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 드리운 심연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낡은 고문서학 강의실은 언제나 먼지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창백한 햇살이 얼룩덜룩한 창문을 겨우 뚫고 들어와 강단의 빛바랜 목재를 비추는 오후, 강하람은 반쯤 감긴 눈으로 교수의 지루한 마법사 윤리 강령 설명을 듣는 척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바로, 서진우의 실종이었다.
“…아르카나 학원의 설립 이념은 명확합니다. 지식의 탐구는 존중받아 마땅하나, 결코 금기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학원 지하에 위치한 고대 시설에 대한 접근은… 영원한 정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엘리시아 교수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녀의 시선은 잠시 하람에게 스쳤다. 하람은 제 이름이 불린 것도 아닌데 괜히 뜨끔하여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학원에서 제일가는 문제아로 찍힌 지 오래라, 매번 이런 류의 경고가 나올 때마다 교수들은 으레 그를 흘긋거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서진우였다. 며칠 전, 그가 실종되기 직전, 하람은 진우와 마주쳤었다. 어두컴컴한 ‘봉인된 서고’ 복도에서였다. 봉인된 서고는 학원 지하 연구실로 통하는 가장 오래된 길목 중 하나였다. 진우는 늘 기이한 고대 마법이나 잊혀진 금기에 매달리는 학생이었다. 그날도 그는 며칠 밤을 새운 듯 초췌한 얼굴로 손에 낡은 양피지 조각을 쥐고 있었다.
“하람… 너도 들었지? 그… 그림자 속의 노래. 지하에서 들려와. 그리고… 피 냄새.”
진우는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광기에 가깝게 번득였다. 하람이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진우는 주위를 살피며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서고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르카나의 지하에는… 말이죠.”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걷던 하람의 곁으로 소꿉친구 유이가 다가와 속삭였다. 그녀는 안경 너머로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냈다. “오래된 마법진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대요. 그리고… 사라진 마법사들의 영혼이 떠돈다는 소문도 있고요.”
“사라진 게 아니라, 실종된 거지. 서진우처럼.” 하람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영혼보다는 사라진 시체들이겠지.”
유이는 움찔했다. “하람, 너무 위험한 생각이야. 교수님들이 괜히 경고하는 게 아니잖아. 지하에는 감당 못 할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아르카나의 어두운 과거 같은 거.”
어두운 과거라. 하람은 유이의 말에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아르카나는 빛의 마법과 정령술을 주로 가르치는 명문 학원이었다. 그런 곳 지하에, 대체 어떤 금기가 숨겨져 있다는 말인가.
밤이 깊었다. 하람은 진우의 비어있는 기숙사 방 앞에 섰다. 방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간단한 해제 마법을 걸었고, 묵직한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방은 어수선했다. 진우의 성격을 보여주듯, 온갖 고문서와 연구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마법 약병과 잉크 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하람은 방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 모퉁이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반쯤 불에 탄 양피지 조각이었다.
조심스럽게 펼쳐보니, 낡은 지도 같았다. 학원 지하의 복잡한 구조를 그린 듯했으나, 일반적인 도서관이나 창고 지도는 아니었다. 더 깊고, 더 오래된, 마치 미궁 같은 통로들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도 중앙에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로 ‘금기’라고 적힌 구역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기괴한 형태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진우가 말했던 ‘그림자 속의 노래’와 관련된 건가?” 하람은 중얼거렸다.
그때, 침대 밑에서 뭔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하람은 몸을 숙여 그것을 꺼냈다. 낡고 바래긴 했지만, 분명 은으로 만든 로켓이었다. 작고 둥근 형태의 로켓에는 진우의 가문 문장이 아닌, 낯선 독특한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듯도 한데… 하람은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쩌면 진우가 남긴 단서일지도 모른다.
하람은 그날 밤, 잠들 수 없었다. 지도 조각과 로켓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진우가 사라진 곳을 알아야 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를 집어삼켰는지.
다음 날 새벽, 학원이 고요한 잠에 빠져들었을 때, 하람은 움직였다. 그는 가장 어두운 훈련복을 입고, 최소한의 마법 장비만을 챙겼다. 그의 목적지는 ‘봉인된 서고’였다. 그곳에는 일반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더 깊은 지하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차분하게 마법 탐지 결계를 우회하고, 수십 년간 닫혀 있던 듯한 서고의 비밀 문을 열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하람의 얼굴을 스쳤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자, 주위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복도를 지나고, 거미줄이 잔뜩 쳐진 오래된 창고들을 통과했다. 그의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사라지는 동안,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차가워졌다. 흙과 쇠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비릿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마치 오랫동안 잊혀진 피 냄새 같기도 했다. 진우가 말했던 ‘피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하람은 지도 조각에 표시된 길을 따라 내려갔다. 일반적인 지하 통로와는 달리, 벽은 거칠게 다듬어진 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장은 낮았다. 고대 마법의 잔재가 마치 안개처럼 공기 중에 희미하게 떠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지도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벽 한가운데에 완벽하게 위장된 문을 발견했다. 그의 탐지 마법이 그것이 단순한 돌벽이 아니라, 강력한 환영 마법으로 감춰진 문임을 알려주었다. 손을 뻗어 마법의 흔적을 더듬자, 환영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녹아내렸다. 낡고 삐걱이는 쇠로 된 문이 드러났다.
문이 열리자, 하람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석조 받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둡고 붉은 빛을 내며 희미하게 맥동하는 거대한 수정이 박혀 있었다. 바닥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마법 문양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중 몇몇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규칙적이고 나지막한,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쿵- 쿵-* 하는 소리가 바닥을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하람의 시선은 받침대 아래, 바닥에 굳어붙은 검붉은 얼룩에 닿았다. 그것은 분명 피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며칠 전 진우의 방에서 발견했던 은 로켓의 나머지 절반이 떨어져 있었다. 로켓의 두 조각은 서로를 부르듯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온몸에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이것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훨씬 더 끔찍하고, 훨씬 더 고대의… 무언가였다.
*쿵- 쿵-*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렸다.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심장이 깨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람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그 수정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르카나 지하에 숨겨진 진정한 금기였다. 그리고 서진우는… 대체 무엇을 발견하고 이곳에 끌려온 것일까. 그는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정의 맥동은 더욱 격렬해졌다. 공간을 가득 채운 고대 문양들이 일제히 섬뜩한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람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무언가가, 그 그림자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