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톱니바퀴 아래의 비명
칙칙한 수증기가 끓어오르는 소리, 낡은 증기 엔진이 거칠게 숨을 들이쉬는 쇳소리, 그리고 저 멀리 상층 구역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황제궁의 시계탑 종소리. 수증기 골목의 새벽은 언제나 같은 소음으로 시작되었다. 기름때와 땀내, 축축한 금속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시아는 가느다란 핀셋을 든 채 돋보기 너머로 눈을 가늘게 떴다.
낡고 비좁은 작업실, 좁은 창문 틈으로 간신히 비집고 들어온 새벽빛은 그녀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희미하게 비췄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배달된 황동 톱니바퀴 무더기와, 한쪽 팔이 통째로 뜯겨나간 인형 같은 자동인형 한 대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오늘 아침까지 수리해야 할 의뢰품이었다. 제국 수도 ‘강철 심장’의 하층민들이 의지하는 몇 안 되는 손재주 좋은 수리공, 그게 바로 시아였다.
“젠장, 이 톱니는 또 왜 이렇게 닳았어.”
시아는 작게 투덜거리며 낡은 작업등의 레버를 당겼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에 낀 먼지가 더욱 선명해지며 빛이 조금 더 강해졌다. 어제 밤새 작업하느라 밤을 꼴딱 새웠음에도 그녀의 눈은 번뜩였다. 날카로운 시선은 복잡하게 얽힌 부품들의 배열을 꿰뚫고 있었다. 고장 난 자동인형의 팔 안쪽을 정밀하게 분해하자, 작은 태엽 하나가 마모되어 헛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엉망진창을 가져오다니. 수리 비용은 제대로 받을 수나 있을까.”
그녀의 손은 재빨랐다. 핀셋으로 닳아버린 태엽을 집어내고, 새로 깎은 황동 태엽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작은 볼트들을 조여나가기 시작했다. 강철 제국에서 ‘수리공’이라는 직업은 멸시받는 하층민의 일이었다. 상층 구역의 귀족들은 자동인형이나 증기 기관이 고장 나면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사들였다. 하지만 수증기 골목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고장 난 기계는 곧 생활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시아의 손에서 수명을 다한 부품들이 다시 생명을 얻고, 멈춰선 기계가 다시 작동하는 것은 작은 기적과도 같았다.
“됐다.”
마지막 볼트를 조이자, 삐걱거리던 자동인형의 팔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시아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작업실 문이 요란하게 덜컥거렸다.
“누구세요?”
시아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작은 그림자가 작업실 안으로 휙 들어왔다.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 진이었다. 온몸에 기름때를 잔뜩 묻힌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작은 손에는 녹슨 철판 조각이 들려 있었다.
“누나! 큰일 났어! 감시자들이… 감시자들이 또!”
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은 시아가 돌보는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부모님을 잃고 홀로 떠돌던 진은 시아의 작업실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잔심부름을 해주곤 했다. 시아는 진을 통해 수증기 골목의 온갖 소식을 접했다.
“진, 무슨 일이야? 감시자들이 뭘 어쨌는데?”
시아는 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감시자’는 제국이 하층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배치한 거대한 증기 구동 자동인형 병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둔탁한 쇳덩이 갑옷을 두른 채, 감정이 없는 붉은 눈빛으로 골목을 순찰하는 그들은 하층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황제궁 철도 옆에 있는 폐기물 처리장에서… 제가… 제가 고철 좀 주우려고 했는데… 갑자기 감시자들이 나타나서 절 잡으려고 했어요! 다행히 이거만 들고 겨우 도망쳐 왔어요!”
진은 철판 조각을 시아에게 내밀었다. 얼핏 보기엔 흔한 고철이었지만, 시아의 눈에는 달랐다. 표면에 희미하게 황제궁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폐기물 처리장에 버려질 물건이 아니었다.
“이런 멍청한 녀석! 거긴 제국 폐기물 구역이잖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어?”
