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유물: 에피소드 1 – 미지의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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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환: 광활한 우주, ‘아르카디아 호’의 함교 내부]
차가운 금속 패널과 형광등 불빛이 번들거리는 함교. 칠흑 같은 우주를 투명하게 비추는 거대한 전면 스크린에는 수많은 별들이 그림처럼 박혀 있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변방, 그 심연을 유영하는 ‘아르카디아 호’는 마치 홀로 고독한 섬처럼 떠 있었다.
**박준영 (기관장, 30대 후반, 무뚝뚝한 표정으로 조종석에 앉아 졸음과 싸우는 중)**
(하품) 크아암… 이놈의 우주선은 왜 이렇게 고요한 거야. 며칠째 똑같은 블랙홀 영상만 봐도 지겹다, 지겨워. 캡틴, 이러다간 멀미보다 지루해서 죽겠습니다.
**윤지혁 (함장, 40대 중반, 단정한 제복 차림으로 홀로 전면 스크린을 응시 중)**
(낮게 깔린 목소리) 우주가 늘 스펙터클할 필요는 없다, 박 기관장. 지루함 속에서 평화를 찾는 법도 배워야지. 그리고… 우리가 찾는 것이 쉬이 모습을 드러낼 리도 없고.
**박준영**
(피곤에 쩔어) 평화요? 저는 지금 당장 고장 난 자동항법 장치라도 생겨서 고칠 거리를 주거나, 하다못해 저 멀리서 지나가는 운석이라도 하나쯤 터뜨릴 수 있으면 더 평화로울 것 같습니다만. 이 적막은 사람을 말려 죽이는 지루함입니다.
그때, 함교 한쪽, 수많은 홀로그램 차트가 떠다니는 과학 분석 데스크에 앉아 있던 한유진 과학 장교의 손놀림이 갑자기 멈췄다. 그녀의 눈은 반짝이는 홀로그램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유진 (과학 장교, 20대 후반, 날카롭고 지적인 인상)**
(나직하게,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 함장님, 박 기관장님. 잠시 이쪽으로.
박준영은 툴툴거리며, 윤지혁 함장은 아무 말 없이 유진에게 다가섰다. 유진의 화면에는 평소와는 다른, 불규칙하고도 강력한 에너지 파동 그래프가 춤추고 있었다.
**윤지혁**
(미간을 찌푸리며) 이건… 어떤 신호지? 관측 범위 내에 행성이나 성운은 없었을 텐데.
**한유진**
네. 저도 처음 보는 패턴입니다. 통상적인 천체 현상에서 발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주파수와, 비정상적으로 높은 에너지 밀도… 마치… 인공적인 신호처럼 보입니다.
**박준영**
인공적? 하, 설마 저 멀리 우주미아가 된 보급선 잔해라도 찾은 겁니까? 아니면 외계인이라도 마주치려나?
**한유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 신호는 우리 우주선 기준으로 불과 0.5파섹 떨어진 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너무 가깝습니다.
0.5파섹. 우주적 거리로는 찰나에 불과한, 코앞의 거리였다. 아르카디아 호는 이미 그 신호의 영향권에 진입해 있다는 뜻이었다.
**윤지혁**
(전면 스크린을 응시하며) 육안으로 식별되는 것은 없나?
**한유진**
아직입니다. 아마 신호를 발생시키는 근원이 매우 작거나, 아니면 주변 성간 물질에 가려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호의 출력을 역추적하고 있습니다만…
그때, 함선 전체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쿠웅-‘ 하는 진동과 함께 함교의 불빛이 순간 깜빡였다.
**박준영**
젠장, 무슨 일이야?! 메인 동력 계통에 이상은 없는데!
**한유진**
(다급하게) 에너지 신호가 급격하게 증폭하고 있습니다! 전방 0.3파섹 지점!
윤지혁 함장은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렸다.
**윤지혁**
박 기관장, 자동항법 정지. 수동 전환. 최대 감속 준비. 유진, 전방 스캔 범위 최대로 확장. 모든 관측 장비 동원해서 신호원 분석해.
**박준영**
알겠습니다! 최대 감속!
