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횡단보도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랐다. 칙칙한 회색빛 먼지가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다.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길바닥은 거대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 세트장 한가운데 떨어진 기분이었다.

“젠장… 여기가 어디야?”

목이 바짝 마른 탓에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분명히 나는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에 치였다.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끔찍한 충격과 함께 시야가 암전되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른 시작인가? 아니면 지옥의 다른 이름인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쑤셨다. 푹신한 침대나 흙바닥이 아니라, 날카로운 파편들이 섞인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자 시야가 한 바퀴 빙 돌았다. 비릿한 쇠 냄새와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쓰러져 있던 곳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였다. 주변에는 나와 같은 생명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언제나처럼 탁한 회색빛이었다. 해는… 어디에 있는 거지?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을 들어 올려 내 몸을 확인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손이었다. 손톱 밑에는 거뭇한 흙먼지가 박혀 있었고, 손등에는 긁힌 상처가 여럿 보였다. 옷은 너덜너덜한 천 조각으로 변해 있었고, 신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맨발이었다.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믿기 어려웠다. 꿈이길 바랐다. 하지만 뺨을 꼬집어도 아플 뿐,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배고파…”

며칠을 굶은 듯한 끔찍한 공복감이 위장을 쥐어뜯었다. 목마름은 또 어떻고. 혓바닥은 사포처럼 거칠었고, 침조차 삼키기 힘들었다.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모든 혼란을 덮어버렸다.

일단, 물. 그리고 먹을 것.

내 비루한 몸뚱아리에 잔뜩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주머니 하나뿐이었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흙먼지가 잔뜩 묻은 돌멩이 몇 개와… 부러진 칼자루 하나가 전부였다. 실망스러웠다. 아무것도 없다. 전생의 기억은 또렷한데, 왜 여기에 오게 된 건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세계 전생, 그런 소설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벌어진 건가? 그렇다면 최소한 초보자용 세트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답답하고 건조했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분명했다. 어쩌면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될 유일한 곳일지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지만,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균열이 생긴 콘크리트 바닥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발을 옮겼다. 발바닥이 따가웠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크으읍…!”

갑자기 발밑이 푹 꺼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콘크리트 파편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온몸을 덮쳐오는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꽤 깊은 곳으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주변은 암흑으로 변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보니, 작은 지하 공간 같았다. 위에서 떨어진 파편들이 내 길을 막고 있었다. 갇혔다.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눈을 떴고, 희망을 가질 틈도 없이 또다시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게 내 운명인가? 아니, 김현우, 포기하지 마.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죽을 수는 없어.

손전등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희미한 빛이라도 찾아보려 눈을 가늘게 떴다. 다행히 저 멀리 작은 틈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살 길은 저쪽인가.

몸을 이끌고 빛을 향해 기어갔다. 주변을 더듬어보니 벽은 차갑고 축축했다.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희미하게 풍겼다. 이 어둠 속에서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몇 미터를 기어갔을까. 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곳에는 간신히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 안쪽은 더 어두웠지만, 저 끝에 작은 공간이 있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통로로 들어섰다. 퀴퀴한 냄새가 더욱 강해졌다. 발밑에는 뭔가가 밟혔다.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섬뜩한 감촉이 느껴졌다. 뼈인가?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통로를 빠져나가자 작은 동굴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은 아까 밖에서 봤던 잿빛 세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벽면은 매끄럽지 않았고, 축축한 이끼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 놀랍게도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내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물!

머리부터 들이박을 뻔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저앉았다. 혹시 독이 있는 건 아닐까? 주변을 살펴보니,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잎은 검붉은 색을 띠었고, 줄기는 굵고 튼튼해 보였다. 독성 식물일 수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망설이다가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셨다. 차갑고, 약간 비릿한 맛이 났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달콤한 물은 평생 마셔본 적이 없었다. 연거푸 몇 모금을 들이켰다. 온몸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살 것 같았다.

물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이제 식량이었다. 주변에 먹을 만한 것이 있을까? 아까 보았던 검붉은 식물을 유심히 살폈다. 열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잎이나 줄기를 먹을 수 있을까? 왠지 꺼림칙했다.

그때, 등 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스스슥…

심장이 발바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 이 어둠 속에, 나 말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정체 모를 공포가 나를 덮쳤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나는 겨우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이다. 생존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