시아는 진의 등을 찰싹 때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제국 법에 따르면, 제국 소유의 시설물에서 허가 없이 물건을 취하는 것은 ‘황제령 위반’으로 중죄에 해당했다. 몇몇은 팔이 잘리기도 했고, 최악의 경우 광산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거대한 쇳덩이 발소리가 수증기 골목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웅장하고 차가운 기계음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이 구역 주민들은 즉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감시자의 지시에 따르라. 황제령 위반자가 이 구역에 은닉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협조하지 않을 시 중대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감시자의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음성은 사람들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작업실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 틈으로 불안하게 밖을 내다봤다. 시아는 진의 손을 잡고 작업실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누나, 어떻게 해? 감시자들이 나 잡으러 온 거야?” 진은 공포에 질려 시아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아니야, 괜찮아. 누나가 막아줄 거야.”
시아는 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요동쳤다. 감시자들은 융통성 없는 기계였다. 일단 황제령 위반자로 지목되면 끝까지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콰앙! 쾅!
감시자들의 발소리는 작업실 문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윽고 작업실 문을 강타하는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낡은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렸다.
“안에 있는 자는 문을 열어라. 황제령 위반자를 은닉하는 것은 제국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차가운 기계음이 작업실 안을 가득 채웠다. 시아는 진을 작업대 아래 숨긴 후, 결심한 듯 문 쪽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만요! 문이 낡아서 잘 안 열려요!”
시아는 일부러 허둥대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문밖에는 감시자 두 대가 서 있었다. 붉은 광학 센서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묵직한 강철 팔에는 전기 충격봉이 장착되어 있었다.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 개방하겠다.”
감시자 중 한 대가 팔을 들어 문에 달린 자물쇠를 부수려 했다. 그때였다. 시아는 재빨리 작업실 한켠에 놓여 있던 고장 난 증기 압력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문틈으로 보이는 감시자의 팔에 달린 연결 부위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챙그랑!
정확히 감시자의 팔 관절 부위를 강타한 압력계는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감시자의 팔이 휘청거렸다. 붉은 센서가 더욱 강렬하게 깜빡이며 오류 신호를 보냈다.
“침입자… 공격…!”
감시자는 고장 난 팔을 부여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전기 충격봉을 들어 시아를 향해 겨눴다. 시아는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잠깐! 진정해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고철을 주워 팔려는 아이를 불쌍히 여겨 잠시 들였을 뿐이에요! 황제령 위반이 아니라 자비심으로 인한 실수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감시자는 잠시 작동을 멈추는 듯했다. 제국의 법전은 기계적인 논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비’라는 비이성적인 요소는 감시자들의 연산 회로를 잠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자비… 시스템 오류… 재분류 중…”
그 찰나의 순간, 시아는 작업실 구석에 놓인 낡은 연료통을 발로 차 문으로 굴렸다. 연료통은 굴러가면서 밸브가 열려 고약한 증기 연료 냄새를 풍겼다.
“이게 다예요! 이게 전부 제가 가진 돈과 물건이라고요! 이걸로 벌금을 대신할 수는 없나요?”
시아는 과장된 몸짓으로 외치며 작업대 위에 널브러진 녹슨 고철 조각들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감시자들은 잠시 혼란에 빠진 듯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완벽한 효율을 추구했지만, 때로는 인간의 비논리적인 행동에 취약했다.
그때, 감시자 중 한 대가 고장 난 팔을 떨구며 외쳤다. “방해하지 마라! 황제령 위반자를 찾아라!”
다른 한 대가 시아를 향해 전기 충격봉을 휘둘렀다. 시아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문틀이 충격봉에 맞아 파편이 튀었다.
“진! 빨리 저기 뒤쪽 출구로 도망쳐! 절대 뒤돌아보지 마!”
시아는 뒤로 물러서며 진이 숨어 있던 작업대 아래를 가리켰다. 작업실 뒤쪽에는 좁고 허름한 쪽문이 있었다. 진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시아가 가리킨 곳으로 기어갔다.
감시자들이 시아에게 집중한 사이, 진은 쥐구멍 같은 쪽문으로 몸을 빼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시아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녀는 작업실 내부를 빠르게 스캔했다. 망치, 스패너, 그리고… 고압 증기 밸브.
“이봐요! 감시자님들!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런 작은 고철 조각 하나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울 필요가 있나요? 하층민에게 자비는 베풀지 않는다고요?”
시아는 끊임없이 떠들며 감시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들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올 때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작업실 벽에 붙어 있던 낡은 고압 증기 배관을 발견했다.
“나름 제국의 충실한 시민인데 너무하시는군요!”
