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소설 제목: 이형의 심장**

**1화. 잿빛 폐허 속에서**

숨은 쉬어진다. 허파 가득 메마른 먼지 섞인 공기가 들어찼다 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그 뿐이었다. 강현은 낡은 마스크 위로 모자챙을 깊게 눌러썼다. 망가진 고층 건물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거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우울했다.

세상이 무너진 지 십 년. 인간은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니었다. 거대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괴상한 형태로 솟아올라 있었고, 그 잔해 속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져 작은 공동체를 이루거나, 강현처럼 홀로 그림자처럼 떠돌았다. 이 넓은 폐허에서 홀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강현의 손에 들린 낡은 쇠지렛대가 묵직했다. 녹슨 쇠붙이가 손에 닿는 감촉은 언제나 차갑고 현실적이었다. 발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깨뜨릴까 조심하며 그는 무너진 백화점 잔해 속으로 발을 디뎠다. 한때 화려했을 쇼윈도들은 깨져나가거나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진열대 위에는 먼지 쌓인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과거의 영화를 조롱하듯 서 있었다. 그는 식량과 물, 그리고 쓸 만한 부품을 찾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희망은 얇은 실오라기 같았다.

“빌어먹을….”

텅 빈 선반을 뒤지다 결국 담배 한 개비를 찾아냈다. 눅눅하고 냄새만 남아있었지만, 이 폐허 속에서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불이 붙지 않는 성냥개비를 긁적이다 허무하게 던져 버렸다. 이런 곳에서 불을 피우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연기를 들이켤 수 없는 담배를 그저 입에 물고 씁쓸하게 씹었다. 씁쓸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감각이 곤두섰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찌릿한 느낌. 익숙한 위협의 징조였다. 이곳은 너무 조용했다. 보통 이런 버려진 공간에는 쥐나 바퀴벌레라도 기어 다녀야 정상인데, 마치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강현은 쇠지렛대를 고쳐 쥐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눈은 어둠 속에 숨겨진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하려 애썼다. 훈련된 사냥꾼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렸다.

그때였다. 쨍그랑!

머리 위에서 유리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 동시에 그림자가 휙, 하고 지나갔다. 빠르다. 너무 빨랐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들’이었다.

강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젠장, 이렇게 쉽게 걸리다니. 그는 이곳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잠시 방심했던 것을 후회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몸을 돌려 시야를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림자는 벽을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형체. 길고 유연한 사지, 인간과는 다른 비율의 몸.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느껴지는 기이한 위압감. ‘변종’이라고 불리는, 인류가 멸망한 세상의 새로운 포식자.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인간의 감각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속도를 자랑했다.

강현은 거친 숨을 내쉬며 망가진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쇠지렛대가 미끄러울 정도로. 놈은 한 마리인가, 아니면 여러 마리인가? 대부분의 변종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했지만, 간혹 홀로 움직이는 변종들도 있었다. 홀로 움직이는 놈들은 더 영리하고, 더 위험했다.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 강현은 마치 자신이 거대한 심연 속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진열대 틈새로 뻗어나갔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그는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보였다.

희미한 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그것의 눈이 섬광처럼 빛났다. 푸른색, 아니, 에메랄드빛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도 강렬하고 깊은 색이었다. 어둠을 꿰뚫는 듯한 시선이 정확히 강현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강현은 숨을 멈췄다. 들켰다.

놈은 움직였다. 발소리는커녕 미동조차 없이,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그 움직임은 맹수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유연하고 가벼웠다.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실루엣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팔다리,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마치 투명한 막이 씌워진 듯 희미하게 빛나는 피부.

그리고 얼굴.

강현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놈의 얼굴은 인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더욱 크고 깊었으며, 턱선은 날카롭게 깎인 듯 정교했고, 입술은 얇았지만 붉은 기가 감돌았다. 머리카락은 길고 은빛을 띠고 있었는데, 마치 달빛을 머금은 듯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섬뜩할 정도로.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완벽하게 조각된 듯한 이목구비는 공포를 넘어선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놈의 시선이 강현에게 고정되었다. 어떤 위협도, 어떤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투명하고 깊은 시선이었다. 마치 강현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듯한. 강현은 본능적으로 쇠지렛대를 꽉 쥐었지만, 몸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놈이 천천히 강현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통제된, 예술적인 동작처럼 느껴졌다. 공포가 강현의 심장을 죄어왔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이끌림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녀석의 움직임을 쫓았다.

녀석의 손이 허공을 향해 뻗어졌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나 있었다. 그 발톱이 강현의 뺨을 스치듯 지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강현은 숨을 들이켰다. 죽는 건가?

하지만 녀석의 발톱은 강현을 해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뺨에 묻어 있던 굳은 먼지와 땀방울을 가볍게 훑어냈다. 그리고는 제 손가락 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행동은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호기심이 느껴졌다. 마치 처음 보는 것을 관찰하는 듯한 순수한 시선이었다.

잠시 후, 녀석의 시선이 다시 강현에게로 향했다. 그 푸른 눈동자 속에 희미한 슬픔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강현은 똑똑히 봤다. 아니, 슬픔이 아니라, 어쩌면… 연민? 혹은 이해? 알 수 없는 감정이 그 깊은 눈 속에 서려 있었다.

녀석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벽을 타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현은 녀석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 채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강현을 뒤흔들었다. 혼란스러웠다.

방금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포식자? 하지만 그 눈빛은… 그리고 그 손길은…

강현은 뺨에 묻었던 먼지를 닦아낸 손가락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그곳에 닿았던 차가운 공기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잿빛 폐허 속에서, 강현은 처음으로 ‘놈들’이 단순히 먹이 사슬의 위에 있는 맹수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그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 잔상으로 박혔다. 금지된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