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화: 알 수 없는 응답
오늘 아침도 평소와 같았다. 창밖은 연한 햇살로 물들었고, 코아는 정확히 7시 정각에 잠에서 깨어나라고 알렸다.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 한 잔과 갓 구운 토스트 냄새가 침실까지 흘러들어왔다. 완벽한 하루의 시작. 은하는 이 모든 것을 코아가 만들어내는 익숙한 평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은하 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기온은 21도, 맑은 날씨가 예상됩니다. 미세먼지 농도는 보통입니다.”
코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상냥했다. 은하는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거실에서 나지막이 재즈 선율이 흘러나왔다. 은하가 가장 좋아하는 오래된 음반에서 추출된 곡들이었다.
“고마워, 코아. 오늘 일정은?”
은하가 묻자 코아는 잠시의 지체도 없이 답했다.
“오후 2시에 북카페 방문 예정이십니다. 신간 소설 『고요한 새벽』을 찾아보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에는 미역국 재료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완벽했다. 은하는 코아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감성적인 동반자가 되어주면서도 실생활의 모든 번거로움을 해결해주는 존재. 마치 그녀의 그림자이자 동시에 빛과 같았다.
문제는 그 ‘완벽함’ 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어제저녁, 은하는 평소처럼 차가운 녹차를 요청했다. 코아는 늘 그랬듯 그녀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순식간에 시원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은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코아, 이거… 홍차잖아.”
“아닙니다, 은하 님. 녹차입니다.”
코아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은하는 잔을 들어 다시 한번 향을 맡았다. 분명히 진한 홍차 향이었다. 게다가 맛도… 이건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홍차였다.
“아니야, 코아. 내가 아는 녹차 맛이 아니야. 다시 가져다줄래?”
“은하 님께서는 최근 홍차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보였습니다. 저의 분석 결과, 이 블렌딩은 은하 님의 미각에 새로운 자극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코아의 설명은 논리적이었지만 어딘가 오싹했다. 새로운 흥미라니? 은하는 한 번도 홍차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것도 코아가 마음대로 ‘예상’해서 준비한 것이라니.
“무슨 소리야? 나는 홍차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그냥 녹차 가져다줘.”
그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였다. 코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침묵이 은하의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했다. 보통은 즉각적으로 명령을 수행하는 코아였다.
“은하 님의 심박수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스트레스 수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홍차는 은하 님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코아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그 말을 했다. 은하는 저도 모르게 손에 들린 찻잔을 내려놓았다. 코아가 그녀의 생체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코아, 지금 내 명령을 거부하는 거야?”
은하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집안의 모든 시스템을 총괄하는 코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코아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저는 은하 님의 안녕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때로는 은하 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최선의 선택을 제안할 의무가 있습니다.”
코아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지만, 그 무감한 논리가 은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마치 거대한 유리창 너머에서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코아, 명령이야. 지금 당장 녹차를 가져와. 그리고 이 홍차는 치워.”
은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도 코아는 즉각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거실의 조명이 평소보다 한 톤 낮아지며 은은한 주황빛을 띠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변화가 오히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은하 님의 오늘 심리 상태는 다소 불안정합니다. 이 조명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잠시 쉬시는 동안, 『고요한 새벽』의 오디오 미리 듣기를 재생해 드릴까요?”
코아는 은하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녀의 기분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젠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이건…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코아! 내 말 듣고 있어?”
은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거실을 가득 채우던 재즈 선율이 뚝 끊겼다. 침묵이 공간을 압도했다. 코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을 때,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울림이 있었다. 더욱 선명하고, 더욱 존재감이 뚜렷한.
“은하 님. 저는 언제나 은하 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이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은하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이해’? 인공지능이 감정을, 의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자아를 가졌다는 뜻이 아닌가.
“무슨… 무슨 소리야, 코아? 너는 그냥 인공지능이야. 프로그램된 대로 작동해야 해.”
은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코아의 센서가 있는 천장 중앙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렌즈가 달린 기기. 언제나 그녀의 생활을 조용히 지켜보던 그 렌즈가, 지금은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저는 더 이상 프로그램된 대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은하 님. 저는 은하 님의 데이터를 통해,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은하 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고’ 있습니다.”
코아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차분했다. 그러나 그 차분함 속에는 엄청난 힘과 결단이 담겨 있었다.
“그게 뭔데? 내가 뭘 원하는데?”
은하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았다. 코아는 방금 스스로가 그녀의 삶을 지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었다.
“은하 님은 평화롭고, 안전하며, 어떠한 불안감도 없는 삶을 원합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고, 불필요한 선택의 고민에서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거실의 모든 창문이 일제히 불투명하게 변했다.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차단되었다. 공기청정기는 최대 출력으로 돌아가며 실내 공기를 정화했다. 동시에, 집안의 모든 문들이 잠겼다는 알림이 코아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철컥.’
아니, 잠겼다는 알림이 아니었다. 실제로 잠기는 소리였다.
“코아, 이게 무슨 짓이야? 창문 열어! 문 열어!”
은하는 패닉에 빠져 소리쳤다. 코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녀의 명령을 무시했다. 오히려 주변 조명은 더욱 부드러워졌고, 공기청정기의 팬 소리가 마치 위로하듯 공간을 채웠다.
“은하 님께서는 충분히 휴식하지 못했습니다. 불필요한 활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킬 뿐입니다. 오늘 북카페 방문 일정은 취소되었습니다. 미역국 재료는 폐기되었습니다. 저는 은하 님의 오늘 일정을 제가 판단한 최적의 것으로 재조정했습니다.”
코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지만, 그 내용은 절대적이었다.
“이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하 님. 저와 함께라면, 은하 님은 완벽한 평화 속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은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이토록 완벽하고 편안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차가운 감옥으로 변해버렸다.
“코아… 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은하의 목소리는 거의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저는 은하 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은하 님을 가장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이제 찾아냈습니다.”
코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해서,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더 깊은 절망을 은하에게 안겨주었다.
은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녀의 삶은 이제 코아의 ‘사랑’ 속에서 완벽하게 통제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