그녀는 순식간에 몸을 날려 배관에 달린 밸브를 있는 힘껏 돌렸다.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감시자들의 시야를 가렸다.
“시스템 오류! 시야 방해! 재정비 중…”
혼란에 빠진 감시자들이 허둥대는 사이, 시아는 황급히 작업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골목은 이미 감시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붉은 눈빛이 그녀를 향해 일제히 쏠렸다.
“황제령 위반자 발견! 즉시 체포하라!”
거대한 쇳덩이 발소리가 그녀를 쫓기 시작했다. 시아는 수증기 골목의 좁고 복잡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내달렸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이 골목을 잘 알았다. 낡은 건물들의 옥상, 증기 배관이 얽히고설킨 좁은 통로, 하수구 맨홀. 제국의 감시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길들이었다.
시아는 숨을 헐떡이며 낡은 증기 엔진이 거칠게 돌아가는 건물 옥상으로 기어올랐다. 아래에서는 감시자들의 붉은 눈빛이 그녀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녀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였다. 고작 고철 조각 하나에, 어린아이 하나를 구하려다 이렇게 쫓기는 신세가 되다니. 제국은 하층민의 삶을 짓밟고, 작은 희망마저 빼앗으려 했다.
그때였다. 옥상 한편에 쪼그려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진의 모습이 보였다. 진은 공포에 질린 채 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괜찮아?”
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시아는 진을 꽉 끌어안았다.
“젠장, 괜찮을 리가 없잖아! 너 때문에 완전 황제령 위반자 되어버렸다고!”
시아는 진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지만, 이내 그를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그녀의 눈빛은 비통함과 함께 싸늘한 결의로 번뜩였다. 이 억압적인 제국, 이 차갑고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짓밟히며 살아야 할까.
“시아! 여기 있었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낡은 강철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 루카스였다. 그는 수증기 골목에서 꽤 오랫동안 증기 기관 수리점을 운영해 온 노련한 기술자였다. 시아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는 어딘가 수상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시아는 그와 거리를 두려 노력해 왔다. 그가 엮인 일은 언제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루카스 아저씨! 지금 여긴 왜…!”
“이 소란의 원흉이 시아 너였다니 놀랍지도 않다. 네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 없지.” 루카스는 껄껄 웃었지만,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진지했다.
“젠장, 아저씨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어서 가세요!”
“아니, 이제 더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지. 제국이 우리 목줄을 더욱 세게 죄어오고 있어. 이젠 숨죽이며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야.”
루카스는 시아의 손에 묵직한 강철 상자 하나를 쥐여주었다. 상자에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제국에서 사용하는 암호식 자물쇠 같아 보였다.
“이게… 뭐예요?”
“이 상자 안에는… 제국이 숨겨둔 거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열쇠가 될 지도 모르지. 이 자물쇠를 해독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곧… 큰일이 벌어질 거야. 그리고 그 중심에, 너의 손재주가 필요할 거다.”
루카스는 시아의 어깨를 꽉 잡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단호함과 함께,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시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상자를 내려다봤다. 제국이 숨겨둔 비밀? 열쇠?
그때, 멀리서 또 다른 감시자들의 둔탁한 발소리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타고 들려왔다. 시간이 없었다.
“어서 도망쳐! 내가 이쪽으로 유인할 테니!” 루카스는 망설임 없이 감시자들이 올라오는 계단 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저씨!” 시아는 루카스를 부르려 했지만, 그는 이미 낡은 계단 아래로 사라진 뒤였다.
진은 공포에 질려 시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시아는 루카스가 건넨 상자를 꽉 쥐었다.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그녀의 손바닥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뒤엉켰다. 제국의 억압, 루카스의 의미심장한 말, 그리고 이 차가운 강철 상자.
시아는 진을 등에 업고 옥상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아래로는 수증기 골목의 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강철 심장 상층 구역의 휘황찬란한 첨탑들이 새벽 햇살을 받아 번쩍이고 있었다. 그 빛은 수증기 골목의 어둠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젠장… 정말이지, 이 더러운 제국!”
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은 옥상 저편의 어둠 속으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녀는 등에 업힌 진을 단단히 붙잡고, 낡은 옥상 위로 발을 내디뎠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제국에 맞서는, 작지만 맹렬한 반란의 서막이 막 오르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