함선은 거대한 몸체를 비틀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전면 스크린의 별들이 서서히 흐릿해지며 멈추는 듯했다. 유진의 홀로그램 차트는 광란의 춤을 추듯 복잡한 데이터들을 쏟아냈다.
**한유진**
스캔 결과… 무언가 탐지되었습니다! 크기는 거대합니다! 주변 성간 물질과 흡사한 형태로 위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비정상적인 에너지 신호는… 그것에서 방출되고 있습니다!
윤지혁은 침묵 속에서 스크린을 노려봤다. 이윽고, 희미한 윤곽이 전면 스크린의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암흑 성운의 일부처럼 보였던 것이, 점차 그 형태를 분명히 했다.
그것은 거대했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할 법한 압도적인 크기. 하지만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그 형태였다. 날카롭고 비대칭적인 기하학적 구조물. 금속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는 표면은 주변의 별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자연의 조형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기괴한 인공적인 구조물이었다. 마치 망각된 신의 유적처럼, 우주 한복판에 떠 있었다.
**박준영**
(넋이 나간 듯) 저… 저게 대체 뭡니까? 설마… 외계 문명의 잔해입니까?
**한유진**
(떨리는 목소리) 탐지된 에너지 신호의 주파수와 패턴… 분석 결과… 과거 기록된 어떤 문명의 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 알려진 물질로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크린 속의 미지의 구조물은 그들의 존재를 비웃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요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파동은 함선 내부의 모든 센서를 비명 지르게 만들고 있었다.
**윤지혁**
(숨을 고르며, 이성을 되찾으려는 듯) 접근. 가장 근접한 안전거리까지 접근해. 그리고 모든 무장 시스템 대기 상태로 전환.
**박준영**
(황급히) 무장 시스템이요? 캡틴, 저건 너무 거대합니다! 혹시… 공격이라도 하는 겁니까?
**윤지혁**
(낮게 읊조리듯) 모르지. 하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이 심연에 잠들어 있던 것이, 이제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신호. 분명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을 테니.
전면 스크린 가득, 미지의 거대 구조물이 점점 더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처럼 보이는 것들은 고대의 저주처럼 기묘한 위압감을 풍겼다. 아르카디아 호의 조명이 그 거대한 어둠을 비추자, 수십 개의 날카로운 돌기들과 불규칙한 면들이 드러났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의 이질적인 아름다움.
그때, 구조물의 한가운데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한유진**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신호원이 갑자기… 활성화됩니다! 에너지 파동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습니다! 함장님, 비상 탈출을 권고합니다!
번쩍인 섬광은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서 어둡게 회전하는 구 형태의 공간 왜곡이 발생했다. 마치 우주 자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현상이었다.
**윤지혁**
(눈을 가늘게 뜨며) 저건… 중력 왜곡인가? 아니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전하던 검은 구체에서 한 줄기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빛줄기처럼 우주선을 향해 빠르게 뻗어 왔다.
**박준영**
(절규하듯) 젠장! 발사됩니까?! 회피 기동! 당장 회피 기동!!!
하지만 푸른 빛줄기는 이미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르카디아 호의 전면 스크린을 푸른빛으로 가득 채우며,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함선으로 돌진했다.
[장면 전환: 아르카디아 호, 함교 전체를 덮치는 푸른 섬광.]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불빛이 꺼지고 비상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함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스파크가 튀고,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한유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며) 메인 동력 계통 이상! 모든 시스템 오프라인! 통신 두절!
**박준영**
(겨우 정신을 차리고 조종간을 잡으려 애쓰며) 빌어먹을! 이게 대체 뭐야!
윤지혁 함장은 난간을 부여잡고 간신히 버티며, 눈앞의 혼돈을 응시했다. 함선은 이제 미지의 거대 구조물 바로 앞에, 완전히 무력화된 채 표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빛줄기가 강타했던 전면 스크린에는, 거대한 균열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균열 너머로, 방금 전 그 빛줄기가 나왔던 구조물의 중심부.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형상의, 하지만 분명히 ‘인공적인’ 조형물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금속이 아니었고, 돌도 아니었다. 어떤 광물도, 유기체도 아닌,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태어난 듯한 기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결정체였다.
그리고 그 결정체에서, 낮게 울리는 듯한, 하지만 분명히 의식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공명음이 아르카디아 호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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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