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는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러오는 지하 보관실 문을 열었다. 낡은 금속 경첩이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고, 그 소리는 먼지 쌓인 복도를 따라 길게 울렸다. 으스스한 정적에 익숙해진 그는 손에 든 스마트폰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앙 도서관 뒤편의 허물어져가는 별관 지하. 이곳은 보통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금지구역과도 같았다. 도서관 측은 그에게 폐기 예정 서적들을 분류해 달라고 했지만, 사실 이곳은 그냥 방치된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에어컨도 안 되잖아.”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현우는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이 알바는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차라리 편의점 알바가 백 배 나았다. 하지만 고작 시급 몇 푼 더 받으려 이걸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책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삐뚤빼뚤한 나무 선반들 위로, 언제부터 쌓였는지 알 수 없는 먼지가 두꺼운 카펫처럼 덮여 있었다. 오래된 책들은 제각기 뒤틀리고 색이 바래, 흡사 시체처럼 보였다.
먼지를 털어내며 낡은 책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어떤 건 표지가 너덜너덜했고, 어떤 건 속지가 삭아 손대기만 해도 바스라졌다. 대충 훑어보고 폐기 더미로 던져 넣는 일을 반복했다. 고대 라틴어 사전, 19세기 유럽 연극 대본집, 일제강점기 발행된 알 수 없는 철학서적들. 전부 그에게는 무의미한 종이 뭉치에 불과했다.
세 번째 책장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선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삐져나와 있는 무언가에 손끝이 스쳤다.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 보통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질감이었다. 뭐지? 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 당겼다.
“이게 뭐야…?”
그것은 책이 아니었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의 검은 돌판이었다.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빛을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마치 안개처럼 희뿌연 무늬가 아른거렸다. 수억 년 동안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암석처럼 알 수 없는 깊이를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돌판 전면에 빼곡하게 새겨진 문양들이었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처음 보는 형태의 상형문자들이었다. 너무나 낯설고 이질적이어서, 언뜻 보면 아이가 장난으로 긁어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현우는 돌판을 들고 스마트폰 플래시를 비췄다. 빛이 닿는 순간, 돌판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착각이라고 애써 치부하려 했지만, 그의 심장은 이미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이 돌판에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돌이었지만, 어딘가 따뜻한 기운이 새어 나오는 듯도 했다. 모순된 감각에 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귓가에 작고 섬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열어라…*
“뭐야?”
현우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낡은 책들과 먼지, 그리고 그 자신뿐이었다. 습한 공기 속에서 그의 숨소리만이 거칠게 울렸다. 환청인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는 건가?
그는 다시 돌판을 내려다봤다. 순간, 돌판의 검은 표면이 마치 잉크를 풀어놓은 것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뿜어내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양들이… 분명 방금 전까지 희미하게 빛났던 그것들이, 이제는 선명하게, 마치 돌판 속에 갇힌 불꽃처럼 작게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손에 든 돌판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가락 끝으로 돌판의 문양 하나를 무심코 쓸어내렸다.
그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현우를 덮쳤다.
— *…찾았구나…*
이번에는 좀 더 또렷했다. 귓가에 바로 대고 말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낮은 읊조림이 아니었다.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마치 수백 년간 억압되어 있던 존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불쾌한 공명이 그의 뇌를 뒤흔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현우는 놀라 돌판을 놓치려 했지만, 그의 손은 돌판에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돌판은 그의 손바닥에서 점점 더 강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손을 타고 그의 팔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웠던 어둠은 삽시간에 피를 끓게 하는 뜨거움으로 변했다.
주변의 낡은 책장들이 요동쳤다. 먼지 섞인 책들이 선반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책장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뒤틀리고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마트폰 플래시가 깜빡이더니 완전히 꺼져버렸다. 지하 보관실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오직 현우의 손에 들린 돌판만이 섬뜩한 붉은빛을 뿜어냈다. 검은 돌판 위를 수놓은 문양들은 이제 눈부시게 빛나며,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악…!”
현우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팔 안쪽으로 스며든 어둠이 그의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마치 폭발할 것 같았다. 눈앞이 흐릿해지며 온 세상이 붉은색과 검은색의 혼돈으로 물들었다. 몸속에서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아니, 뭔가가 그의 몸을 통해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낡은 책들이 쏟아져 내린 잔해 사이로 길고 검은 그림자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단순히 선반에서 떨어진 책이나 그림자가 아니었다. 형체가 없으면서도 명확한 존재감을 가진, 마치 허공에 그려진 실루엣 같았다. 그림자들이 현우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왔다.
— *…환영한다… 우리의 새로운 그릇이여…*
수천, 수만 개의 목소리가 뒤섞인 합창이 그의 뇌를 찢어발기는 듯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돌판을 던져버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돌판은 그의 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속으로, 돌판의 붉은빛이 맹렬하게 빨려 들어갔다.
쿵!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현우의 몸은 거대한 힘에 휩쓸린 듯 뒤로 나자빠졌다. 낡은 책더미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그의 눈앞에서, 돌판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빛이 지하 보관실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 빛은 사방의 그림자들과 뒤섞여, 기이하고 몽환적인 형상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은 벽과 천장을 타고 흐르며 고대의 문양들을 그려냈고, 그 문양들은 마치 피로 쓰인 주문처럼 붉은 빛을 내뿜었다. 현우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은 이제 전신을 마비시키는 공포로 변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기묘한 형상을 보았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이 그림자와 빛의 경계에서 아른거렸다. 그들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며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손에 든 돌판은 이제 그의 손과 살짝 융합된 듯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녹아내리는 듯한 끔찍한 감각.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고대의 지식과 힘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었다. 감각이었고, 본능이었고, 세상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들이었다.
몸 안에서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뜨거웠고, 강력했으며,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낯설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팔에서 검은 그림자 촉수들이 뻗어 나왔다. 그것들은 낡은 책장들을 휘감고, 벽을 할퀴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으아아악!”
자신에게서 이런 힘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에 현우는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지하 보관실의 붉은 어둠 속으로 먹혀들어갔다. 그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눈앞에는 온통 핏빛 어둠과, 그 속에서 춤추는 그림자들, 그리고 속삭이는 수많은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잊혔던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깨어남은, 세계를 영원히 바꿀 끔찍한 시작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