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이었다. 심연처럼 내려앉은 우주선단의 어둠 아래, 천둥매의 콕핏은 푸른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류진은 홀로 그 차가운 기계의 심장 속에서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묵직한 중력의 흐름이 천둥매의 거대한 엔진부를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처럼, 콕핏 안은 고독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 밤, 그 모든 소음은 아득하게 멀었다. 류진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잔상만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류진.”**

부드러운 속삭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마지막 햇살처럼 온화하면서도, 심장을 저미는 서늘한 파동. 마지막 만남은 언제나 찰나의 꿈결 같았다. 그녀의 손이 닿았던 팔목에는 아직도 그녀 종족 특유의 섬세한 에너지 흐름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의 접촉은 금지된 언어와 같았다. 두 종족의 오랜 전쟁사 속에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반역이었다. 특히 엘리아는… 그녀는 저편 종족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류진은 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금속 헬멧의 감촉이 오히려 머릿속의 열기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천둥매의 HUD(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평화로운 순찰 경로가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류진의 눈에는 그 평화가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한때 맹렬하게 싸웠던 두 종족의 경계선이 이렇게나 희미하게 느껴지는 밤은 처음이었다.

“진정해라, 류진.” 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임무에 집중해야지.”

하지만 엘리아의 눈빛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고요하면서도 심연을 담고 있던,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던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 그녀의 종족, 아스테라족의 특징적인 보랏빛은 우리의 병사들에게는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류진에게는 그 색이 우주에서 가장 찬란한 별빛이었다.

그때였다. 콕핏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렸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푸른빛이 난무하던 HUD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경고창이 깜빡이며 섬뜩한 문구를 띄웠다.

**[경고! 적성 반응 감지! 아스테라 기동병기! 다수!]**

류진의 정신이 번개처럼 돌아왔다. 사적인 감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베테랑 파일럿의 냉철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는 본능적으로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천둥매의 엔진이 포효하며 기체를 전방으로 밀어냈다.

“위치 확인! 수량 보고!” 류진은 거칠게 무전 스위치를 눌렀다.

[본부! 확인되었습니다! 아스테라 공격부대! 최소 5개 편대 이상! 순찰 경로를 이탈하여 우리 영공으로 침투 중입니다!]

“망할!” 류진은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대규모 침투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최근 전선은 소강상태였고, 이렇게 대놓고 도발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전투 준비! 각 부대는 즉시 교전 태세에 돌입하라! 류진, 네 7편대는 전방에서 적의 접근을 최대한 저지한다! 후방 지원은 곧 도착할 것이다!” 사령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알겠습니다! 7편대, 전방으로 돌격한다! 각기 맡은 구역을 사수하라!” 류진은 명령을 하달하며 천둥매의 무장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미사일 포드가 열리고, 주포 에너지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칠흑 같은 우주 속에서 점멸하는 보랏빛 섬광들이 보였다. 아스테라 기동병기, ‘아크로스’. 날렵하면서도 기괴한 형태로, 마치 거대한 곤충 같기도 하고 심해의 괴물 같기도 한 그들의 기체는 언제나 위협적이었다.

**콰아앙!**

선두에 선 류진의 천둥매가 굉음을 내며 가속했다. 중력 가속도가 온몸을 짓눌렀지만, 그는 익숙하게 버텨냈다. 눈앞의 HUD에는 수십 개의 적성 기체가 붉은점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목표 포착! 주포 발사!”

**즈즈즈즈징-! 콰과광!**

천둥매의 주포에서 푸른 에너지 빔이 뿜어져 나갔다. 선두에 있던 아크로스 한 기가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류진은 거침없이 기동하며 후방에서 날아오는 적의 에너지 탄환들을 회피했다.

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녹색과 보랏빛 섬광이 난무하고, 쉴드 충돌음과 폭발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류진은 숙련된 사냥꾼처럼 전장을 누볐다. 그의 천둥매는 마치 살아있는 맹수처럼 적의 틈을 파고들어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세 번째 아크로스 기체를 격추하고, 다음 목표를 조준하려던 찰나였다.

화면 한구석에, 다른 아크로스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기동을 펼치는 기체가 포착되었다. 다른 아크로스들이 무자비하고 직선적인 공격을 퍼붓는 반면, 그 기체는 물 흐르듯 유려하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그러나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검무와 같은 기동이었다.

류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움직임. 너무나도 익숙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밤, 그와 엘리아가 비밀리에 함께 모의훈련을 하던 격납고에서, 그녀가 자신의 기체를 조종하며 보여주었던 바로 그 움직임. 아스테라 종족 특유의 섬세한 에너지 제어 기술과 결합된, 오직 그녀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동술이었다.

**”설마… 엘리아?”**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혼잣말은 무전의 잡음에 파묻혔다. 믿을 수 없었다. 엘리아는 전투 부대 소속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는 연구자였고, 조율사였다. 전선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 기체는?

그 순간, 그 ‘춤추는’ 아크로스 기체에서 특유의 보랏빛 에너지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다른 아크로스 기체들보다 훨씬 강렬하고, 정교하게 제어된 파동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뿜는 오라와도 같은. 류진은 그 파동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흥분하거나, 혹은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류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전투는 그의 주변에서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아군 지원기가 도착했지만, 아스테라 부대의 물량은 압도적이었다.

[류진! 뭘 하는 거야! 빨리 저 앞쪽 아크로스 처리해! 아군 쉴드가 뚫리고 있다!]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류진은 눈앞의 HUD를 노려봤다. 그의 천둥매의 타겟팅 시스템은 이미 그 ‘춤추는’ 아크로스에 붉은색 락온(Lock-on)을 걸어두고 있었다. 발사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저 기체는 섬광과 함께 우주의 먼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엘리아의 미소와,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마치 슬라이드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류진,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너도, 나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그녀의 경고가 귓가에 다시 울리는 듯했다.
그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 기체를 파괴하면, 임무는 완수하겠지만… 그의 심장은 영원히 파괴될 터였다. 하지만 파괴하지 않으면? 동료들이 위험해지고, 그의 비밀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

**”류진! 망설이지 마! 사격해!”**

사령관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류진의 눈은 흔들렸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발사 버튼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그 순간, ‘춤추는’ 아크로스 기체가 한 차례 기묘한 회피 기동을 선보이며 류진의 천둥매를 향해 보랏빛 에너지 탄환을 발사했다. 그것은 섬뜩한 경고이자, 동시에 무언의 질문 같았다.

네 선택은?

류진의 콕핏 안은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류진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한 점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