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닫힌 문의 속삭임

강서진은 고풍스러운 저택의 대문 앞에 섰다. 억겁의 세월을 견딘 듯한 묵직한 철문 위로 덩굴 식물이 무성하게 휘감겨 있었다. 마치 도시의 한복판에 홀로 과거에 갇힌 섬 같았다. 그 안에서,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한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 팀장님, 오셨습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경위였다. 언제나 성실하지만 미제 사건 앞에서는 늘 입술을 씹어대는 버릇이 있는 후배다. 김 경위는 얼굴에 피로와 당혹감이 역력한 채로 강서진에게 다가왔다.

“보고 들었네.” 강서진은 짧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이미 저택의 실루엣을 훑고 있었다. “피해자는 한유석 화랑 대표. 밀실 살인이라더군.”

“네, 그렇습니다. 발견 당시 서재는 안에서 완벽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문은 이중 잠금장치에다 내부에서 걸쇠까지 걸려 있었고, 창문은 특수 강화 유리로 안쪽에 철창이 덧대어져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꼼짝없이 잠겨 있었고요.” 김 경위의 목소리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좌절감이 묻어났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주변 CCTV에도 특이 사항 없고요. 누가 봐도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서진은 아무런 말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웅장한 로비를 지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그가 내뿜는 아우라는 주변 공기를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2층 복도 끝, 경찰 통제선이 쳐진 서재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희미한 혈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시신은… 건드리지 않았지?” 강서진이 물었다.

“네, 강 팀장님 오실 때까지 최소한의 현장 보존에만 집중했습니다.”

강서진은 고무장갑을 끼고 통제선을 넘어 서재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한유석 대표의 취향을 보여주듯 곳곳에 놓인 작은 조각상과 그림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쓰러진 한유석 대표의 시신이 있었다.

그는 오래된 원목 책상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마시다 만 위스키 잔과 고급 시가가 놓여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묵직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문진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피는 이미 굳어 검붉은 자국을 만들고 있었다.

강서진은 시신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스캐너처럼 움직였다. 옷차림, 자세, 표정, 그리고 피의 흔적까지.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퍼즐 조각으로 분류되고 저장되었다.

“발견자는?” 그가 물었다.

“집사 박 씨입니다. 아침에 대표님을 깨우러 왔다가 발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박 씨는 문이 잠겨 있었다고 했나?”

“네, 그래서 처음에는 문을 부수려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와서 보니 문이 조금 열려 있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강서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조금 열려 있었다?”

“네, 그런데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저희가 현장 보존을 위해 다시 잠근 겁니다.” 김 경위가 설명했다.

강서진은 서재 안을 천천히 걸었다. 낡은 마루는 그의 무게에 따라 미세하게 삐걱거렸다. 그는 책장 사이를, 가구 뒤편을, 심지어 천장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창문에 닿았다. 두꺼운 철창살이 외부의 침입을 완벽하게 막고 있었다. 창문 안쪽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방충망이 덧대어져 있었다. 외부로 통하는 어떤 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시신 앞으로 돌아왔다. 청동 문진. 흉기는 명확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이 완벽하게 닫힌 방에 들어와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졌을까?

강서진은 무릎을 꿇고 앉아 탁자 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위스키 잔, 시가,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은색 라이터. 라이터는 새것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미세하게 삐져나온,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종잇조각.

그는 조심스럽게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라이터 아래에 깔려 있던 종잇조각은 접혀 있었다. 펼쳐보니 한 글자가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다. ‘ㄹ’.

“‘ㄹ’… 이건 뭐지?” 김 경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서진은 그 글자를 응시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실마리가 그의 뇌리를 스치는 듯했다. ‘ㄹ’. 이 글자가 무엇을 의미할까? 피해자의 마지막 메시지? 아니면 범인이 남긴 조롱?

그는 종잇조각을 든 채 생각에 잠겼다. 서재 안의 공기가 점점 차갑게 느껴졌다. 완벽한 밀실. 완벽하게 닫힌 문. 어떻게?

그의 시선이 다시 탁자 위의 위스키 잔으로 향했다. 잔 안에는 위스키가 절반가량 남아 있었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액체 위로, 방 안의 정적이 반사되었다.

