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자네, 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 또 그놈의 우주적 영감이라도 얻고 있는 중이야?”

서지우 경위의 목소리는 전화기 너머에서도 살벌한 기세로 이안의 고막을 때렸다. 이안은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 그는 완벽한 잔향 효과를 위해 조용한 카페 구석에 앉아 음파의 미묘한 파동을 분석 중이었다. 아, 이 우주에는 어쩜 이렇게 소음이 많은지.

“지우 씨. 자네는 늘 시간에 쫓기듯 말하는군. 시간은 그저 관념적인 개념일 뿐. 모든 존재는 각자의 속도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 나는, 고독한 물리학자의 심정으로 이 공간의 음향학적 특성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일세.”

“그놈의 음향학적 특성 이해는 개나 줘 버리고 당장 여기로 오라고! 강태산 회장 살인 사건이야! 밀실 살인이라고! 자네 없이 이걸 어떻게 해결하라는 거야?”

서지우 경위의 외침에 이안은 결국 눈을 떴다. 으레 그렇듯, 그녀의 비명에 가까운 호출은 늘 그를 세상의 불협화음 속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강태산 회장이라.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이자, 사치와 기벽으로 악명 높은 인물. 흥미롭군.

“알겠네. 지우 씨의 영혼을 울리는 비명에 내 평화가 깨졌으니, 어쩔 수 없지. 가보도록 하지.”

이안은 젠틀하게 대화를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가죽 케이스 안에서 돋보기와 만년필을 슬며시 꺼내 탁자 위 커피 잔을 툭 건드렸다. 쨍- 하는 청아한 소리가 울리며 잔이 미끄러졌다. 그의 미간은 다시 한번 찌푸려졌다. 완벽한 마찰 계수는 아니었다.

***

강태산 회장의 펜트하우스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한복판에 위압적으로 솟아 있었다. 80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아찔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지금 그 아름다움은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펜트하우스 입구는 이미 노란색 폴리스 라인으로 봉쇄되어 있었고, 수십 명의 경찰과 감식반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안 씨! 드디어 오셨습니까!”

지우는 이안을 보자마자 반가움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놈의 ‘탐정님’ 소리는 제발 하지 말라고 했잖아, 지우 씨. 나는 그저 진실을 사랑하는 예술가일 뿐이야. 예술은 탐정이 될 수 없지.”

이안은 지우의 격앙된 목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며, 바닥에 깔린 카펫의 문양을 유심히 살폈다. 지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안이 나타나면 다들 한숨을 돌리는데, 그녀는 오히려 뒷목이 뻐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단 들어오시죠. 상황은 최악입니다. 강태산 회장님은 서재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흉기에 의한 과다 출혈.”

지우는 한숨을 쉬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서재 문은 안에서 이중 잠금 되어 있었습니다. 창문도 마찬가지고요. 밖에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발코니 문까지 완벽하게 잠겨 있었어요. 집 전체의 CCTV를 확인했지만, 회장님 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거나 나간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이에요.”

지우의 설명에 다른 형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난감한 표정이었다.
“사망 시각은 오늘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흉기는 회장님의 서재에 있던 이집트 투탕카멘 단검으로 보입니다. 회장님 손에 쥐여 있었어요.”

이안은 지우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서재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흩뿌려진 먼지, 벽에 걸린 그림의 미세한 기울기, 심지어 천장의 조명갓에 맺힌 미세한 물방울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안 씨! 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까?” 지우가 다시 한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물론이지, 지우 씨. 자네의 목소리만큼이나 생생하게 이 공간의 모든 정보가 내게 속삭이고 있네. 하지만 자네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다른 소리들을 방해하는군.”

지우는 분노를 삭이며 이안을 서재 앞으로 안내했다. 문 앞에는 이미 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지문을 채취하고 있었다.

“보십시오. 문고리 보이시죠? 안에서 잠갔다는 겁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고리뿐만 아니라, 문틈에 끼어 있는 작은 종이 조각, 문지방에 살짝 패인 흠집, 심지어 문에 사용된 나무의 나이테까지 그의 시선은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드디어 서재 안.
방은 고풍스러운 책들과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가득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책장 앞, 강태산 회장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눈은 크게 뜨여 있었고, 핏자국이 가슴 부근에 선명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화려한 장식의 단검이 굳게 쥐여 있었다.

모든 것이 지우의 설명과 일치했다. 밀실, 피해자의 손에 쥐여 있는 흉기, 외부 침입 흔적 없음. 누가 봐도 자살로 보일 만한 완벽한 상황이었다.

“자살이라고요? 이건 아무리 봐도 타살입니다! 회장님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게다가 단검을 그렇게 꽉 쥐고 죽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한 강력반 형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지우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시체는 잠깐 흘깃 본 후, 마치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책장과 책상,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의 눈은 핏자국 하나, 널브러진 책 한 권이 아니라, 벽면의 미세한 균열, 천장의 먼지,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 꽂혀 있었다.

“이안 씨, 대체 뭘 보시는 겁니까? 시체를 먼저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우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이안은 그제야 시체 쪽으로 다시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시체의 얼굴이나 상처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회장님의 안경을 집어 들었다. 테두리에 묻은 미세한 흠집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이안의 얼굴에는 심각함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하게 비쳤다.

“흠… 안경 알이 조금 돌아가 있군. 그리고 이 미세한 흠집은… 꽤 거친 표면에 긁힌 자국인데…”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중요한 건 밀실 트릭이라구요!” 지우가 미칠 지경이라는 듯 소리쳤다.

이안은 지우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 회장님의 손에 쥐여 있는 단검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손은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의 물건인 양 자연스럽게 만졌다. 지우가 경악하며 소리치기도 전에, 이안은 이미 단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단검… 강 회장이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군.”

모두의 시선이 이안에게로 향했다.

“이게 무슨 소리죠?” 한 형사가 물었다.

이안은 대답 대신, 회장님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리고는 그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는 미세한 가루를 돋보기로 확인했다.

“자네들, 이 단검의 손잡이 부분에 끈적임이 느껴지지 않나? 그리고 회장님의 손가락 끝에는… 미세한 염분 결정이 묻어 있네. 게다가 이 안경, 이 안경테의 긁힌 자국은… 이 방의 특정 사물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이안은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나, 거대한 책장 한가운데 놓인, 삐뚤어진 작은 도자기를 가리켰다. 도자기 표면은 거칠었고, 그 색상은 회장님의 안경테 흠집과 미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자살이 아니지. 게다가 이건 밀실도 아니었네. 애초에 ‘밀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어.”

이안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빛났다.

“이 모든 건, 완벽하게 꾸며진 하나의 연극일 뿐이야.”

지우는 이안을 멍하니 바라봤다. 밀실이 아니라고? 그럼 누가, 어떻게, 그리고 왜? 머릿속이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찼지만, 이안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그녀의 혼란을 잠재웠다. 그의 얼굴에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예술가의 냉철함과, 동시에 장난기 어린 소년의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밀실 살인 사건은, 이제 이안이라는 이름의 천재적인 연출가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지우는, 그 연극의 첫 번째 관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