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오의 칼날
하늘은 언제나 멍든 것처럼 푸르스름했다. 구름 때문이 아니라, 절망과 잊힌 피 냄새가 뒤섞인 독한 기운이 지상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척박한 땅. 한때는 풍요로운 영맥이 흐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유청이 이끄는 흑룡파에 감히 맞섰던 수많은 수련자들의 무덤이 되어 버린 폐허였다.
진무는 척박한 땅의 가장 깊은 곳, 영기마저 씨가 마른 폐허 속에서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았다. 햇살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속에서 십 년을 보냈다. 십 년 전, 그는 사형 유청과 함께 천하를 주름잡을 운명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운명은 사형의 칼날 아래 산산조각 났다. 심장을 꿰뚫고, 영맥을 파괴하며, 그가 애써 수련하던 칠성비검(七星秘劍)의 핵심 비법을 훔쳐 달아난 유청의 얼굴은 아직도 꿈속에서 선명했다. 그의 등에는 끔찍한 상흔이 남아있었다.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칠성비검을 빼앗기며 그의 영혼마저 찢긴 듯한 흔적이었다.
한때는 불멸을 향해 나아가던 천재적인 수련자였던 그. 지금은 하나의 불타는 목적, 오직 복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망령과 같았다. 산산이 부서진 그의 수련 경지는 잿더미 속에서 힘들게 재건되었다. 순수한 영기가 아닌, 어둡고 더욱 강력한 무언가로. 바로 그의 끝없는 증오와 절망의 본질로. 그 누구도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금지된 길이었다.
그는 조용히 일어섰다. 포식자처럼 유려하고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다. 한때 명문 문파의 제복이었던 그의 낡은 도포는 이제 그의 야윈 몸에 두 번째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흙과 마른 피로 얼룩진 도포는 그의 현재를 대변했다. 그는 칼을 쥐고 있었다. 명장들이 만들어낸 보검이 아니었다. 저주받은 땅 깊은 곳에서 발견한 운석 조각을 직접 깎아 만든 거칠고 삐죽삐죽한 검이었다. 그 검은 그의 증오를 닮은 낮고 사악한 기운으로 윙윙거렸다.
오늘, 그 척박한 땅의 경계에 이질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옷차림과 오만한 태도는 그들이 누구의 소속인지 명확히 알려주었다. 흑룡파의 하수인들. 그들은 이 폐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유청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진무의 옛 흔적을 지우기 위한 마지막 조각들을.
진무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얼굴에 흉터가 길게 나 있었고, 그의 허리에는 유청의 옆에 붙어 다니던 자만이 찰 수 있는 흑룡패가 걸려 있었다. 박무진. 그놈은 십 년 전, 유청이 진무를 배신할 때 옆에서 비웃던 자였다.
“이런 황무지에서 뭘 찾겠다고 난리야? 그냥 태워버리면 그만이지.” 박무진이 투덜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권태가 가득했다.
“사형께서는 그자의 잔재라도 남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 척박한 땅은 진무가 사라진 곳이다. 사형의 마음속에 그 망령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찾아야 한다.” 부하 중 하나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유청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엿보였다.
진무의 입술 한쪽이 싸늘하게 비틀렸다. ‘망령? 그래, 나는 망령이다. 너희를 지옥으로 끌고 갈 망령.’
박무진이 주위를 둘러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잔재를 찾느니 차라리 술이나 마시는 게 낫겠다. 어차피 진무는 이미 죽어 썩어 문드러졌을 테니.”
그 말이 진무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피를 끓게 만들었다. 그의 몸 안에서 억눌렸던 어둠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기다림은 끝났다.
진무는 바위 뒤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흙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았다.
박무진 일행은 뒤늦게 인기척을 느끼고 진무를 돌아봤다.
“누, 누구냐!” 한 부하가 검을 뽑으려다 멈칫했다. 진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누구냐고?” 진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나온 목소리는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너희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림자다.”
박무진은 진무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 애썼다.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그의 얼굴은 흉터로 뒤덮여 있었고 이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그 절망과 증오가 뒤섞인 눈빛만은 박무진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너… 너는 설마…” 박무진의 얼굴에서 오만함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스쳤다. 십 년 전의 그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그 눈빛은 오직 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진무… 살아있었나?!”
진무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얼음장 같았다. “살아있는 것이 지옥이었다. 그리고 너희는 그 지옥을 만든 자들 중 하나다.”
박무진은 당황했지만, 이내 허세와 오만함을 되찾으려 애썼다. “흥! 시체나 다름없는 놈이 감히! 어서 저놈을 처리해라!”
