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서방, 수상한 돌멩이와 의문의 신사
“후우… 오늘도 평화롭게 먼지 쌓인 책들만.”
한여름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낡은 깃털 먼지떨이를 휘둘렀다. ‘고서방’이라는 이름만 그럴듯한 이 서점은, 사실 여름의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덜컥 물려준 빚더미였다. 온갖 오래된 고서와 잡동사니들이 뒤섞인 이곳에서 여름이 하는 일이라곤 매일 먼지를 털고, 혹시 모를 손님을 기다리다, 다시 먼지를 털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벽 한쪽의 큼지막한 달력에는 ‘이번 달 임대료 납부일’이 굵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름은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코를 훌쩍였다.
“흐읍… 콜록! 이래서야 먼지만 먹고 살겠네.”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도, 여름은 서점 구석에 박혀있던 낡은 나무 상자를 끌어냈다.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듯, 상자 위에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먼지가 쌓여있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고모할머니조차 제대로 몰랐다고 했다. 그저 ‘유물 같은 것들이 들어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을 뿐.
‘설마 로또라도 들어있으려나.’
허무맹랑한 기대를 하며 여름은 상자를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자, 안에서는 기이하게 생긴 조각상들과 빛바랜 천 조각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흙빛 도자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여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투박하게 깎인 듯 보이는 칙칙한 돌멩이 하나였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아무런 특징도 없이 그저 평범한 돌멩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여름은 조심스럽게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돌멩이는 손에 닿자마자 은은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마치 오래 품어온 작은 생명체라도 되는 양, 따스함이 손바닥 전체로 스며들었다. 여름은 신기해서 엄지손가락으로 돌멩이 표면을 쓸어보았다. 오돌토돌한 질감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미세한 금속 조각들이 박혀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그냥 돌멩이가 아닌가?”
호기심에 돌멩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여름의 손가락이, 문득 돌멩이 가장자리 어딘가에 살짝 스쳤다. ‘아야!’ 작게 신음을 흘린 여름은 손가락 끝을 보았다. 아주 미세하게 긁혔는지,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맙소사.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상처였지만, 문제는 그 핏방울이 지금 막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 위로 톡, 하고 떨어진 것이었다.
핏방울이 닿자마자, 칙칙했던 돌멩이가 순간 번쩍, 하고 빛났다.
여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심장이 고동치듯, 돌멩이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약하게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은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돌멩이에서, 빛이 나고 있어!
그때였다. 낡은 서점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가 순간 깜빡거리더니, 이내 환하게 빛을 뿜어냈다. 방금 전까지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희미한 불빛이 아니었다. 전구가 새로 갈아 끼운 것처럼 선명하고 밝게 서점 내부를 비췄다. 여름은 멍하니 전구를 올려다봤다. 저 전구, 분명 어제 닳아서 거의 나갈 지경이었는데…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여름은 돌멩이를 쥔 손을 덜덜 떨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저… 계세요?”
바로 그때, 서점 문에 달린 낡은 풍경이 ‘딸랑’ 하고 울리며 문이 열렸다. 여름은 기겁하며 돌멩이를 등 뒤로 숨겼다. 누가 들어왔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무작정 고개를 숙였다.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진 직후에 누군가를 마주하는 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고서방, 맞죠?”
나긋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 여름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마치 방금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칼에 검은색 코트, 그리고 날카로우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여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잘생긴’ 손님은 고서방 개점 이래 처음이었다.
남자는 서점 내부를 쭉 훑어보더니, 여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여름의 손으로 향하는 듯했다. 여름은 등 뒤에 숨긴 돌멩이를 더 꽉 움켜쥐었다.
“아, 네… 고서방 맞습니다. 어떤 책을 찾으시는지…?”
여름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특정 책을 찾는 건 아닙니다. 다만, 최근 이곳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네? 특별한 일이라뇨?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여름은 너무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특별한 일이라니? 지금 방금 전구가 밝아지고, 돌멩이가 빛난 그 일을 말하는 건가? 설마 저 남자가 다 알고 있는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자는 여름의 과도한 반응에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아니, 그런가요. 제 착각이었나 보군요.”
그는 다시 서점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낡은 책장에 놓인 화분을 가리켰다. 그 화분에는 며칠 전부터 시들시들 죽어가던 몬스테라가 심겨 있었다. 분명 여름이 어제 물을 주면서도 ‘이제 곧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그 식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몬스테라의 잎이 파릇파릇하게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심지어 새순까지 돋아나려는 듯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남자의 시선이 그 화분에서 여름의 얼굴로, 그리고 다시 여름이 숨긴 손으로 옮겨갔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나저나… 그 손에 든 건 뭡니까?”
여름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흔한… 돌멩이입니다!”
당황한 여름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든 돌멩이를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순간, 돌멩이에서 푸른빛이 다시 한번 ‘확’ 하고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서점 안을 순식간에 푸르게 물들였고, 마치 빛을 따라 움직이듯 낡은 선풍기가 ‘윙’ 소리를 내며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모든 광경을 침착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보다는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흔한 돌멩이라… 그렇군요.”
그는 천천히 여름에게 다가왔다. 한 발짝, 한 발짝. 여름은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이미 벽에 등 뒤가 닿아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자의 눈빛은 더욱 깊고 묘한 색깔을 띠었다.
“꽤나 특별한 돌멩이로군요. 그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의 시작일 겁니다.”
남자의 손이 여름의 손을 쥔 채 빛나고 있는 돌멩이 위로 뻗어왔다. 뜨거운 온기가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듯했다. 여름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 도대체 누구지? 그리고 이 돌멩이는… 또 뭐란 말인가!
남자는 여름의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칫했다. 그리고는 픽, 하고 웃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한여름 씨. 그 작은 돌멩이가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꿀 테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점 문이 저절로 ‘딸랑’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남자는 어느새 문밖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여름은 멍하니 손에 든 돌멩이를 내려다보았다. 돌멩이는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처음처럼 칙칙한 흙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여름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 작은 돌멩이가, 내 평범한 일상을 뒤바꾼다고?
그날, 한여름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고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전조이자, 그녀의 앞에 펼쳐질 기묘한 로맨틱 코미디의 서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