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닫힌 문 안의 그림자
밤이었다. 서울의 낡은 동네를 감싸던 가을비는 끈질기게 창문을 두드렸고, 그 소리는 묘한 불길함을 더했다. 강형사는 빗물이 흘러내리는 유리창 너머로 낡은 저택을 올려다봤다. 붉은 벽돌은 빗물에 젖어 검붉게 번들거렸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흡사 뼈마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시꺼먼 철제 대문 앞에는 이미 순찰차 두 대가 불을 깜빡이고 있었다.
“강형사님, 여기입니다!”
우산을 든 채 뛰어온 젊은 박 순경이 길을 안내했다. 박 순경의 얼굴에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오래된 가구와 벽에 걸린 낡은 그림들은 어둠 속에서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듯했다.
“피해자는 고용준 씨. 이 집 주인입니다. 2층 서재에서 발견됐어요.”
현장 통제를 맡은 김 형사가 강형사를 맞았다. 그의 목소리에도 짙은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 삐걱거렸고, 발걸음마다 불안한 울림을 남겼다. 서재 문은 이미 열려 있었지만, 주변의 경찰들은 모두 얼어붙은 듯 굳은 표정이었다. 강형사는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이 사건이 얼마나 난감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서재는 넓고 고풍스러웠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먼지 쌓인 고서들이 빼곡했고, 앤티크한 가구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육중한 책상 위에는 켜다 만 양초와 낡은 지도,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한 양피지 두루마리들이 널려 있었다. 그 위에, 고용준 씨가 엎드려 있었다. 등에는 시커먼 얼룩이 섬뜩하게 번져 있었다.
“사인은 과다출혈. 등 부위에 단검으로 보이는 흉기에 찔렸습니다. 단발성 자상이에요.”
감식반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흉기는요?”
강형사의 질문에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방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도 없고요. 창문은 모두 안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전문가도 아니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수준으로 단단하게 잠겨 있었어요. 완벽한 밀실입니다.”
완벽한 밀실. 그 한마디가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칼에 찔린 피해자, 감쪽같이 사라진 흉기, 그리고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었던 닫힌 공간.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은 언제나 수사관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강형사는 고용준 씨의 시신을 훑어봤다. 핏기 없는 얼굴에는 공포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책상 위, 시신 옆에 놓인 양초는 특이했다. 흑단처럼 새까만 색의 양초는 거의 다 타들어가 심지만 남은 상태였고, 그 주변으로는 흐물흐물 녹아내린 촛농이 기이한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뼈와 같은.
“젠장, 서재혁이 아니면 이건 못 풀어.”
김 형사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강형사는 잠시 잊고 있던 번거로운 존재를 떠올렸다. 괴짜 천재 탐정, 서재혁. 그라면 혹시 이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형사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에야 나른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강 형사님. 혹시 또 제가 잠 못 들게 할 만한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찾으신 건가요?”
“장난감이 아니라, 밀실 살인입니다. 고용준 씨 사건인데… 당신이라면 뭔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서재혁의 목소리가 한층 차분해져 돌아왔다.
“고용준이라… 흥미롭군요.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손님’들이 있었죠. 곧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미리 경고하는데, 이번엔 좀 역겨울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에 강형사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서재혁이 ‘역겹다’고 말할 정도면, 대체 이 방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약 한 시간 후, 서재혁이 나타났다. 해지고 낡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진 얼굴에는 귀찮음과 미묘한 호기심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마치 공간 그 자체와 대화하듯이 삐걱이는 서재 문턱을 넘었다.
서재혁은 일반적인 수사관들처럼 시신에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방의 벽면을 따라 걸었다. 손가락으로 벽지를 스치고, 창문 걸쇠를 만져보고, 바닥의 마루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는 듯했지만, 그 시선은 방 안의 모든 것에 닿아 있는 듯했다.
“흠…”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는 창문 곁에 멈춰 서서, 마치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어내듯 손을 휘저었다.
“이 방은… 꽤나 격렬한 기운을 품고 있군요.”
“격렬한 기운이라뇨? 무슨 말씀이신지…” 김 형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서재혁은 대답 없이 바닥에 웅크려 앉아 시신을 살폈다. 그는 시신에 직접 손을 대기보다는, 주변의 공기를 탐색하는 듯했다. 특히, 고용준 씨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는 미세한 검은 가루와 그의 핏기 없는 입술에 묻어 있는 정체 모를 끈적한 이물질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책상 위, 검은 양초를 집어 들었다.
“이 양초… 꽤나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졌군요. 그리고 이 촛농의 모양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긴 어렵겠는데요.”
그는 양초 주변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그 위에는 피로 쓴 듯한 붉은 글씨와 복잡한 기호들이 가득했다. 내용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섬뜩한 불길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서재혁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봤다. 그의 시선은 문, 창문, 그리고 시신의 순서로 훑어내려갔다.
“밀실? 하하. 모두가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심지어 범인조차도.”
그는 시신에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고용준 씨의 텅 빈 눈동자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무언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공포가 아니라, 혼란과 뒤섞인 경이로움이 묻어나는군요. 마치 자신이 알던 세상의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듯한 표정입니다.”
강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서재혁은 다시 방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간절히 밀실이 되기를 바랐던 곳이지요. 문제는, 그 ‘누군가’가 꼭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 방을 아주 고약한 냄새로 가득 채워놨군요.”
그는 코를 찡그리며 덧붙였다.
“이 냄새… 굳어버린 피 냄새, 낡은 종이 냄새,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는 흙냄새 사이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강렬한 역겨운 향이 납니다. 마치 오랜 시간 갇혀 있던 원혼이 갑자기 뛰쳐나와 부패한 육신을 뒤집어쓰고 방황하는 듯한 냄새. 누군가 ‘문’을 열었어. 그리고 그 문을 통해 이 방으로 들어온 건,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었을 겁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서재혁의 말은 언제나 비논리적이었지만, 섬뜩하게 현실을 관통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방의 모퉁이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낡은 벽난로가 있었고, 벽난로 위에는 작은 동양풍의 도자기가 놓여 있었다. 그 도자기는 다른 모든 것들과 달리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마치 누군가 방금이라도 그곳을 정성껏 닦아놓은 것처럼. 그리고 도자기 안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아니, 서재혁만이 그 떨림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젠장, 정말 역겹군요.”
서재혁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도자기 안에 갇힌 어떤 존재를 똑똑히 응시하는 듯했다.
“강 형사님. 범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은 서재 깊은 곳,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에 가라앉았다. 그 그림자는 마치 서재혁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