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먼지가 춤추는 폐허 속에서 썩어가는 시체 냄새가 진동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패한 살점을 스치고 지나가며, 역겨운 비린내를 코끝으로 실어 날랐다. 현우는 한쪽 팔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찢겨진 살점 사이로 흰 뼈가 섬뜩하게 드러나 있었다. 온몸의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여 끈적거리는 감각이 오소소 소름 돋게 했다. 망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준호! 이 개자식아!”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었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사라진 그림자. 현우는 그 그림자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차가운 총열의 감촉, 준호의 눈에 스치던 찰나의 망설임, 그리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악마 같은 얼굴.

그날, 우리는 ‘구원자의 은신처’라는 소문만 무성한 지하 벙커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놈들이 퍼뜨린 바이러스로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 지 어언 5년. 둘이서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버텨온 시간이었다. 식량을 나눠 먹고, 서로의 등을 지켜주며, 언젠가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굳건한 믿음의 한가운데, 언제나 준호가 있었다. 내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은신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좁은 통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천장, 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사람들의 목소리.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바로 그 순간, 준호는 현우를 밀쳤다. 정확히 말하면, 무너지는 잔해 쪽으로 힘껏 밀쳤다.

콰아앙!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현우의 팔을 강타했다.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 살점이 찢기는 끔찍한 고통. 눈앞이 하얘졌다. 그리고 준호가 총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녀석의 눈동자에 번지던 이기심, 그리고 결심.

“현우야, 미안하다. 여긴… 한 사람만 갈 수 있을 것 같아.”

헛소리!
“준호야,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너까지 갈 수 있어! 우리 둘 다!”

하지만 준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오히려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총을 겨눴다. 그 차가운 총구가 내 이마를 겨냥했다.
“살아남아라, 현우. 아니, 죽어라. 내가 너의 몫까지 살게.”
탕! 총성이 울리고, 균형을 잃은 현우는 잔해가 만든 거대한 틈새 아래로 떨어졌다.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은 준호를 쫓았다. 멀어지는 친구의 등.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친구는 없었다. 오직 배신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그날 이후 현우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 나왔다. 부러진 팔은 제대로 붙지 않았지만, 통증은 그의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부러진 뼈가 어긋나 굳어진 팔은 쓸모 없었지만, 그 고통은 현우를 살아있게 하는 지독한 주문이었다.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짐승이 되었다. 굶주림은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었고, 추위와 질병은 생존을 위협했다. 하지만 현우를 살게 한 것은 오직 하나, 복수심이었다.

‘준호, 반드시 찾아내서 죽여 버릴 거야.’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한 손으로는 무너진 건물들을 오르내리며 식량을 구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낡은 총을 닦고 또 닦았다. 총을 쥐지 못하는 왼쪽 팔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단검을 휘두르는 데 익숙해졌다. 물에 젖은 탄약들을 일일이 말리고, 고장 난 부품들을 주워 맞춰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었다. 그는 더 이상 약한 현우가 아니었다. 핏빛 증오로 뒤덮인 생존자였다.

몇 달, 아니 몇 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고, 폐허 위로 기괴한 풀들이 자라났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시는 거대한 녹색의 무덤이 되어갔다. 현우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약탈자 무리들을 피하고, 변이된 괴물들을 사냥했다. 가끔씩 만나는 생존자들에게서 준호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구원자의 은신처’에 들어간 남자, 그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소문은 점차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총괄 책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지하 도시의 지배자’라는 소문까지.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 준호는 살아 있었다. 그것도 잘 살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현우를 버리고. 역겨웠다.

***

준호의 발자취를 쫓는 여정은 험난했다. ‘구원자의 은신처’는 단순한 벙커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지하 통로와 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하 도시였다. 입구마다 삼엄한 경비가 있었고, 내부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마치 이곳은 세상의 마지막 낙원인 양, 단단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폐허 속에서 갈고닦은 생존 본능과 그림자처럼 숨어드는 기술로 그는 경비망을 뚫었다. 좁은 환풍구를 기어가고, 악취 나는 버려진 하수구를 헤치며 지하 도시 깊숙이 침투했다. 며칠 밤낮을 그림자처럼 숨어 이동하며, 마침내, 현우는 준호를 찾았다.

