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검은 바다의 미소
해란포(海瀾浦). 이름처럼 파도가 비단처럼 펼쳐진다는 뜻을 지닌 마을치고는 지나치게 황량하고 음습했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낡은 목조 가옥들은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끌어 올려진 괴물의 뼈대처럼 삭아 있었고, 갯내음은 비린 것을 넘어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나는 이곳에 발을 들인 첫 순간부터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진우 씨, 조심해요. 여긴 좀… 그래.”
내 조사원인 김 박사가 차에서 내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김 박사는 이곳 출신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이 일대 민속학을 연구해왔기에 마을 사람들과 미묘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말은 분명 단순한 주의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해란포를 향한 뿌리 깊은 경외심과 두려움이 함께 서려 있었다.
나는 낡은 픽업트럭에서 배낭을 챙겨 내렸다. 태양은 구름 뒤에 숨어 있었고, 바다 위에는 뿌연 해무가 낮게 깔려 있었다. 마치 세상의 끝자락에 도달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내 이름은 이진우. 해양 고고학자다. 몇 달 전, 해란포 어부들이 그물에 걸려 올린 기이한 형태의 유물들이 학계에 보고되면서 나는 이곳으로 파견되었다. 고조선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러나 그 어떤 인류 문명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재질과 문양의 유물들이었다. 학자들은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은 미지의 문명을 짐작하며 흥분했지만,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 유물들은 마치 살아 있는 피부처럼 차갑고 끈적거리는 감촉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에 노골적인 경계를 드러냈다. 그들의 눈은 유난히 검고 깊었으며, 오래도록 바다를 응시한 탓인지 초점을 잃은 듯 보였다. 가끔은 그들의 피부 위로 흐릿하게 보이는 비늘 같은 무늬에 시선이 닿았지만, 나는 그저 햇볕에 그을린 오래된 피부병이라 애써 치부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는 낮은 목소리와 쉰 듯한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섞여 어쩐지 불길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이장이 기다립니다.” 김 박사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이장 집은 마을에서 가장 낡은 집이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짙은 해초와 썩은 생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한참 만에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노인을 찾아냈다. 그는 말 그대로 해골처럼 앙상했고, 깊게 패인 눈구멍은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외지인이 여긴 왜 왔나.”
그의 목소리는 파도에 깎인 돌멩이처럼 거칠었다.
“이곳 해역에서 발견된 유물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답했다. “혹시 이전에 비슷한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이장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눈가의 주름이 깊어지는 기묘한 형태였다.
“바다는 말일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가져가지. 그리고 가끔은… 보여줄 뿐이지. 우리가 감히 만져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그의 시선은 창밖의 검푸른 바다를 향했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드리워진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너무나 강렬해서, 나 역시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 짙은 해무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은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심연의 장막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면 바다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 특히… 만조 때.” 이장은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경고이자, 어쩐지 간절한 부탁처럼 들렸다.
나는 밤이 되어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장의 말과 마을 사람들의 기이한 눈빛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텐트 밖으로는 거친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해변을 할퀴는 듯한 소리였다. 결국 나는 후레쉬를 들고 텐트를 나섰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해변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조가 된 바다는 내가 본 어떤 바다보다도 검고 어두웠다. 그리고 그 바다 위로… 오래된 구조물들이 거대한 그림자처럼 솟아 있었다. 썰물 때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거대한 돌기둥들은 그 어떤 인류 문명에서도 보지 못한 형태였다. 매끄럽고 검은 표면은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빛났고, 기묘한 문양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미궁처럼 보였다. 이건… 자연물이 아니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나는 마치 홀린 듯 그 구조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공포와 경외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손을 뻗어 매끄러운 표면을 만져보려던 찰나, 차가운 물속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첨벙!*
나는 숨을 들이켰다.
물살을 가르고 나타난 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해초처럼 물속에서 나부꼈고, 온몸은 물방울을 머금은 비늘 같은 피부로 덮여 있었다. 그녀의 눈은 깊은 심해처럼 검었고, 달빛 아래서 번뜩이는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노란색이었다. 콧날은 날카롭게 솟아 있었고, 귓바퀴는 지느러미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아름다웠다.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물속에서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검은 눈동자 속에는 억겁의 시간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내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깊고 노란 눈동자는 내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휩싸였다. 공포, 두려움,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 그 사이사이에는 물갈퀴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의 손이 내 얼굴로 향하자,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차갑고 촉촉한 손가락이 내 뺨에 닿았다.
피부가 닿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듯한 느낌. 마치 잊고 지냈던 오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의 눈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미소가 아니었다. 바다 깊은 곳의 어둠 속에서 피어난, 신비롭고도 불길한 미소였다.
그 미소에 나는 홀린 듯이,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충동을 느꼈다. 위험하다. 이 모든 것이 위험하다.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이미 내 마음은 이성을 넘어선 영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물결조차 남기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밤바람은 차갑게 불어왔지만, 내 뺨에는 여전히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녀의 노란 눈동자와, 검은 바다의 미소만이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금지된 이끌림의 끝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바다 깊은 곳에 잠든, 어떤 존재의 일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존재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결코 마주해서는 안 될, 지독하고 아름다운 유혹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