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부름
거대한 우주선 ‘레비아탄 호’의 함교는 칠흑 같은 심우주 한가운데서도 고요했다. 행성계의 지도를 벗어나 미지의 영역을 탐사한 지 3년째, 이제는 함선의 숨통 같은 엔진 소리와 공기정화 장치의 낮은 웅얼거림마저 배경 소음처럼 흐릿하게 들릴 뿐이었다.
항해사 하준은 홀로그램 스크린에 펼쳐진 성도(星圖)를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거대한 나선은하의 가장자리, 인간의 탐사 기록이 닿지 않은 아득한 심연을 훑었다. 이곳에 파견된 이래 그의 임무는 늘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서 먼지 한 톨 같은 새로운 좌표를 찾아내고, 함선을 안전하게 이끄는 것. 지루하리만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자 투명한 공기 방울처럼 연기가 흩어졌다. 따뜻한 음료 한 모금을 마시려던 찰나, 함교 중앙의 메인 콘솔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띠이이이잉! 띠이이이잉!**
갑작스러운 소음에 하준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눈은 본능적으로 메인 스크린으로 향했다. 광활한 우주의 배경 위, 레비아탄 호의 함선 모델 옆으로 붉은색 경고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미확인 에너지 신호 감지. 분석 중…]
하준의 손이 빠르게 제어판 위를 춤췄다. “전 함선, 비상! 항해사 하준입니다. 미확인 에너지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위치는 현재 좌표에서 델타 섹터 01-332 방향, 거리 1.2 광분!”
경고음이 멈추자마자 함선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함교의 조명이 주황색 비상등으로 바뀌고, 윙윙거리는 낮은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함교 문이 열리며 함장 김태훈이 성큼성큼 들어섰다. 회색빛 머리카락과 깊어진 눈가의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운 매를 닮아 있었다.
“하준, 상황 보고해.”
“네, 함장님. 센서에 잡힌 신호는 이전에 기록된 적 없는 형태입니다. 불규칙적이지만 매우 강력하며, 주파수 대역도 상식 밖입니다. 자연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김태훈 함장은 스크린을 노려봤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은 심상치 않은 사태임을 암시했다.
“아리 박사 호출해. 당장.”
***
몇 분 후, 과학 분석실 책임자 서아리 박사가 급히 함교로 들어섰다. 그녀는 잠에서 막 깬 듯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빛났다.
“이건… 놀랍네요.” 아리 박사의 목소리에는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에너지 스펙트럼 분석 결과, 알려진 어떤 원소나 복합체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인공적인 패턴에 가까워요. 그것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인공물이라는 건가?” 김태훈 함장이 물었다.
“네, 함장님. 그것도 아주 오래된, 그리고 지극히 거대한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리 박사가 손가락으로 스크린의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신호의 감쇠 패턴으로 미루어볼 때, 이 구조물은 현재까지 우리가 발견한 가장 큰 소행성보다도 훨씬 클 겁니다. 그리고… 감지된 에너지 파동이 생명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함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생명체. 그것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고 거대한 인공물에서 발산되는 생명 신호라니.
“박 과장, 보안팀 호출해.” 김태훈 함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낮게 깔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안팀장 박준형이 중무장한 대원들과 함께 함교로 진입했다. 그의 굳건한 표정은 늘 그렇듯 어떠한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함장님, 명령을.”
“함선 속도 1/4로 줄이고, 해당 좌표로 이동한다. 모든 무장은 대기 상태로 전환하고, 방어막은 최대로 올려. 박 팀장, 전 대원들에게 비상 대기 명령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하준은 함장님의 명령을 빠르게 콘솔에 입력했다. 거대한 레비아탄 호의 엔진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묵직한 함선이 천천히 방향을 틀어 미지의 신호가 오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함교 안은 침묵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붉은 비상등만이 스크린에 비치는 점멸하는 붉은 신호와 함께 불길하게 깜빡였다.
“거리 0.1 광분!” 하준이 외쳤다.
아리 박사가 숨을 들이켰다. “함장님, 신호 강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가 보입니다!”
메인 스크린의 확대 영역에 어둠을 뚫고 희미한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자 같았지만, 레비아탄 호가 다가갈수록 그 형태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별이 아니었다. 소행성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거대한 검은색 표면이었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직사각형 형태의 구조물은 마치 완벽하게 제련된 거울처럼 주변의 별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어떠한 균열이나 이음매도 없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우주에 떠 있었다.
“이게… 뭐야….” 박준형 팀장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구조물의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마치 심해의 거대 생물이 눈을 뜨는 것처럼, 빛은 서서히 퍼져나가며 거대한 구조물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우주선도, 단순한 인공물도 아니었다.
정교하게 계산된 기하학적 문양으로 뒤덮인 거대한 육면체였다. 육면체의 각 모서리에는 푸른빛을 내뿜는 크리스탈이 박혀 있었고, 그 빛은 미약하지만 살아있는 듯한 맥동을 하고 있었다. 표면에는 고대 문명에서나 볼 법한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맙소사… 이건….” 아리 박사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아니야… 이건… ‘문’이야. 어떤 차원으로 통하는… 문….”
하준의 손이 본능적으로 마우스를 꽉 쥐었다. 심장이 귓가에 울릴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스크린 너머의 미지의 존재가,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그들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레비아탄 호는 어느새 그 거대한 육면체의 지척에 다가서 있었다.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함교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빛은 차갑고도 신비로웠으며,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끌림을 가지고 있었다.
“함장님…” 하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저 문… 열려 있습니다.”
모든 승무원의 시선이 일제히 육면체의 한쪽 면에 집중됐다. 거대한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그 안쪽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찬 거대한 통로가 드러났다. 그 통로는 마치 우주 그 자체의 심연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김태훈 함장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함장님, 저 안에 뭐가 있을지 모릅니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박준형 팀장이 경고했다.
하지만 아리 박사의 눈은 이미 홀린 듯 그 문을 향하고 있었다. “이건… 인류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유물입니다! 저 안에는… 우주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을지도 몰라요!”
하준은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SF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미지의 문을 여는 자, 우주의 비밀을 손에 넣으리라. 혹은… 우주의 종말을 맞이하리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콘솔 위의 ‘진입’ 버튼을 향해 갔다.
그때, 거대한 문 안쪽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빛은 레비아탄 호의 함교를 집어삼켰고, 하준의 시야는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함선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크아악!”
모두의 비명 소리와 함께, 하준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건 그저 게임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