나는 억울함에 눈을 크게 떴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감정은 돌멩이에게 최악의 연료가 되고 있어요.”
“최악의 연료요? 그럼 저한테 화내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이 난리통에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바로 그때였다.
내 손에 들린 별의 조약돌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재현 씨에게서도 푸른빛이 솟아올랐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뜨자,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재현 씨는 여전히 재현 씨였다. 다만,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내 시선에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아니, 그냥 가까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비쳤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서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는 것은 맞는데, 이상하게도 내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재현 씨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재현 씨의 시야로 보이는 내 모습이, 지금 내게 보이는 그의 모습과 똑같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손이 허우적거리는 것은, 정확히 내 손이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내 심장이 발사될 듯 뛰었다.
“설마… 우리가….”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재현 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상황임을 직감한 듯했다.
“몸이… 바뀌었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바뀌었다기보다는….” 그의 눈빛이 내 손에 들린 별의 조약돌로 향했다. 그 돌멩이는 여전히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습니다.”
한 몸? 나는 기겁했다.
내 몸은 지금 재현 씨의 단단하고 길쭉한 팔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고, 재현 씨의 몸은… 아니, 이제는 나의 몸이 되어버린 그 몸은, 내 팔을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요!” 내 목소리가 재현 씨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재현 씨는, 아니, 내 몸을 하고 있는 재현 씨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연 씨, 지금 그 팔은 내 팔이 아니라 당신 팔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내 몸으로 나한테 소리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팔이, 아니 재현 씨의 팔이 내 몸을 향해 뻗어졌다. 마치 거울에 비친 듯한 움직임이었다. 재현 씨의 시선은 자신의, 아니, 지금은 내 몸이 되어버린 몸의 가슴께를 향했다.
“그리고… 감정이… 전부 느껴집니다.” 재현 씨의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당신의 이 엉망진창인 감정이….”
“제 감정이 어때서요!” 내가 소리쳤다.
“마치 놀이터에서 온몸으로 노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내 입에서 다시금 튀어나왔다.
나는 기가 막혔다. 지금 이 상황에 그게 할 소리인가?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라니!
그 순간, 재현 씨의 손이, 아니 내 손이, 그의 얼굴을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마치 내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나는 그의 뺨을 철썩, 때렸다.
찰싹!
“아악!” 내 몸을 하고 있는 재현 씨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내 뺨도 얼얼했다.
“왜 때려요!” 재현 씨가 내 몸으로 나에게 따졌다.
“제가 친 게 아니라고요! 내 손이 저절로 나간 거예요!” 내가 재현 씨의 몸으로 외쳤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내 팔은 또다시 제멋대로 움직이며 재현 씨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재현 씨의 몸도 똑같이 내 머리채를 잡으려 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머리채를 잡으려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반복했다.
별의 조약돌은 여전히 푸른빛을 강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마치 한 쌍의 그림자 인형처럼 서로에게 엉겨 붙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로맨틱 코미디인가!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로맨스는커녕, 당장 이 기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재현 씨!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목소리가 재현 씨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나연 씨!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런 현상은 저도 처음입니다!” 재현 씨의 목소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의 몸은 서로에게 더욱더 밀착했다. 피부가 닿는 모든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별의 조약돌에서 마지막으로 강력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