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독립적인 단편 소설

황무성, 그 이름처럼 메마른 별이었다. 붉은 흙먼지가 늘 하늘을 뒤덮고, 사방에 널린 기계 문명의 잔해들은 희망보다 좌절을 상징했다. 이곳은 아크론 제국의 거대한 기계톱니바퀴 속, 가장 바닥에 위치한 톱니 중 하나였다. 이 행성의 유일한 가치는 ‘크리스탈리아’라는 희귀 광물뿐. 제국은 이 행성을 오직 자원 채굴 행성으로만 이용했고, 주민들은 그들의 지친 등골을 착취당하며 살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크리스탈리아 광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과 제국 함선의 붉은 섬광만이 보일 뿐, 진정한 별빛은 먼지구름 너머로 가려져 있었다. 한서준은 그 빛들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타오르는 분노와 차가운 결의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바로 어제, 제국 총독 칼릭스의 새로운 조치로 인해 그의 친구, ‘들개’라고 불리던 사내가 광산 깊은 곳에서 탈진해 쓰러졌고, 제국군 병사들은 그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 폐기물 더미에 던져버렸다. 제국의 법은 간단했다.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 존재는 가치가 없다.

“아직도 보고 있냐, 서준아.”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강아라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눈매는 항상 날카로웠고, 조종사복 위로 보이는 낡은 가죽 조끼는 수많은 싸움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아라는 어린 시절, 제국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가족을 잃었다. 황무성 곳곳에 널린 고아 중 하나였다.

“들개가 아니었으면, 내가 쓰러졌을 거다.” 서준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그놈의 크리스탈리아가 뭔데, 우리 피를 말려 죽이려는 거지?”

아라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게 제국이니까. 우린 그냥 숫자에 불과해. 부품이 닳아 없어지면 새 걸로 갈아 끼우는 게 제국식 효율성이잖아.”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제국군의 거대한 순찰선이 어둠 속을 가르는 모습에 닿아 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압력이었고, 황무성 주민들의 숨통을 조이는 족쇄였다.

“더 이상은 안 돼.” 서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이런 식으로는 전부 죽을 거야.”

“어떻게? 주먹으로 제국군 순찰선을 때려 부술 건가?” 아라의 비웃음 속에는 미약한 희망과 깊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싸울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었지만, 뭘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몰랐다.

그때,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인물이 걸어 나왔다. 박선우. 제국 아카데미에서 퇴출당한 천재 기술자였다. 안경 너머 그의 눈은 언제나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끓어오르는 열정이 숨어 있었다. 그는 손에 들린 고물 데이터 패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주먹으로 안 되면, 머리를 써야죠.” 그의 시선은 서준과 아라를 번갈아 응시했다. “제국의 순찰선은 대단해 보이지만, 전부 똑같은 프로토콜로 움직입니다. 낡은 방화벽과 예측 가능한 이동 경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 황무성 환경에 최적화되지 않은 시스템이 있어요.”

아라가 눈썹을 치켜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해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해킹으로는 한계가 있죠. 하지만 교란은 가능합니다.” 선우는 데이터 패드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순찰선들의 복잡한 운항 경로와 통신망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 주말, 제국에서 새로운 자원 수송선을 보냅니다. 크리스탈리아를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선이죠. 그 배에 실린 물량이면, 우리 마을 몇 년치 식량과 맞먹을 겁니다.”

서준의 눈이 빛났다. “그걸 뺏자는 거야?”

“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제가 통신망을 교란해서 순찰선들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면, 아라 씨가 그 화물선을 나포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착륙 지점에는 서준 씨가 사람들을 모아서 기다려야겠죠. 화물선을 제압하는 건 단순한 기술 싸움이 아니니까요.”

아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차피 죽을 바엔 화려하게 죽는 게 낫지. 제국 놈들이 뺏어간 내 식량, 다시 찾아올 시간인가.”

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희망 없는 눈빛으로 광산만 오가는 주민들, 병든 아이들, 굶주린 노인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정말 모든 것이 끝이다.

“좋아.” 서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해 보자. 망치와 별. 우리가 그들의 머리를 깨고, 희망의 별이 되어주자.”

선우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 작전, 이름이 필요하겠군요.”
“이름?” 아라가 물었다.
“망치와 별.” 서준이 낮게 읊조렸다. “우리에게 남은 건 부서진 망치뿐이지만, 그 망치로 저들의 별을 부술 겁니다.”

