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완벽한 밀실의 얼룩
“최 순경, 아직도 보고서를 붙잡고 있나? 세상의 모든 사건이 네가 퇴근해야 발생한다더냐?”
시계는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텅 빈 사무실, 탁상 스탠드의 외로운 불빛 아래 최윤서 순경은 눈을 비비며 컴퓨터 화면을 노려봤다. 일주일째 미제인 자전거 도난 사건 보고서는 대체 왜 이리도 골치가 아픈지. 키보드 위를 헤매던 손가락이 멈칫, 저 멀리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시간에 울리는 전화는, 십중팔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최 순경, 급하게 출동할 곳이 생겼다. 지체 말고 준비해.”
수화기 너머 김 팀장님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윤서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런 새벽 호출은 딱 두 가지 의미였다. 엄청난 일이 터졌거나, 아니면…
“…혹시 그분도… 같이 가야 합니까?”
윤서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김 팀장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시간에 그 친구 말고 누가 또 이런 사건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망할, 대체 밀실 살인이라니…”
윤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나.
***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순찰차가 익숙한 듯 낡은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으슥한 담벼락 너머로 드문드문 불을 밝힌 집들이 보였다. 윤서는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힐끗 바라봤다.
한지우. 20대 후반, 탐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평범한 차림새의 남자. 후드 티셔츠에 편안한 면바지 차림.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 느릿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맑은 눈빛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처럼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원룸 책상에 앉아 돋보기로 오래된 우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말에 윤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잠도 안 주무셨어요?”
윤서의 물음에 지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 대신 묘한 호기심이 감돌았다.
“음, 우표는 과거의 한 조각을 품고 있죠. 그 안에서 사라진 시간의 조각들을 찾는 건 흥미로운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가 시선을 돌려 윤서를 마주 봤다.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더 거대한 퍼즐이 저를 기다리고 있겠죠?”
윤서는 괜히 목덜미를 문질렀다. 거대한 퍼즐이라니. 남의 죽음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지우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게 사건은 언제나 풀기 위한 흥미로운 수수께끼였고, 자신은 그 수수께끼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조수이자 보호자였다. 비공식적인.
***
사건 현장은 한적한 주택가 가장자리에 위치한 허름한 단독주택이었다. 낡은 대문 앞에는 이미 노란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고, 몇몇 경찰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도 없이 조용히 도착한 순찰차에서 내리자마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최 순경! 그리고… 한 씨.”
김 팀장님이 한달음에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더 선명하게 파여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팀장님. 좋은 일은 아니시겠죠.” 지우가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김 팀장님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일은커녕, 최악의 시나리오야. 따라와 봐.”
그들은 현관을 지나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밟았다. 오래된 나무의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습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집 안은 겉모습처럼 낡고 어두웠다. 좁은 복도를 지나자 이내 복잡한 장비와 함께 몇몇 수사관들이 서성이는 방이 나타났다.
“피해자는 고(故) 박정호 씨. 70대 남성. 은퇴한 역사학자로, 몇 년 전부터 이 집에서 홀로 지냈다고 합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었고, 최근까지도 연구에 몰두했다고 해요.”
김 팀장님의 설명에 윤서는 방 안을 둘러봤다. 서재였다. 벽면 가득 빼곡히 꽂힌 책들과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원목 책상. 그 책상 위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보였다.
“사인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흉기에 의한 살해로 추정됩니다.” 김 팀장님은 침대 옆 바닥에 놓인 작은 은장도를 가리켰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방이 완벽한 밀실이라는 거야.”
윤서는 주변을 살폈다. 묵직한 원목 방문은 안쪽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열쇠는 책상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창문은 두 겹으로 되어 있었는데, 바깥쪽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안쪽 창문은 역시 안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유리창은 물론 벽 어디에도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시체는 오늘 아침, 정기적으로 식사를 가져다주던 요양 보호사가 발견했습니다. 여러 차례 인기척이 없어 이상하게 여겨, 열쇠공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왔다고 해요. 문이 열리자마자 요양 보호사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옆집 주민이 신고했고요.”
김 팀장님의 설명에 윤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완벽한 밀실. 과연 이 밀실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문득 옆에 선 지우를 바라봤다.
지우는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그는 방 한가운데 서서 시체를 보는 대신, 천천히 방의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책장 위를 쓸고, 낡은 커튼을 응시하고, 먼지 하나 없는 듯 보이는 마룻바닥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평온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만들어낼 파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한 씨, 어떻습니까? 뭔가 보이는 게 있습니까?” 김 팀장님이 초조하게 물었다.
지우는 고개를 살짝 젓더니, 책상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쓰러진 시체 옆 바닥에 놓인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그것이 이 모든 수수께끼의 핵심이라도 되는 양.
“음…”
그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윤서는 숨을 죽였다. 지우의 이런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언제나 큰 발견으로 이어지곤 했으니까.
“열쇠는 바닥에 떨어져 있군요.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지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고, 창문도 굳게 잠겨 있었고요.”
“그렇습니다. 그게 문제죠.” 김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떻게 살인범이 들어와서 살인을 저지르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우는 시체 옆에 떨어진 은장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짧고 날카로운 칼날에 희미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는 칼을 직접 만지지 않고,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그리고는 다시 열쇠, 그리고 방문을 차례로 바라봤다.
“이 방은… 정말 완벽하게 잠겨 있었을까요?”
지우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적막한 서재에 낮게 울려 퍼졌다. 윤서는 그 말이 마치 방 안의 모든 공기를 진동시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완벽한 밀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그 공간에서, 지우는 이미 자신들만 모르는 작은 틈을 발견한 듯 보였다.
그의 시선이 문득 책상 위, 쓰러진 박정호 씨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놓인 낡은 펜 하나에 머물렀다. 그 펜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다른 물건들과 달리, 책상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사용하다가 놓친 것처럼.
윤서는 다시 펜을 봤다. 평범한 잉크 펜. 하지만 지우의 눈은 그 평범함 속에서 뭔가 비범한 것을 읽어내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슬픔이나 분노가 아닌, 순수한 지적 유희에서 오는 즐거움의 미소였다.
“이건 좀 재미있네요.” 지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퍼즐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기분이에요.”
윤서는 혼란스러웠다. 재미있다니.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심장은 묘한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지우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 완벽한 밀실의 트릭을 깨부술까. 그녀는 이미 그의 등 뒤에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해답이 도출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지우의 존재는 마치 한 줄기 따스한 햇살처럼 느껴졌다. 어둡고 복잡한 사건 현장을, 그는 언제나 명료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이야기로 바꿔놓곤 했다. 이 잔혹한 밀실 살인 사건 또한 그의 손에서, 결국엔 납득할 수 있는 한 편의 드라마로 재탄생할 터였다.
그의 눈은 이미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