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도시의 밤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어왔다. 지아는 담요를 목까지 끌어당기고 소파에 반쯤 파묻혀 태블릿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 캐릭터들이 발랄한 목소리로 깔깔거렸지만, 지아의 머릿속은 온통 저녁 메뉴 고민으로 가득했다. 시계는 이미 아홉 시를 훌쩍 넘긴 시간. 배는 고픈데, 뭘 해 먹을 기력조차 없었다.

“아, 귀찮아. 그냥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찬장에서 라면 봉지를 꺼내고, 냄비에 물을 받았다. 물이 끓는 동안 식탁에 앉아 태블릿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배경음악이 텅 빈 거실을 채웠다.

뽀글뽀글, 냄비 속 물이 끓기 시작했다. 라면을 넣고, 스프를 탈탈 털어 넣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냄비를 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뜨거울까 조심하며 쟁반 위에 냄비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스윽.

쟁반 위, 냄비가 놓인 라면 받침이 아주 미세하게 옆으로 움직이는 것을 지아는 똑똑히 보았다. 아주 작고 느린 움직임. 눈을 비볐다. 잘못 봤나? 착각이었겠지.

“하마터면 쏟을 뻔했네.”

별 생각 없이 젓가락을 들어 면을 휘저었다. 호호 불어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이번에는 쨍그랑! 젓가락 한 짝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악! 이런!”

갓 끓인 라면 국물이 바닥에 튀었다. 지아는 이마를 짚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덤벙거리지? 피곤해서 그런가. 대충 바닥을 닦고 새 젓가락을 꺼내왔다. 그날 밤은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모든 것이 어설픈 밤으로 지나갔다.

***

다음 날 아침, 지아는 상쾌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간밤의 일들은 그저 피곤함에 비롯된 해프닝으로 치부되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음, 오늘은 무슨 차를 마실까.”

찬장을 열었다. 늘 똑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아끼는 토끼 그림 머그컵이 보이지 않았다. 지아는 찬장을 구석구석 살폈다. 없었다.

“어디 갔지? 어젯밤에 설거지 다 해놨는데.”

싱크대 주변을 뒤지고, 건조대도 확인했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 테이블 위도 살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평소 잘 쓰지 않는 컵을 꺼내들었다. 괜히 아침부터 기분이 찝찝했다.

차를 마시기 위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덜컹, 냉장고 문이 열리고 그녀의 시선은 한 지점에서 멈췄다.

토끼 그림 머그컵.
그녀의 아끼는 컵이, 냉장고 야채 칸 옆, 찬 우유팩들 사이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뭐?”

지아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컵을 보았다. 분명 거기 있었다. 빳빳한 토끼 귀가 살짝 얼어붙은 우유팩 옆에서 시니컬하게 솟아 있었다. 그녀는 컵을 집어 들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냥 상온의 컵이었다. 하지만 그 위치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술에 취해 냉장고에 넣어뒀나? 어제 술 한 방울도 안 마셨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컵이 돌아왔으니 됐다. 그녀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다.

***

그날 저녁, 지아는 서재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고요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책에 집중하던 지아는 문득 시선이 닿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액자.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이 담긴 액자가, 아주 천천히,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지아는 숨을 멈췄다. 낡은 원목 액자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똑바로 제자리를 찾았다.

“…바람인가?”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에어컨도 꺼져 있었다. 선풍기도 없었다. 지아는 손을 뻗어 액자를 만져보았다. 굳건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흔들림도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제의 라면 받침, 사라진 머그컵, 그리고 지금 이 액자.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명확한 ‘움직임’들이었다.

“혹시… 지진?”

아무리 봐도 지진일 리 없었다. 다른 물건들은 모두 고요했다.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텅 빈 아파트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그날 밤, 지아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창밖 도시의 불빛들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희미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모든 소리가 예민하게 들렸다.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 위층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진동,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

며칠 후, 지아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거실 테이블 위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거나,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동안 수건이 갑자기 세면대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이제 애교 수준이었다.

가장 지아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그녀의 열쇠였다.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분명 어젯밤에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두었던 열쇠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 진짜! 또 시작이야?”

지아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파트가 넓은 것도 아닌데, 매번 물건들이 사라졌다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이젠 마치 누군가 자신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열쇠! 지각한다 말이야!”

거실을 헤집고, 침실을 뒤지고, 주방까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샤워실 쪽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촤아악, 물을 가득 머금은 샤워기 헤드에, 그녀의 자동차 열쇠와 집 열쇠가 사이좋게 매달려 있었다. 방울방울 물방울까지 맺힌 채로.

지아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농담… 하니?”

그 순간, 샤워기 헤드에 걸려있던 열쇠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살짝 흔들렸다.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너, 누구야?”

지아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무서웠다. 처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더 이상 피곤함이나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파트에, 지아 혼자 사는 이 공간에,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퇴근 후, 지아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혼잣말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또 어떤 사고를 칠 건지…”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공포보다는 이젠 어이없음과 알 수 없는 흥미가 뒤섞인 감정이었다.
식탁에 봉투를 내려놓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향긋한 커피 냄새가 주방을 채웠다. 습관처럼 설탕을 넣으려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아가 숟가락을 잡고 있는데, 손끝에서 미묘한 당겨짐이 느껴졌다. 아주 약하게,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치듯 숟가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숟가락을 고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 당겨짐은 계속되었다.

“뭐야… 너니?”

지아는 허공에 대고 속삭였다. 숟가락은 여전히 미세하게 저항하는 듯 흔들렸다. 지아가 손에 힘을 주자, 숟가락은 순간적으로 팽팽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가 숟가락을 잡고 있는 듯한 기분.

그리고 이내, 그 미묘한 힘이 스르륵 사라졌다. 숟가락은 다시 평범한 금속 조각으로 돌아왔다.

지아는 멍하니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 그리고 허공.

그때였다. 맑고 고운, 작은 종소리가 띠링- 하고 울렸다. 마치 누군가 아주 작은 유리 종을 흔든 것 같은 소리였다. 거실 어디선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녀의 아파트.
고요했다.

그녀는 손에 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두렵고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아주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존재는, 해코지를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음, 알겠어.”

지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알았다고. 이 작은 장난꾸러기야. 그럼, 다음엔 또 뭘 할래?”

텅 빈 거실을 향해,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창밖은 여전히 도시의 밤으로 가득했다.
지아의 아파트에 드리워진, 기묘하고도 따스한 미스터리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