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빛 하늘 아래, 세상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한때는 온갖 소음과 활기로 가득했던 길 위에는 부서진 자동차와 깨진 유리 조각들만이 흩어져 있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스산한 비린내와 썩어가는 흙먼지를 실어 날랐고, 그 바람이 닿는 곳마다 낡은 상점의 간판들이 기괴한 비명처럼 삐걱거렸다. 태양이 뜬 지 한참인데도 도시는 어둠 속에 잠긴 듯 으스스했다.

그 거대한 정적을 깨고, 쩌억, 쩌억. 둔탁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벽제 지식 요새’라고 불리는 옛 대학교 도서관 건물. 높다란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그곳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모여 만든 마지막 보루 중 하나.

도서관 3층 복도. 거친 숨을 몰아쉬는 한 사내가 낡은 해머를 휘둘러 부서진 벽돌을 깨고 있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창문 하나 없는 이곳의 복도는 24시간 내내 낡은 발전기가 돌리는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 어슴푸레했다. 사내의 등 뒤로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살아남고자 하는 맹렬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복도 끝에서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요!”
날카로운 비명은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울려 퍼졌고, 복도를 가득 채우던 쩌억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멎었다. 작업 중이던 사내의 손에서 해머가 툭, 떨어졌다.
모든 시선이 비명이 터져 나온 곳으로 향했다. 2층 의료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의료실 문은 평소에도 굳게 잠겨 있었지만, 지금은 내부에서 무언가로 막힌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에는 의료 담당인 박선영 박사가 벌벌 떨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문이 안 열려요! 김 팀장님이… 김 팀장님이 안에서 대답이 없어요!”

김 팀장. ‘김상훈’. 그는 벽제 지식 요새의 핵심 인물이자, 바깥 세상으로 나가 보급품을 찾아오는 수색팀의 리더였다. 카리스마 넘치고 추진력 강한 성격 덕분에 많은 이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지만, 때로는 거친 언행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의료실에 갇혀 있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은 일제히 굳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이 요새의 실질적인 리더인 이지성 팀장이었다. 굳게 닫힌 문을 한 번 훑어본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스쳤다.
“문이 안 열립니다. 안에서 뭘로 막아놓은 것 같아요. 김 팀장님에게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박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막혀 있다고? 김 팀장이 왜? 젠장, 다들 문 부술 준비해! 망치 가져와!”

몇 명이 달려가 도끼와 쇠지레를 가져왔다. 쿵, 쿵, 쿵. 육중한 문에 도끼날이 박히고 쇠지레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나무와 금속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이어졌다. 한참의 사투 끝에 마침내 문이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문 안쪽에는 낡은 의료용 침대가 겹쳐져 문을 막고 있었다. 침대 몇 개를 겨우 치우고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의료실 안은 의외로 깔끔했다. 멸균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라 평소에도 정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깨끗했다. 창문은 두꺼운 철판으로 안에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할 만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바닥에 쓰러져 있는 김상훈의 시신이 있었다.

그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미동도 없었다. 왼쪽 가슴팍에는 시뻘건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그 피는 바닥의 하얀 타일 위로 끔찍한 검붉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웅덩이 같았다. 그의 옆에는 깨진 주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맙소사…”
박선영 박사가 비명을 삼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지성 팀장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지성 팀장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안에서 문을 막아놓고… 창문도 안에서 잠겨 있고…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어요. 김 팀장님 혼자였습니다.” 한 생존자가 말했다.
다른 생존자가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가리켰다.
“자살입니까? 김 팀장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까?”
누군가의 나지막한 질문에 박선영 박사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에요! 김 팀장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건, 진통제 주사기예요! 자살 도구가 될 수 없어요!”

혼란이 의료실을 집어삼켰다. 바깥 세상은 좀비들로 가득한 지옥이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싸우고 고통받았지만, 최소한 서로를 죽이는 일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직접적인 살인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안전해야 할 요새 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체 누가, 어떻게 김 팀장님을 죽인 거지?”
“범인은 아직 이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이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어! 창문도 마찬가지고! 그럼 김 팀장님이 스스로 죽었다는 말밖에 안 되잖아!”
“하지만 박 박사님 말로는 자살이 아니라고…”

점점 더 격해지는 논쟁과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이지성 팀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요새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 모두에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강태준을 불러와.” 이지성 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강태준이요? 그 사람을 부르자고요?”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도 답을 찾지 못할 거야. 강태준이라면… 강태준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강태준. 요새 사람들은 그를 ‘은둔자’라고 불렀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기 전, 그는 대학교수였다. 범죄 심리학과 행동 분석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과 섞이기보다는 책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에 더 몰두했다. 아포칼립스 이후에도 그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도서관 가장 구석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책과 씨름하며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의 지식은 때때로 요새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곤 했지만, 그의 괴팍하고 냉소적인 성격 탓에 아무도 그와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를 지금 불러야 한다니, 사람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잠시 후, 낡은 코트 차림의 남자가 의료실 문턱에 섰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묘하게도 초점이 흐릿한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듯한 눈이었다.
의료실 안의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그가 나타나자마자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강태준은 아무 말 없이 쓰러진 문과 침대를 한 번 훑어보더니, 천천히 의료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하고 신중했다. 마치 박물관의 유물을 감상하는 학자처럼, 그는 시신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주변을 관찰했다. 바닥의 핏자국, 깨진 주사기, 벽에 걸린 엑스레이 필름, 굳게 막힌 창문, 그리고 천장의 희미한 전등까지. 그의 시선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스캔하는 듯했다.

이지성 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 교수님… 김 팀장님이 살해당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문은 안에서 막혀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자살이거나…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강태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김상훈의 시신을 살짝 건드렸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피해자의 굳은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주저앉아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갑자기,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김상훈의 손.
굳게 쥐어진 오른손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숙여 주먹을 자세히 살폈다. 주먹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무언가 있었다. 강태준은 조심스럽게 그의 주먹을 펴 보려 했지만, 시신은 이미 굳어 버린 상태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핏자국, 주사기, 그리고 굳게 쥐어진 주먹.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방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창문, 문, 천장, 바닥, 그리고 시신…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강태준의 입술이 마침내 열렸다.
“이 방은…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네, 교수님. 그래서 다들 혼란스러운 겁니다.” 이지성 팀장이 답했다.
강태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살이 아니라는 박 박사의 말은 맞습니다. 김상훈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습니다.”
박선영 박사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누가?”

강태준은 의료실 중앙에 서서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범인은…”
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이 안에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순간, 강태준은 싸늘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상훈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 직전, 이 밀실 안에서 살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살해한 존재는 이 방에서 사라졌습니다.”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그의 말이 의료실을 감싼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사라졌다고요? 그럼 범인은 귀신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준은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시신을 가리켰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갔습니다. 아니,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밀실 안에서, 그는 살인을 저질렀고… 증발했습니다. 흔적도 없이 말이죠.”
그리고는 모두를 향해 싸늘하게 덧붙였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밀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고, 김상훈을 죽였으며, 아무도 모르게 이 방을 나갔습니다. 그것도 안에서 잠긴 문과 창문을 뚫고 말이죠.”

그의 마지막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밀실 살인. 그것도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 가장 안전해야 할 요새 안에서 벌어진 불가능한 살인.
강태준은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의 눈빛만이 차갑게 빛나며, 마치 눈앞의 광경 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을 이미 꿰뚫어 본 듯했다.

“그 트릭을 밝혀내야겠군요.”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모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