그의 명령에 흑룡파 무사들이 진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검 끝에서 푸른 영기가 번뜩였다.
진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운석검이 낮게 울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진무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영기가 아니었다. 생명을 앗아가는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었다.
“크아악!”
가장 먼저 달려든 두 명의 무사가 진무에게 닿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의 몸은 마치 시간이 역행한 듯 순식간에 시들어 버렸다. 피부는 갈라지고, 살점은 말라붙어 뼈만 남은 미라처럼 변했다. 검은 기운이 그들의 생명력을 완전히 빨아들인 것이다.
박무진의 눈이 공포로 커졌다. “이… 이건 무슨 마도(魔道)인가!”
진무는 대답 대신 앞으로 나섰다. 그의 걸음 한 걸음마다 땅이 미약하게 떨렸다. 운석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은 실체가 없는 듯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한 무사가 진무의 옆구리를 노려 검을 휘둘렀다. 진무는 몸을 살짝 비틀어 공격을 피했고, 동시에 운석검을 휘둘러 그 무사의 팔을 잘라냈다. 하지만 단순한 절단이 아니었다. 팔이 잘려 나간 자리에서 피 대신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무사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그 자리에서 먼지처럼 스러졌다.
진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었다. 십 년 전, 칠성비검을 연마하던 그의 움직임은 우아하고 정교했지만, 지금의 그는 야수 같았다. 오직 파괴만을 위한 움직임. 그는 적의 영맥을 노리지 않았다. 그들의 생명 그 자체를 노렸다.
“이런 괴물!”
박무진이 외치며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거대한 철퇴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진무에게 달려들며 철퇴를 휘둘렀다. 쾅! 철퇴가 바위를 부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진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박무진의 뒤에 있었다.
“유청은… 너와 같은 자들을 쓰레기처럼 부릴 자격이 없었다.”
진무의 목소리가 박무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박무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운석검이 그의 심장을 향해 꽂혔다. 쨍그랑! 검이 박무진의 가슴에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는 호신 영보를 착용하고 있었다. 흑룡파의 고위 간부에게 주어지는 단단한 방어 영보였다.
“하하하! 겨우 그따위 검으로 내 영보를 뚫을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박무진이 비웃었다. 공포 속에서도 한 줄기 승리감에 젖은 듯했다.
진무의 입가에 다시 그 얼음장 같은 미소가 걸렸다. “내가 뚫는 것은… 네놈의 영보가 아니다.”
그 순간, 운석검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박무진의 호신 영보를 뚫고 들어가는 대신,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박무진은 자신의 영맥이 서서히 침식당하는 것을 느꼈다. 육체가 찢어지는 고통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듯한 극한의 고통이었다.
“크아아아악! 이게… 이게 대체 무슨… 마, 마물인가!”
박무진의 눈은 흰자만 남은 채 뒤집혔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옷이 썩어 문드러지듯, 그의 살점과 근육이 검은 기운에 녹아내렸다. 그의 영혼마저 검은 기운에 휩싸여 뽑혀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절규하며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진무를 올려다봤다.
“유청… 그… 그놈은… 널… 죽여서… 비… 비법을…”
박무진은 간신히 유청의 이름을 내뱉으려 했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은 완전히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그의 흑룡패만이 땅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진무는 떨어져 있는 흑룡패를 내려다봤다. 증오와 공허함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비법? 그래, 그놈은 내가 피땀 흘려 익힌 비법을 탐했다. 내 목숨과 맞바꾼 비법을.” 진무는 중얼거렸다. “네놈들은 그저 유청의 개였을 뿐. 하지만 그 대가는 너희의 영혼이 치르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은 그의 심장과 같았다.
“유청… 너는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내 영혼, 내 미래, 내 모든 희망을. 하지만 이제… 나는 너에게서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내가 겪었던 고통보다 더 처절하게 빼앗을 것이다.”
그의 손에 들린 운석검은 마치 그의 말을 이해하는 듯 낮게 진동했다. 검은 기운이 진무의 몸을 감쌌다. 십 년 전, 그는 죽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복수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심장은 이제 뜨거운 피 대신 차가운 증오로 뛰고 있었다.
진무는 흑룡패를 발로 짓밟아 부쉈다. 그의 주변에 남아있던 흑룡파 무사들의 흔적도 검은 기운에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직 진무만이, 마치 이 척박한 땅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 있었다.
그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단 하나였다. 유청이 있는 곳, 흑룡파의 심장부.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칼날이 얼마나 날카로워졌는지, 그리고 자신의 증오가 얼마나 깊어졌는지 유청에게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의 복수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그 누구도 이 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