그 순간, 그의 손안에 든 종잇조각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 종잇조각이 아니라 그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온몸을 타고 번져 나갔다. 서재 안의 모든 것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마치 거대한 종 안에 갇혀 종소리가 울리는 듯한 불쾌한 진동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섬광이 터졌다. 낯선 이미지들이 혼란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낡은 시계추의 흔들림, 안개가 자욱한 숲, 그리고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

“강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김 경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강서진은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시야는 마치 기름을 바른 듯 일렁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을 짓누르던 감각이 사라졌다. 눈앞의 풍경은 선명해졌지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여전히 서재 안에 서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ㄹ’이라는 글자가 쓰인 종잇조각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주변이… 미묘하게 달랐다.

위스키 잔은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지만, 잔 안의 액체는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마시다 만 것이 아니었다. 시가는 재떨이에 놓여 있지 않고, 포장지에 싸인 채 그대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던 한유석 대표의 시신이 사라져 있었다.

강서진은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환각인가?

그는 주변을 다시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지만,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었다. 닫힌 문은 그대로였고, 창문 역시 철창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바로 그때, 문이 스르륵 열렸다.

강서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책장 뒤편, 깊숙한 그림자 속으로.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중년의 남자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는 손에 얇은 쇠꼬챙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눈빛에는 섬뜩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남자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쇠꼬챙이로 문손잡이 아래쪽에 있는 작은 구멍을 능숙하게 조작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 잠금장치가 겉에서 걸렸다.

강서진은 숨을 죽였다. 저건… 밖에서 잠그는 도구?

남자는 잠긴 문을 확인한 후, 방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는 기다리는 듯했다. 잠시 후, 또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대표님, 주무십니까? 아침 식사 시간입니다.” 집사 박 씨의 목소리였다.

강서진은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 이 상황은… 박 씨가 시신을 발견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의자에 앉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한유석 대표의 가슴에 박혀 있던 청동 문진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그 문진을 들고 서서, 자신을 부르는 박 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대표님?” 박 씨의 목소리가 점점 더 초조해졌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남자는 망설임 없이 문진을 자신의 가슴이 아닌, 그 옆에 놓인 큼직한 마네킹의 가슴에 꽂았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쓰러진 척 자세를 잡았다. 마치 그림처럼 완벽한 시신 연기였다.

박 씨가 문을 부수려는 듯 거세게 두드렸다. “대표님! 문 좀 여십시오!”

남자는 쓰러진 자세 그대로 팔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얇은 종잇조각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라이터 아래로 종잇조각을 밀어 넣었다. 그 종잇조각에는 ‘ㄹ’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순간, 강서진의 시야가 다시 한번 흔들렸다. 웅웅거리는 소리, 섬광, 그리고 압도적인 혼란.

“강 팀장님! 정신 좀 차리십시오!”

강서진은 눈을 번쩍 떴다. 김 경위가 그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쓰러지실 뻔했습니다.”

강서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탁자 위에는 마시다 만 위스키 잔과 시가가 놓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한유석 대표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여전히 ‘ㄹ’이라고 쓰인 종잇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놀랍도록 선명해졌다.

밀실 트릭은 깨졌다.

범인은 외부인이 아니었다. 애초에 방을 나갈 필요조차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범인이 나가기 전에* 피해자가 발견되도록 설계된 트릭이었다.

강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종잇조각을 꽉 쥐었다. ‘ㄹ’. 피해자의 마지막 메시지가 아니라, 범인이 남긴 기묘한 조롱.

“김 경위.”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서재의 무거운 공기를 꿰뚫었다.

“네, 강 팀장님.”

“이 사건,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김 경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하지만…!”

강서진은 서재 문을 굳게 잠근 채, 안에서 완벽한 연극을 펼쳤던 그림자 속 남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의미심장한 단 하나의 글자.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강서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시신을 지나, 빈 의자를 응시했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비어있지 않은 의자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시간의 틈새를 통해 본 진실이, 닫힌 문의 속삭임을 해독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진실을 증명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것뿐이었다.

그는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의 눈은 이미 다음 수를 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