‘은신처’의 가장 크고 화려한 식당. 테이블에는 육즙 가득한 고기와 신선한 과일, 맑은 물이 담긴 잔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의 세상처럼 풍요롭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 중심에 준호가 있었다. 말끔한 옷차림, 여유로운 미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현우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그의 손에는 직접 개조한 낡은 소총이 들려 있었다. 녹슨 총신이지만, 내부 부품은 현우의 집념으로 새것처럼 관리되어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를 꿰뚫을 것이다.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분노, 증오, 그리고 약간의 허탈감. 저놈이,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준호란 말인가. 너무나도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저 모습이.

현우는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하지만 묵직하게 바닥을 울렸다.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우에게 꽂혔다. 폐허에서 막 기어 나온 듯한 넝마 같은 옷, 피로 얼룩진 얼굴, 그리고 살아있는 지옥을 겪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잔혹한 눈빛.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현우를 향하는 순간, 그 안에 담겨 있던 여유가 서서히, 처참하게 사라졌다. 경악, 공포, 그리고 부정. 그 모든 감정이 준호의 얼굴에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현우…?”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손에 든 와인잔이 와들와들 흔들렸다.

“오랜만이네, 준호.” 현우는 싸늘하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칼날처럼 식당의 공기를 갈랐다. “내가 살아있어서 많이 놀랐나 보지?”

준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뒤에 있던 경비들이 총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현우의 총구는 이미 준호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단 한 발, 그 한 발이면 이 모든 지긋지긋한 복수극이 끝날 터였다.

“다들 멈춰! 가만히 있어!” 준호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여유롭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비명에 가까웠다. “현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가? 개소리 하지 마. 넌 날 버리고 혼자 도망쳤잖아. 천장이 무너지는 곳으로 날 밀치고, 총까지 쐈지. 내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편하게 살고 있었나?” 현우의 목소리는 칼날 같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준호의 심장을 꿰뚫는 것 같았다.

“그건… 그땐 어쩔 수 없었어!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고! 살아남으려면…!” 준호가 변명하려 했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살아남아? 그래, 너는 살아남았지.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 나왔어. 썩어가는 시체 더미 속에서,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널 찾아내기 위해서. 이 모든 지옥 속에서 내가 버틴 유일한 이유가 너의 숨통을 끊는 거였어.”

“현우야, 제발… 우리가 친구였잖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 내가 너한테 다 나눠줄게, 이 은신처의 모든 것을!” 준호가 애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과거의 정이 아닌, 현재의 비굴함과 목숨을 구걸하는 추악함만 묻어났다.

“친구? 하… 웃기지도 않네.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 그래서 너에게 배신당했을 때, 세상이 두 번 무너지는 기분이었지. 근데 이제 와서 친구? 늦었어, 준호.”

현우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댔다. 준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뒤로 주춤거리며 테이블 위로 놓인 음식들을 엎었다. 와인잔이 깨지며 붉은 액체가 바닥에 쏟아졌다.

“안 돼! 쏘지 마! 현우!”

탕!

총성이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준호의 몸이 굳어졌다. 그의 가슴팍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눈을 크게 뜬 채, 준호는 현우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 속에서 희미하게 후회, 그리고 체념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털썩. 준호의 몸이 쓰러졌다. 그의 피가 화려한 식탁보 위로 번져 나갔다. 사람들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현우와 피 흘리는 준호의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현우는 쓰러진 준호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복수심은 사라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진 것처럼 허전했다. 텅 빈 공허함. 그가 이토록 간절히 원했던 순간인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단지,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마음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그는 총을 내리고 식당을 나섰다. 경비들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현우는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폐허,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모습만이 보였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하지만 이제 현우는 혼자였다. 진정으로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