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밤이었다. 아니, 밤이라기보다는 영원히 해가 뜨지 않을 듯한, 거대한 그림자가 세상을 집어삼킨 듯한 어둠이었다. 희미하게 떠 있는 달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마저도 찢어진 천 조각처럼 너덜거렸다. 바람은 죽은 자들의 비명처럼 스산하게 울부짖으며, 고대의 기와 조각들을 휘감아 날렸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무진각(武盡閣)’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름처럼 모든 무(武)가 끝나는 곳, 혹은 모든 무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상반된 전설이 깃든 폐허.

나는 강태한. 강호에 이름을 날린 적 없는 일개 무인이지만, 내 손에 쥐어진 검만큼은 맹세코 그 어떤 고수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무진각에 발을 들인 순간, 나의 오만함은 마치 썩은 나뭇잎처럼 바스라지는 것을 느꼈다. 공기 속에는 곰팡이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역겨운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였다.

“드디어… 모였군.”

낮고 굵은 목소리가 어둠을 찢고 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횃불이 일렁였고, 그 빛 아래 거대한 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단 위에는 녹슨 칼날들이 꽂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검붉은 마른 피가 얼룩져 있었다. 그 앞에는 흑포를 두른 노인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텅 빈 눈동자는 별빛 하나 없는 심연 같았다.

노인의 옆에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침묵 속에 서 있었다. 모두 나와 같은, 그러나 나와는 다른 기운을 뿜어내는 자들이었다. 어떤 자는 전신에 기이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어떤 자는 눈동자가 짐승처럼 번뜩였다. 또 어떤 자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핏기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탐욕과 광기로 번들거렸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나는 이곳에 왜 왔는가. 내가 강호의 떠도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고수들의 무술 대회’는 그저 영웅호걸들의 패기 넘치는 경연쯤으로 생각했다. 승자에게는 천하를 뒤흔들 절대 무공의 비급이, 패자에게는 영원한 명예가 주어지는 그런 무대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명예도, 비급도 아닌,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지옥의 입구였다.

“칠야무결(七夜武決).” 노인의 목소리는 웅장하고 섬뜩했다. “일곱 밤 동안, 이 무진각에서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싸워라.”

내 심장이 철렁했다. 최후의 1인? 그 말은 곧,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니었다. 이건 학살이었다.

“승자에게는 세상의 혼돈을 잠재울 힘이 주어질 것이며,” 노인은 천천히 팔을 들어 어둠 속을 가리켰다. “패자에게는… 영원한 속죄만이 있을 것이다.”

속죄? 무슨 속죄?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때, 흑포를 두른 노인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 기운은 이내 거대한 그림자의 손으로 변하여 무진각의 천장을 꿰뚫었다. 하늘에서 핏빛 달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그 아래 서 있던 무인들의 몸에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첫 번째 밤의 시작이다.”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진각의 사방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비명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입에서는 썩은 내를 풍기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크아악!”

녀석은 한 손에 녹슨 철퇴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에 찬 검에 손을 뻗었다. 검집을 벗어난 서늘한 쇠붙이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놈의 철퇴가 내 머리를 강타하기 직전, 나는 몸을 숙여 피했다. 퍽! 뒤이어 돌기둥이 박살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이건 무인이 아니다. 괴물이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내 검술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오랜 시간 피와 땀으로 연마한 정통의 검술이었다. 녀석의 팔을 노리고 베었지만, 칼날은 마치 쇠붙이를 베는 듯한 둔탁한 소리를 내며 튕겨나갔다. 살점이 아닌, 딱딱한 무언가를 베어낸 감촉.

“젠장!”

녀석의 팔에는 뼈가 뒤틀린 듯한 기괴한 형상이 드러났다. 피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군데군데는 마치 부식된 금속처럼 반질거렸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평범한 인간의 팔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거지?

그때였다. 내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섬뜩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돌아볼 틈도 없이, 나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스윽! 날카로운 칼날이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새로운 습격자였다. 이 자 역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그의 눈이었다. 두 눈동자가 각기 다른 방향을 응시하며 흔들리고 있었는데, 마치 두 개의 독립된 의지가 그 안에 갇혀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커다란 식칼을 휘두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두 명. 이들은 서로에게는 관심도 없고, 오직 나만을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무공이 아니었다. 이 기괴한 힘은 대체…

“흐흐… 흐흐흐…”

뒤틀린 얼굴의 사내가 섬뜩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의 목소리는 찢어진 종잇장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식칼이 핏빛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오랜만에… 인간의 온기다…”

그의 눈은 나를 탐하는 육식 동물의 그것과 같았다. 온기? 온기라니. 녀석은 나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허기를 채울 먹이로 보고 있었다. 이 대회는 무림 고수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건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던져진 사냥감들의 발악이었다.

나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이 지옥 같은 밤을 버텨내야 했다.

내 검은 오직 생존만을 위해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