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김현우는 익숙한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퇴근 시간의 찌든 공기는 언제나 그의 폐를 무겁게 짓눌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 어제 마신 소주 때문일 거다. 그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꽉 막힌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늘 똑같았다. 빌딩 숲은 위협적으로 높이 솟아 있었고, 네온사인 간판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밤하늘을 수놓았다.

“젠장, 오늘도 야근이라니.”

나지막이 중얼거린 현우는 버스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그때였다.

평소와 다름없던 버스 안이 갑자기 섬광에 휩싸였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명(耳鳴)이 귓속을 때렸다.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빛과 소음 속에서 모든 것이 뒤섞였다.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기분. 장기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눈을 떴을 때, 현우는 딱딱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듯 아팠다. 폐부까지 차오른 흙먼지가 콜록거리는 기침을 유발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에 익숙지 않은 풍경이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지?’

그가 서 있던 곳은 분명 방금 전 버스 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들이 이빨 빠진 맹수처럼 흉하게 드러나 있었고, 뼈대만 남은 철근 구조물들이 회색빛 하늘을 향해 앙상한 팔을 뻗고 있었다. 도시는 마치 거인이 한바탕 난동을 부린 듯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만이 지배하는 곳.

현우는 더듬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옷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찢어진 소매 사이로 긁힌 상처들이 드러났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전원이 꺼져 먹통이었다. 손목에 찬 시계는 멈춰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건물을 찾으려 애썼다. 분명 퇴근길 버스 안이었고, 목적지는 늘 지나던 대로변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전쟁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게… 무슨…”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멀리 보이는 N타워의 잔해였다. 저 높은 타워는 서울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절반가량이 허물어져 기형적인 형상으로 서 있었다. 그 주변을 둘러싼 빌딩들은 마치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 있었다.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꿈인가? 아니, 생생한 통증과 코끝을 찌르는 흙먼지 냄새는 현실이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콘크리트 파편들이 밟혔다. 낡은 간판들이 녹슬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알아볼 수 없는 낙서들이 벽면을 뒤덮었다. 한때는 번화했던 거리였을 곳은 이제 잡초와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풀들은 놀랍도록 질기고 억세게 자라나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 있었다. 그 푸른 이파리들은 어딘가 낯설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차량들이 도로 위에 흉물스럽게 박혀 있었다. 문은 열려 있고, 시트는 찢어져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후 모든 사람들이 증발해버린 유령 도시 같았다.

목이 말랐다. 입안은 바짝 말라붙어 혀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평소 가지고 다니던 작은 생수병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방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흔적조차 없었다.

“물… 물 좀….”

쉰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녹슨 양철통을 발견했다. 먼지로 뒤덮인 통 안에는 썩은 나뭇잎 몇 개만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타임슬립?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은, 적어도 그가 알던 세상은 아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붉은 노을이 회색빛 도시를 잠시 물들였지만, 그 색은 어딘가 병든 듯 탁했다. 주위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서울의 밤은 늘 차가웠지만, 이곳의 냉기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현우는 무너진 건물 사이로 겨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가 건물을 발견했다. 간판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지만, 외형으로 보아 한때는 편의점이었던 곳 같았다. 그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그곳으로 향했다.

유리문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 선반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뒤엎어진 상품들 사이로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반짝였다. 약탈의 흔적이 역력했다.

절망감이 그의 심장을 쿵 하고 내려쳤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석구석을 뒤졌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카운터 아래에서 찌그러진 참치 캔 하나를 찾아냈다. 유통기한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곳에 유통기한이란 개념이 의미가 있을까?

그는 주저 없이 캔을 땄다. 손톱이 부러졌지만 상관없었다. 비릿하고 짠 참치 살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생존을 위한 연료일 뿐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달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선가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소리 같기도 했고,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그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아남아야 해.’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제 더 이상 익숙한 삶은 없다. 익숙한 도시도 없다. 그저 폐허가 된 세계와, 그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현우는 참치 캔을 든 채, 무너진 편의점의 잔해 속에서 밤을 맞이했다. 그의 등 뒤로, 잿빛 도시의 그림자가 더욱 길게 드리워졌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잔혹하고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