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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카나 마법학원: 뒤틀린 뿌리 (Twisted Roots)

**17화: 망각된 서가의 속삭임**

“리안, 너 정말 괜찮아? 며칠째 밤마다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던데.”

아르카나 마법학원, 빛이 잘 드는 중앙 식당에서 세라가 포크로 버섯 스튜를 휘젓다 말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리안은 접시 위 쫀득한 마법 빵을 한입 베어 물다 말고 어색하게 웃었다.

“어? 아, 괜찮아! 그… 요즘 시험 기간이라 그런가, 마법 공식들이 꿈속까지 쫓아오는 바람에 잠이 좀 설쳐서 그래. 하하.”

“거짓말 마. 네 코 밑에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겠다.” 옆자리에 앉아 커다란 고서적을 펼친 채 식사를 하던 루카가 안경을 고쳐 쓰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는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접시 위 샐러드를 기계적으로 입에 넣고 있었다. “마법 공식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 너였다면 진작에 유급당했어, 리안.”

루카의 직설적인 말에 리안은 볼을 긁적였다. 세라는 한숨을 쉬며 리안의 식기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었다. “저번에 잠깐 이야기했잖아, 리안. 너 혹시… 기숙사 지하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그래?”

세라의 말에 리안의 어깨가 움찔했다. 루카마저 읽던 책에서 시선을 들어 리안을 빤히 쳐다봤다. 며칠 전, 리안은 잠결에 희미한 긁는 소리를 들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기숙사 가장 오래된 건물, 낡은 지하 저장고 쪽에서 나는 소리 같다고.

“그게… 갈수록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아서.” 리안은 목소리를 낮췄다. “처음엔 그냥 쥐 소리겠거니 했는데, 며칠 전에는 뭔가… 딱딱한 걸 긁는 듯한 소리였다가, 어제는 아주 희미하게, 마치 누가 벽 너머에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속삭임?” 세라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내용인데?”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어. 그냥… 아주 오래된, 잊혀진 언어 같은 느낌?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기분이었어.”

루카는 턱을 괸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고서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건물은 학원 건립 초기에 지어진 기숙사야. 지하 저장고는 거의 반세기 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을 걸. 관리 마법이 너무 낡아서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을 테고. 단순한 잡음이나 낡은 파이프 소리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리안은 어쩐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내가 들은 건 그런 단순한 게 아니었어. 뭔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단 말이야.”

“리안, 네 상상력이 과한 거야.” 세라가 걱정스러운 듯 리안의 손을 잡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건 무섭잖아. 그냥 잊어버려.”

하지만 리안은 쉬이 수긍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이후, 리안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불안감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는 것을, 리안은 직감하고 있었다.

***

그날 저녁, 리안은 결국 루카를 끌고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서가로 향했다.

“나 진짜 할 일 많거든? 교수님께서 내주신 고대 마법 문헌 해독 보고서도 아직 절반이나 남았고, 게다가 여기는 학생들이 출입 금지된 구역이잖아.”

루카는 투덜거리면서도 리안이 내민 작은 마법 열쇠에 흥미를 보이는 눈치였다. 그 열쇠는 학원 창립자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리안이 할머니의 유품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마법학원에는 이런 오래된 마법 도구들이 흔했지만, 이 열쇠는 유독 강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이 열쇠,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내가 며칠 전부터 이걸 지니고 다니는데, 기숙사 지하에 가까워질수록 열쇠가 미지근하게 데워지는 걸 느꼈단 말이야.”

“그냥 체온일 가능성도 있는데.” 루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열쇠를 살폈다. “게다가 ‘출입 금지’라는 표식은 괜히 붙은 게 아니야. 불필요한 위험은 피해야지, 리안.”

“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기숙사 지하가 아니잖아. 그냥 학교 중앙 서고의 폐쇄된 구역이야. 여기에 금지된 게 뭐가 있겠어?”

리안이 가리킨 곳은 거미줄이 자욱하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낡은 나무 문이었다. 문 위에는 옅게 빛나는 마법 봉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지만, 봉인의 힘은 오랜 세월 속에 거의 사라진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봐, 리안. 여기는… 공식적으로는 ‘망각된 서가’라고 불리는 곳이야.” 루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카나 학원 초창기에 사용되던 기록들을 보관했던 곳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쇄되었고, 접근이 금지됐어. 학원 도서관 사서도 이곳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어.”

“더 궁금해지잖아!” 리안은 눈을 반짝였다. “이런 곳에 금지된 책들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고대 마법서라든가, 잃어버린 주문집이라든가!”

루카는 이마를 짚었다. “그게 아니라… 이곳은 ‘잊혀진’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잊게 만든’ 곳이라는 소문이 있어. 마치… 학원의 어두운 비밀을 숨기기 위한 봉인처럼.”

리안은 루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열쇠를 문틈에 밀어 넣었다. 금속이 맞물리는 마찰음이 낡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열쇠 구멍에 완벽하게 들어맞은 열쇠가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푸른 마력이 열쇠에서 솟구쳐 문틈을 따라 스며들자, 낡은 봉인 문양이 천천히 활성화되더니 이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철컥.*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마치 심장을 찌르는 칼날 같았다. 리안과 루카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낡은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 너머는 어둠과 냉기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리안이 마법 지팡이를 들어 ‘루미노스’ 주문을 외우자, 지팡이 끝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와 어둠을 밝혔다.

그 빛이 닿은 곳에는 끝없이 이어진 낡은 서가가 펼쳐져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책들은 제목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빛바래 있었고, 몇몇 서가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규모는 이곳이 한때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를 짐작게 했다.

“이럴 수가…” 루카는 경외감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폐쇄된 서가가 아니야. 이건 하나의 거대한 마법 기록 보관소야. 학원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모든 자료들이 여기 잠들어 있을지도 몰라.”

리안은 서가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발걸음마다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때, 리안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가장 안쪽 깊숙한 곳, 다른 서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석조 구조물이 보였다. 거대한 원형 석판으로 막힌 듯한 형태였다. 그리고 그 석판 위에는 고대 아르카나어로 쓰인 듯한 문자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리안이 열쇠를 쥐고 있던 손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루카, 저기 좀 봐.”

리안의 손전등이 석판을 비추자, 루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이건… ‘문(門)’이야. 단순한 서가의 벽이 아니야.” 루카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공포가 섞여 있었다. “이 고대 문자는… 금기된 차원을 봉인하는 데 사용되는 주문들이야. 이건 절대 열려서는 안 되는 문이야!”

리안은 루카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린 듯 석판으로 다가갔다. 열쇠는 손안에서 뜨겁게 진동하며 석판을 향해 이끌리는 듯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 동족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석판의 중앙에는 열쇠가 완벽하게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작은 구멍이 있었다.

“리안, 멈춰! 제발!” 루카의 다급한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리안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손에 든 열쇠는 이제 거의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리안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열쇠를 그 구멍에 밀어 넣었다.

*끼이이이이익—!*

천지를 뒤흔드는 끔찍한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석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와 돌가루가 폭풍처럼 흩날렸다. 굉음 속에서, 문틈 사이로 칠흑 같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생명력마저 빨아들이는 듯한 깊고 검은 허무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리안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숨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고, 깊고,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끔찍한 생명체의 숨소리였다. 동시에 기숙사 지하에서 들었던 그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 순간, 석판 너머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스르륵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봉인된 악몽이 깨어나는 순간 같았다.
리안은 얼어붙은 채, 그 붉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문은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