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황량한 땅은 언제나 그랬듯 붉은 노을을 삼키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고철과 콘크리트의 바다 위로 거대한 기체가 육중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한숨처럼 피어올랐다. 기체, ‘방랑자’의 조종석 안에서 강수는 마른 입술을 씹었다. 닷새째다. 닷새 내내 이 망할 놈의 폐허를 헤치며 목적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정확히는, 목적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세상에서 다음 번 숨을 쉴 곳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젠장, 연료가 또 바닥이잖아.”

계기판의 바늘이 위태롭게 ‘E’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량도, 물도, 이제는 기체를 움직일 동력마저 희박했다. 강수는 고개를 젖혀 조종석의 낡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금이 간 강화유리 너머로 붉은 노을이 한 조각 흘러들어왔다. 마치 세기말의 피처럼 선명하고 잔인한 색깔이었다.

그는 낡은 조종간을 고쳐 쥐었다. 방랑자는 이름처럼 떠도는 기체였다. 거대한 팔다리는 제각기 다른 기종의 부품을 이어 붙인 것이었고, 몸통은 폐기된 수송선의 잔해를 용접해서 만들었다. 덩치는 산만했지만, 그만큼 험한 세상을 버텨낼 힘이 있었다. 강수와 방랑자는 지난 몇 년간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

“기온 하강 시작. 외부 활동 제한 구역 진입.”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밤이 오고 있었다. 폐허의 밤은 죽음의 그림자와 같았다. 낮보다 변이체들이 더 활개를 쳤고, 얼어붙을 듯한 추위는 강수를 언제든 질식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강수는 기체의 시야 센서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망원경처럼 확장된 시야에 저 멀리, 한때 도시의 심장이었을 고층 빌딩의 잔해가 포착되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 사이로 아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구조물이 하나 있었다. 오래된 발전소의 냉각탑이었다.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냉각탑 근처는 언제나 위험했다. 에너지의 흔적을 쫓아 변이체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귀한 물건들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강수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이 멈추면 죽음이었다.

방랑자의 육중한 발걸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고요한 폐허에 울려 퍼졌다. 발밑에서는 부서진 아스팔트와 깨진 유리 조각들이 신음했다. 강수는 한때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을 무심하게 짓밟으며 나아갔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오직 ‘생존’이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냉각탑이 조금 더 가까워지자, 강수는 방랑자를 멈춰 세웠다. 센서가 주변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이상 신호 없음.”

잠시 안심하는 사이, 기계음이 다시 울렸다.

“미약한 생체 반응 감지. 수십 개체, 접근 중.”

강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너무 많았다. 그는 즉시 방랑자의 왼팔에 달린 대구경 개틀링 포를 조작했다. 텅 빈 장전고에 마지막 탄창을 끼워 넣었다. 오른팔의 대형 강철 칼날도 준비를 마쳤다.

“젠장, 하필 지금이냐….”

웅장한 냉각탑의 잔해 사이에서 그림자 같은 형체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 폐허에 나타나는 변이체들과는 달랐다. 놈들은 마치 거대한 거미처럼 수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등에는 단단한 껍질이 붙어 있었다. 눈은 빛을 잃은 채 섬뜩하게 빛났다.

‘철갑거미.’

가장 악독하고, 가장 잡기 힘든 변이체 중 하나였다. 이 놈들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며, 약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그들의 독액은 기체의 장갑조차 부식시킬 수 있었다.

“빌어먹을…!”

강수는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방랑자가 거대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포효했다. 그는 먼저 개틀링 포를 발사했다. 타타타탕! 굉음과 함께 붉은 불꽃이 폐허를 갈랐다. 선두에 서 있던 철갑거미 몇 마리가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놈들은 물밀듯이 달려들었다.

“돌파한다!”

강수는 방랑자를 움직여 철갑거미 무리의 중심을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강철 칼날이 회전하며 놈들을 베어 넘겼다. 질퍽한 소리와 함께 변이체의 피가 기체의 다리에 튀었다. 그러나 칼날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서는 놈들의 다리가 방랑자의 장갑을 긁어댔다. 끼익, 끼이익! 귀를 찢는 마찰음이 조종석 안까지 파고들었다.

“왼쪽! 왼쪽!”

강수는 센서에 포착된 놈들의 움직임을 따라 방랑자의 몸을 틀었다. 뒤에서 달려들던 철갑거미 한 마리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기체의 어깨에 부딪혔다. 척추가 부러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나고, 놈은 그대로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놈들이 냉각탑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끝도 없는 숫자였다. 강수는 몸을 회전시키며 강철 칼날로 주위의 변이체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이대로는 안 돼…!”

연료가 아슬아슬했다. 이 놈들과 정면으로 싸워서는 답이 없었다. 강수는 냉각탑 내부로 진입하기로 결심했다. 복잡한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놈들의 다수가 한꺼번에 덤비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랑자가 거대한 몸을 숙여 냉각탑의 부서진 입구를 향해 달렸다. 철갑거미들이 미친 듯이 뒤를 쫓았다. 놈들의 독액이 기체의 등에 튀어 장갑을 지글거리게 태웠다.

“크윽…!”

간신히 냉각탑 안으로 진입한 순간, 강수는 즉시 입구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았다. 놈들이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그는 방랑자의 오른팔을 뻗어 입구 주변의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괴력으로 그것을 끌어내렸다.

쾅! 굉음과 함께 냉각탑의 입구가 완전히 봉쇄되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밖에서는 철갑거미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강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잠시 동안이나마.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기체는 여기저기 긁히고 찌그러졌으며, 독액에 부식된 부분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료는 이제 깜빡이는 경고등과 함께 거의 바닥에 도달해 있었다.

강수는 조용히 방랑자의 엔진을 껐다. 거대한 기체가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조종석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밖에서 들려오는 철갑거미들의 끈질긴 울음소리만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기시켜 주었다.

“또 한 번 버텼군….”

강수는 기체의 통신 장비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그가 아는 한, 이 폐허에는 그와 방랑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립된 생존. 그것이 그의 유일한 현실이었다.

그는 어둠이 짙게 깔린 냉각탑 내부를 응시했다. 거대한 구조물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희망이 될 연료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죽음일 수도 있었다.

강수는 조종석에서 몸을 웅크렸다. 차가운 금속이 그의 뺨에 닿았다. 바깥의 소음이 점차 줄어들고, 침묵이 깊어졌다. 내일은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끝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강수는 눈을 감았다. 몸은 지쳤지만, 심장은 끈질기게 뛰고 있었다.

이 끝없는 폐허 속에서, 그는 내일도 살아남아야만 했다.
내일은, 과연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