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시간마저 흐릿해지는 망각의 심해. 항성 지도를 보면 오직 희미한 점들만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이 광활한 공허에서, 인류 최장거리 탐사선 아틀라스 호는 묵묵히 제 항로를 지키고 있었다. 함선 내부는 익숙한 기계음과 산소 재생 장치의 규칙적인 숨소리로 가득했지만, 그 소리들은 우주의 침묵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고 덧없었다.
“함장님, 여섯 번째 우주 주기 보고서입니다.”
정교한 홀로그램 스크린을 바라보던 강하준 함장의 등 뒤로, 서지아 박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조타석에 앉아 있던 서지아를 보았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얼굴은 늘 그랬듯 흐트러짐 없는 단정함으로 감싸여 있었지만, 그 눈빛 안에는 잠 못 드는 탐구심이 늘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특이 사항은?” 강하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안정적이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은하를 가로지르며 겪은 풍파가 빚어낸 단단함이었다.
서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없습니다. 미지의 공간은 미지의 공간이군요. 예상 에너지 스파이크는 관측되지 않았고, 항성간 먼지 밀도는 평균치보다 낮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보다 더 고요한 곳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강하준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게 문제지, 박사. 너무 고요해서 말이야. 우리는 답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우주는 침묵으로만 답하고 있으니.”
그때, 함교 한쪽에서 함선 조작 패널을 주시하던 항해사 이민혁 상병이 움찔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이 홀로그램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 젊은 얼굴에는 졸음의 흔적 대신 팽팽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함장님, 박사님. 방금… 미약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되었습니다. 극히 미약해서 노이즈로 처리될 뻔했지만, 패턴이… 일반적인 우주 현상과는 다릅니다.”
이민혁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이 광활한 공허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은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서지아는 즉시 자신의 콘솔로 몸을 돌렸다. 손가락이 춤추듯 키패드를 오갔고, 그녀 앞의 스크린에 알 수 없는 그래프와 데이터가 빠르게 펼쳐졌다. 강하준 역시 조타석으로 걸어왔다. 그의 낡은 함장복 어깨에 달린 계급장은 수많은 항성 지도를 품은 듯 반짝였다.
“정확히 어떤 패턴이지, 이 상병?” 강하준이 물었다.
“이게… 음… 마치 의도적으로 발신되는 신호 같아요. 하지만 자연적인 현상에서 나올 수 없는 주파수 대역입니다. 매우 짧고, 일회성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민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위치는… 아틀라스 호의 현 위치에서 약 0.5광초 지점입니다. 바로 앞입니다.”
0.5광초. 거의 손에 닿을 듯한 거리였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섬뜩할 정도였다.
서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흥미롭군요. 노이즈 필터링을 최대로 걸고, 데이터의 원본을 확보하세요. 민혁 상병, 함선 속도를 최저로 낮추고, 모든 외부 센서를 개방합니다.”
“예, 박사님!” 이민혁은 재빨리 명령을 수행했다. 함선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망각의 심해는 여전히 검고 깊었지만, 이제 그 어둠 속에는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숨 쉬고 있는 듯했다.
몇 분이 흘렀다. 우주의 침묵은 여전했지만, 함교 안의 공기는 점차 팽팽하게 죄어왔다. 서지아의 스크린에는 기이한 파동이 명멸하고 있었다.
“포착했습니다, 함장님. 진동의 근원지를 명확히 식별했습니다.” 서지아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소행성이 아닙니다. 인공적인… 혹은 자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태입니다. 크기는… 대략 아틀라스 호의 3분의 1 정도.”
강하준은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멀리 떨어진 지점에 희미하게 빛나는 점 하나가 보였다. 너무나 멀어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서지아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접근 속도 0.001C. 모든 시스템 준비 완료.” 이민혁이 보고했다.
아틀라스 호는 천천히, 마치 거대한 포식자가 먹잇감에 다가가듯 조심스럽게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갔다. 수천, 수만 개의 별들 사이를 가로질러온 이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의 심장이 한 음으로 뛰는 듯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 형체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었다. 불규칙한 각면이 빛을 흡수하는 듯 검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거대한 결정체 같기도 했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보석 같기도 했다. 매끄러운 표면은 얼핏 보면 아무 무늬도 없는 듯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세한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알 수 없는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유물 표면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을 머금었다가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그것이 어떤 추진 장치도, 인공적인 동력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채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마치 태초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거대한 암흑 속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에서 아까 전 감지되었던 미약한 에너지 파동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캔 결과입니다.” 서지아가 흥분으로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재질은… 알려진 어떤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금속도, 암석도, 유기체도 아닙니다. 하지만… 표면에서 극도로 안정적인 핵융합 반응의 흔적이 감지됩니다. 자체적인 에너지원이라는 뜻입니다.”
“몇십억 년은 됐겠군.” 강하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경외감과 함께 깊은 우려를 담고 있었다. “이런 외딴곳에서, 이런 완벽한 보존 상태로… 대체 누가, 왜 이런 것을 만든 거지?”
“무엇보다… 이 구조는 자연적으로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확실합니다.” 서지아가 덧붙였다. “함장님, 저는 이 물체에 직접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하준은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아틀라스 호의 전방 스크린에 선명하게 떠오른 거대한 검푸른 결정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인류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지의 문명이 남긴 유물. 그것이 지금, 그들 눈앞에 있었다. 인류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는 발견 앞에서, 어떤 함장도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을 터였다.
“함장님…” 이민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계 유물과 직접 접촉하는 건… 연방 규정에 따르면… 첫 발견 시에는 일단 안전거리 확보 및 상부 보고 후…”
“알고 있다, 이 상병.” 강하준이 말을 잘랐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연방 규정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곳에 와있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발견 앞에서, 눈을 감을 수는 없어.”
그는 다시 서지아를 바라보았다. “박사, 접근을 허가한다. 하지만 최대한의 안전 절차를 확보하도록 해. 그리고… 민혁 상병, 전투 태세를 갖춰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예, 함장님!” 이민혁과 서지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아틀라스 호는 마지막 속도를 줄였다. 거대한 검푸른 결정체는 이제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벽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 표면의 미세한 문양들이 마치 오래된 서사를 담고 있는 듯 빛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유물의 가장자리에 희미한 균열이 생겨났다. 마치 거대한 눈이 천천히 깜빡이는 것처럼, 그 틈새에서 순수한 어둠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 광경은 보는 이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서지아의 스크린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에너지 방출! 예상치를 뛰어넘는 불규칙한 파동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였다.
강하준의 눈이 경고등처럼 번뜩였다. “물러서! 전속력으로 후퇴!”
하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어둠이 뿜어져 나오던 균열은 순식간에 확장되며, 그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빛을 흡수하는 어둠 그 자체였고, 아틀라스 호의 선체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듯이 덮쳐들었다.
“함장님!” 이민혁의 비명과 함께, 함교 전체를 집어삼키는 충격과 함께 모든 스크린이 일순간 암전되었다.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