***

작전의 날, 황무성의 밤은 유난히 붉은 먼지로 가득했다. 선우는 지하 깊숙이 파놓은 임시 기지에서 고물 통신 장비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고, 홀로그램 화면에는 제국군의 통신 주파수가 끊임없이 요동쳤다.

“시작합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 순간, 황무성 상공을 순찰하던 제국군 함선들의 통신망이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삐비빅, 삐빅! 경고음이 울리고, 일부 함선은 갑자기 항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선우가 조작한 가짜 신호들이 제국군의 관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교란시킨 것이다.

“하, 이 멍청한 놈들.” 아라의 전투기가 어둠 속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그녀의 조종석 안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투지가 넘쳤다. 아라의 전투기는 황무성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낡은 고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을 거치면 어떤 제국군 최신 전투기보다도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수송선 포착!” 아라가 외쳤다. 눈앞에 거대한 제국군 수송선이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탈리아를 가득 싣고, 오만하게도 최소한의 호위함만을 동반한 채.

“자비란 없다.” 아라가 방아쇠를 당겼다. 고물 전투기의 에너지 포가 섬광을 뿜어내며 수송선을 향해 날아갔다. 수송선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추진기에 타격을 입었고, 휘청이며 황무성 대기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공입니다, 아라 씨!” 선우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들려왔다. “하지만 곧 제국군이 정상 항로를 파악하고 몰려들 겁니다. 서두르세요!”

수송선은 불덩이가 되어 황무성의 붉은 대지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서준은 미리 약속된 착륙 지점에서 주민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녹슨 곡괭이, 낡은 파이프, 심지어 돌멩이까지 들려 있었다.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었지만, 그들의 눈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꽃처럼 빛났다.

“준비해! 곧 온다!” 서준이 소리쳤다. “우리가 빼앗긴 것을 되찾을 시간이다!”

수송선은 거대한 굉음을 내며 황무성 지면에 처박혔다. 붉은 먼지가 하늘로 치솟고, 금속이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귀를 찢었다. 착륙 충격으로 수송선의 일부 격납고가 열렸고, 그 안에서 눈부신 푸른빛의 크리스탈리아 원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제국군 병사들이 이미 소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저항하면 사살한다!” 제국군 병사들이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황무성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굶주림과 착취로 점철된 삶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서준이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그의 손에는 낡은 철퇴가 들려 있었다.

“우리 것이다! 우리가 일군 것이다!” 서준이 포효했다.

주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수십 년간 억눌렸던 분노와 좌절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제국군 병사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숫자에 불과한 평민들이 감히 제국에 대들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맨손과 낡은 도구로 무장한 평민들의 물결은 제국군 병사들을 덮쳤다. 육탄전이 벌어졌다. 소총의 불꽃이 번뜩였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평민들이 쓰러져 가는 동료들을 밟고 전진했다. 아라의 전투기가 상공을 저공 비행하며 남은 제국군 병사들을 위협했고, 선우는 간간이 통신망에 혼선을 주며 제국군 증원 병력이 도착하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켰다.

결국, 제국군 병사들은 이성을 잃은 평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무기와 훈련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민중의 분노 앞에서는 무력했다.

“성공이다!” 서준의 목소리가 붉은 먼지 속에서 울려 퍼졌다.

주민들은 쓰러진 자들을 부축하고, 터져 나온 크리스탈리아 원석을 수송선 안으로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광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자, 빼앗겼던 희망이었다.

저 멀리, 제국군 증원 함대의 붉은 섬광이 다시 황무성 상공을 비추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 작은 승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절망 속에 갇힌 존재들이 아니었다. 망치와 별. 그들은 제국의 억압 속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별을 발견한 것이다.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 대장?” 아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서준은 크리스탈리아 빛을 머금은 원석을 바라보았다. “제국이 가장 아끼는 심장으로 간다. 이 불꽃을 전 우주로 퍼뜨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선우가 데이터 패드를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정보망을 풀고, 이 황무성에서의 승리를 전파해야 합니다. 제국에 억압받는 모든 행성들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세 사람은 붉은 먼지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상처와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의지가 빛나고 있었다. 황무성에서 피어난 작은 불꽃이 이제 거대한 제국을 태워버릴 불길로 번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망치와 별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