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소파에 깊이 몸을 묻었다. 창밖은 이미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빌딩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불빛들이 거미줄처럼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퇴근 후, 고층 아파트 제 집 거실에 앉아 내려다보는 이 야경은 이민준이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루의 고단함이 뜨거운 차 김처럼 서서히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으려는 찰나, 주방 쪽에서 ‘짤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마도 식기 건조대에 놓아둔 컵이 불안하게 굴러 떨어진 것이리라. 혼자 사는 집에서는 그런 사소한 소음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법이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짤그락, 짤그락.’ 마치 누군가 접시를 쌓아 올리다 균형을 잃은 것처럼 불규칙적이고 연이어 들려왔다.

이상했다. 건조대에는 몇 개의 접시만 있었고, 그마저도 고정대에 단단히 끼워져 있었다. 스스로 움직일 리 없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거실의 스탠드 불빛이 주방까지는 미치지 못해 어스름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누구세요?”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대신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귀를 찢었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이치는 듯했다. 식겁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야!”

주방으로 달려가려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현관문 쪽에서 쿵, 쿵, 쿵 하는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맨몸으로 문에 달려들어 부딪히는 것 같았다. 그는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주방의 쨍그랑 소리와 현관문 소리가 기괴하게 섞여 좁은 아파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건 절대로 평범한 소리가 아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거실 스탠드의 불빛을 최대로 올렸다. 밝아진 시야 속에서 주방과 현관문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주방 바닥에는 며칠 전 새로 산 머그컵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파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현관문, 멀쩡해야 할 그 문에는 깊게 긁힌 자국들이 선명했다. 마치 날카로운 발톱 같은 것으로 긁어낸 흔적 같았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집 안에 침입자가 있는 건가? 하지만 굳게 잠긴 현관문은 그가 마지막으로 잠갔을 때와 똑같았다. 도어록은 풀려있지 않았다. 창문은 모든 방이 닫혀 있었다. 20층 높이에 사는 그의 집에 침입자가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럼 대체 뭐지?

불길한 예감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려다 멈칫했다. 손가락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문득, 거실 한편에 놓인 작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액자가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액자를 들었다 놓는 것처럼. ‘툭’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액자는 카펫 위에 안착했다. 유리가 깨지거나 프레임이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제자리에 놓였다.

그의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명백한 ‘어떤 존재’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누구야… 대체 누구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거실의 불빛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신호라도 보내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그의 시선은 깜빡이는 불빛을 따라 천장으로 향했다. 그때, 그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거실 천장이 일렁였다. 공기가 물결치듯 흔들리더니,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이 피어났다. 안개 속에서 흐릿한 형상이 잠깐 비쳤다 사라졌다. 그 형상은 마치 오래된 영상이 재생되는 것처럼 끊김과 왜곡이 심했다. 얼핏 보니, 낡은 가구들과 빛바랜 벽지, 그리고 희미한 사람의 형체 같았다. 오래된 한옥의 마루 같은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분명 이 현대식 아파트에서는 있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민준은 숨을 들이켰다. 환각인가?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것인가? 그는 눈을 비볐다. 하지만 천장의 왜곡된 풍경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선명해지고 있었다. 낡은 상 한쪽에는 비단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갓이 쓰인 누군가가 꿇어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흐느낌 소리는 없었지만, 그 동작은 분명히 슬픔에 잠긴 사람의 것이었다.

그의 아파트 천장에서 조선 시대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간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기괴한 광경에 이민준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천장의 풍경이 일순간 어두워지더니, 무언가 빠른 속도로 이민준의 시야로 돌진해 들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낡은 상 위에 놓여있던 비단 보자기가 풀리면서 그 안에 있던 붉은색 무언가가 확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민준의 머릿속에 섬뜩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돌려줘… 내 것을…*

음성은 직접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차갑고 비탄에 잠긴, 하지만 동시에 끔찍한 분노가 서린 목소리였다. 이민준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부딪히면서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은 비명으로 터져 나오려던 그의 입을 막았다.

천장의 영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원래의 하얀 천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광경이 그의 망막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그 음성, *돌려줘… 내 것을…*

갑자기, 거실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완전한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다. 창밖의 도시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질질 끌리는 듯한, 아니, 흐느적거리는 듯한 소리였다. 아주 가까이, 그의 바로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그는 감히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귀를 기울였다. 흐느적거리는 소리는 멈췄다. 대신, 무언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가졌어…*

그 목소리는 아까 들었던 그 차갑고 비통한 음성이었다. 바로 그의 귓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생생함에 이민준은 온몸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기 직전, 그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섬광을 보았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아주 오래된 붉은색 노리개였다. 마치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