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흑룡 지하궁의 심부로 향하는 좁은 통로는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청운은 묵묵히 앞장섰다. 그의 발걸음은 돌바닥 위에서조차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갔고, 어둠 속에 숨겨진 작은 함정이나 붕괴 위험 지점을 귀신같이 피했다. 뒤따르던 백운은 투덜거렸다.
“젠장, 이 놈의 지하궁은 끝이 없군. 대체 뭘 찾고 있는 건지,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와서 얻을 게 있기나 한가?”
백운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선 지 벌써 사흘째. 햇빛 한 조각 없는 지하세계는 아무리 강호의 고수라도 정신을 갉아먹는 법이었다.
청운은 고개를 젓는 대신 손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백운은 불평을 삼키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청운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기운의 흐름과 공기의 미동을 읽어냈다.
“좌측 벽, 셋째 돌. 기운의 흐름이 미묘하게 다르다.”
백운은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청운이 가리킨 벽을 보았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빈틈없이 박혀 있는 평범한 벽이었다. 하지만 청운의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위험을 감지해낸 솜씨는 감탄을 넘어 경외에 가까웠으니까.
백운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청운이 지목한 세 번째 돌에 손끝을 대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에 닿았다. 돌처럼 보였던 것은 정교하게 위장된 철문이었다.
“이런… 젠장, 또 속았군!” 백운이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청운은 아무 말 없이 철문의 미세한 틈새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문을 밀어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솜씨였다.
문 뒤편에는 예상치 못한 공간이 펼쳐졌다. 거대한 동굴처럼 보이는 그곳은 일반적인 지하 유적과는 확연히 달랐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희귀한 야광석들이 벽면 곳곳에 박혀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제단이 솟아 있었고, 제단 위에는 기이한 형태의 석상 하나가 좌정해 있었다. 석상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등 뒤에는 날개처럼 보이는 돌기들이 솟아 있었고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듯 표정 없이 무덤덤했다.
“이게… 대체 뭐지?” 백운이 경탄과 경계심이 뒤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청운은 제단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석상을 지나 제단 가장자리에 새겨진 고대 문양에 박혀 있었다. 문양은 기묘한 동물과 식물,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았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이것은… 고대 ‘환영족’의 문양이다.” 청운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지하 세계의 은둔 종족.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니…”
환영족. 수천 년 전, 강호의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전해지는 종족. 그들은 강력한 환술과 지하 세계의 신비로운 힘을 다뤘다고 알려져 있었다.
백운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환영족이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곳에 숨겨진 비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겠군!”
그때였다. 청운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제단 아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을 향했다.
“움직이지 마라.” 청운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긴장감이 서렸다.
백운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그의 검은 이미 손에 쥐여 있었다.
스스스스…
제단 아래 어둠 속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백 마리의 독사들이 한꺼번에 기어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처럼 꿈틀거리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오래된 지하 거미 떼로군.” 청운이 낮게 읊조렸다. 그들의 거대한 몸뚱이는 사람만 했고, 털이 무성한 다리에는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붉게 빛나는 여덟 개의 눈은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두 무림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이런 괴물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백운이 이를 갈았다.
선두에 선 거미 한 마리가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며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청운은 빠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푸른 기운이 피어났다.
“백운, 제단을 지켜라! 저 고대 문양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이 자식, 내게 이걸 다 맡긴다고?” 백운이 소리쳤지만, 그의 검은 이미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며 솟구쳐 오르는 거미 떼를 향해 번개처럼 내리쳤다. 푸른 검광이 어둠을 갈랐다.
청운은 손바닥을 펼쳤다. 푸른 기운이 회오리치며 그의 주변을 감쌌다. ‘청운풍천장(靑雲風天掌)’. 그의 절학이었다. 강력한 내공이 담긴 장풍이 거미 떼의 중심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굉음과 함께 거미 수십 마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지하 거미 떼는 끝이 없었다. 죽어나가는 동족들의 시체를 밟고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게다가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끈끈한 거미줄은 주변의 야광석까지 집어삼킬 듯 뿜어져 나와 시야를 가렸다.
청운은 몸을 돌려 제단 중앙의 석상을 바라봤다. 석상의 눈 부분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그 균열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이 석상이… 이 모든 것의 핵심인가?’
그는 거미 떼의 공격을 피하며 석상을 향해 더 깊이 다가섰다. 백운은 검으로 거미줄을 끊어내고 칼날로 괴물들을 베어 넘기며 청운의 뒤를 지켰다.
“저 석상에 뭐가 있나!” 백운이 다급하게 외쳤다.
청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석상의 눈에 난 균열로 향했다. 그 순간, 석상 전체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강렬해지더니, 주변의 야광석의 빛마저 압도할 정도로 밝아졌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석상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잊지 마라… 잊지 마라… 어둠 속에서 피어난 자들이여…*
정신을 파고드는 듯한 몽환적인 목소리가 청운의 귓가를 울렸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강력한 정신적인 기운이 담긴 메시지였다.
그때, 제단 바닥의 고대 문양들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푸른빛을 뿜어내며 동굴 전체를 휘감았다. 거미 떼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움직임을 멈추고 혼란에 빠진 듯 몸부림쳤다.
청운은 석상의 눈에 손가락을 완전히 밀어 넣었다. 균열은 그의 손을 삼키듯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하지만 완벽하게 보존된 하나의 두루마리였다. 두루마리의 한쪽 끝에는 검은 용이 웅크린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두루마리를 뽑아내자, 석상의 빛은 더욱 격렬하게 폭발했다. 동시에 동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젠장, 무너지는 건가!” 백운이 소리쳤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굴의 벽을 바라봤다. 무수한 거미 떼들이 공포에 질린 듯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청운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흑룡 지하궁은 이제 막 그 진정한 심연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에는,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그 심연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터였다.
그는 두루마리를 펼치려 했지만, 갑자기 동굴 바닥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제단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 사이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솟구쳐 올라왔다.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저건… 또 뭐야!” 백운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가슴에 품고 흔들리는 바닥에 몸을 지탱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지하궁 자체의 심장처럼, 깊고 오래된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것은 살아있는 그림자였다. 거대한 날개가 어둠 속에서 펼쳐지고,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청운을 똑바로 응시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여… 너는 감히 잠자는 자의 꿈을 깨웠으니…*
목소리는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치 지하궁의 모든 돌멩이가 동시에 말하는 듯한 울림이었다. 청운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상대하던 거미 떼는, 이 거대한 존재의 하찮은 수하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가,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그 안의 비밀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려는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