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익숙한 색깔이었다. 지훈은 손가락 끝으로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자정 너머, 그의 704호 작업실 겸 침실은 스탠드 조명 아래서 겨우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피곤한 눈동자에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감을 코앞에 둔 웹소설 삽화 작업은 늘 이런 식이었다. 시간이 그를 삼키고, 그는 고독과 싸웠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낡은 의자가 삐걱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층간 소음이 심한 아파트였지만, 이 시간만큼은 모두가 잠든 듯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때로는 깊은 바다처럼 그를 짓눌렀다.
그때였다. 툭. 작고도 명료한 소리가 주방 쪽에서 들려왔다.
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도둑이 들었다기엔 너무나 사소한 소리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잠시 후, 다시 한번. 이번엔 서걱거리는 소리였다. 마치 냉장고 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닫히는 듯한. 하지만 그는 분명히 잠그고 나왔다.
“젠장,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지훈은 자신을 달래듯 중얼거렸다. 그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자 낡은 등이 한두 번 깜빡이더니 이내 기분 나쁜 윙 소리와 함께 환한 빛을 토해냈다.
주방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식탁 위 컵, 설거지통의 그릇들,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냉장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에이씨, 진짜 피곤한가 보다.”
그는 짧게 자조하며 물 한 컵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 마치 누군가 바로 뒤에서 숨을 내쉬는 듯한 느낌. 지훈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텅 빈 복도와 굳게 닫힌 현관문뿐이었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는 빠르게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불안한 마음에 문을 잠그고 의자에 앉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설마…’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불길한 상상. 그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도시 한복판, 그것도 7층 아파트에서 귀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시 작업에 몰두하려 했지만, 집중은 산산조각 났다. 조금 전의 기분 나쁜 소리와 한기,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스산해진 방의 분위기가 그를 옥죄었다. 스탠드 조명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진 것만 같았다.
그때, 침대 옆 작은 책상 위, 그가 아끼던 오래된 탁상시계가 갑자기 ‘탁’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
지훈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닥을 응시했다. 시계는 부서져 유리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분명히 시계를 책상 가장 안쪽에 놓았었다. 떨어질 리가 없었다. 그것도 혼자서.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그는 몸을 일으켜 책상에 다가갔다. 파편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그의 옆에 놓여있던 연필꽂이에서 연필 한 자루가 핑그르르 돌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젠 심지어 연필심이 바닥에 박혔다.
“누구… 야?”
지훈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포가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누구 있… 습니까?”
그의 말은 텅 빈 방에 메아리치며 사라졌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공기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그러나 방 안은 마치 심해처럼 어둡고 고요했다. 아니,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주 작고,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혹은 한 사람이 다른 목소리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것처럼.
지훈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현관문으로 향해야 했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가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탁! 하고 방의 스탠드 조명이 꺼졌다. 순식간에 암흑이 그를 집어삼켰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불빛마저도 완전히 차단된 듯한, 진정한 어둠이었다.
“읍… 읍!”
지훈은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주머니에 있었던 것 같은데, 없었다. 책상 위에도, 침대 위에도 없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마치 누군가 질질 끌며 걷는 듯한 불규칙적인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지훈이 있는 작업실 문을 향해 다가왔다.
털이 곤두섰다.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공포가 그를 마비시키는 대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작업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손이 그 문을 밀어젖히는 것처럼, 느리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느꼈다.
차가운 시선. 무수히 많은 시선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그의 발목을 무언가가 잡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가락들이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흐읍!”
지훈은 비명 대신 밭은 숨을 내뱉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그의 귀에 섬뜩할 정도로 가까이, 낮고 쉰 목소리가 속삭였다.
“아직… 여기에… 있었네…”
그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지만, 동시에 극도로 낯설었다.
발목을 잡은 힘이 더욱 강해졌다. 그는 바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공포가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이곳은 더 이상 그의 아파트가 아니었다.
이곳은… 다른 무엇인가의 영역이었다.
지훈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차가운 손아귀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무언가의 형체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비린 냄새와 함께, 그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가득 찼다.
“나가… 나가… 나가…”
아니, 그게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그의 정신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704호 문이 저절로 쾅, 하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그를 영원히 가둬버리려는 듯이.
그리고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 잠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