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잔해 속의 그림자

잿빛 먼지가 가득한 골목길을 미나는 느릿하게 걸었다. 낡은 방독면이 부서진 도시의 비릿한 공기를 겨우 걸러냈지만,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곰팡이와 철근의 녹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찢어진 망토 자락이 그녀의 다리에 휘감기며 삐걱거리는 발걸음을 더욱 위태롭게 했다. 등 뒤에는 하준이 낡은 배낭을 고쳐 메고 잔뜩 움츠린 채 따라오고 있었다. 소년의 작은 그림자가 무너진 건물들의 거대한 그림자에 삼켜질 듯 일렁였다.

“미나 누나, 정말 여기 뭐가 있긴 한 걸까요?” 하준의 목소리가 방독면 안에서 먹먹하게 울렸다. 늘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폐허가 된 메트로 병원에 구호 물자가 남아있다는 소문은 일주일 전부터 떠돌던 것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바닥난 지금, 그들은 이 미친 소문이라도 쫓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의 물병과 부스러진 건빵 몇 조각이 전부였다. 며칠 전부터 하준의 기침 소리가 잦아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닳고 닳은 가죽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한때는 반짝였을 보석은 이제 탁한 유리 조각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그녀의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이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미나가 아직 살아 숨 쉬는 이유.

길게 늘어선 고층 빌딩들은 마치 거대한 뼈대처럼 앙상하게 서 있었다.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텅 빈 눈동자처럼 뚫려 있었다. 어떤 건물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발아래는 깨진 벽돌과 시멘트 조각, 그리고 정체 모를 끈적한 유기물이 뒤섞여 밟을 때마다 눅눅한 소리를 냈다.

“조심해. 이 구역은 ‘그림자’들이 자주 출몰해.” 미나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그림자들은 이 황폐한 세계를 떠도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었다. 형체가 없는 연기 같다가도 끔찍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여 모든 것을 파괴했다.

하준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미나의 뒤로 바싹 붙었다. 소년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지키는 누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미나는 그 믿음이 무겁고 아팠다. 자신조차 제대로 지켜낼 수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저주에 가까웠다.

메트로 병원 건물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병원’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건물 외벽은 검은 덩굴식물에 뒤덮여 있었고, 입구는 거대한 쇳덩이와 시멘트 조각들에 막혀 있었다. 억지로 만든 작은 틈 사이로 습한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병원이라고요?” 하준이 숨을 삼켰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지.” 미나는 팔찌를 움켜쥐었다. 손목에서 희미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냥꾼처럼 예리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너무 조용했다. 이 구역의 공기처럼 눅진하고 불길한 침묵이 그들을 짓눌렀다. 미나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틈새로 먼저 몸을 들이밀었다.

내부는 지독한 악취로 가득했다. 썩은 시체의 냄새, 약품 냄새, 그리고 무언가 눅진한 것이 타는 듯한 역겨운 냄새. 미나는 닳아빠진 휴대용 전등을 켰다. 좁고 가는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자, 길게 찢어진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은 무너져 내려 철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의료기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조심해, 하준. 밟는 것마다 소리가 나.”

하준은 웅크린 채 미나의 뒤를 따랐다. 소년의 심장 박동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미나의 귀에 울렸다.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그들은 문이 반쯤 열린 병실 앞에 섰다. 전등을 비추자 안쪽에서 녹슨 쇠침대가 드러났다. 그 위에는 이불 대신 거대한 검은 덩굴이 뒤덮여 있었다.

“여기까진 그냥 폐허잖아…” 하준이 실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미나의 귀에 아주 작은, 그러나 명확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스스슥.* 마치 거대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였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하준의 팔을 잡아챘다.

“쉿!”

하준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얼굴이 방독면 안에서 하얗게 질렸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복도 저편에서 어둠이 춤을 추는 듯한 기이한 움직임이 보였다. 그것은 그림자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자들이 복도 양쪽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이건 함정이야!” 미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평소의 그림자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그들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기다렸던 것처럼.

미나는 하준을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 망토 아래 손목의 팔찌를 움켜쥐었다. 팔찌의 보석이 붉은빛을 띠며 희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준, 내가 시간을 벌게! 저쪽 문으로 뛰어! 무조건 도망쳐!”

“싫어요! 누나 혼자 둘 수 없어요!” 하준이 작은 몸을 떨며 외쳤다.

“잔말 말고 뛰어! 이건 명령이야!” 미나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림자들의 형체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비늘, 그리고 텅 빈 눈동자가 전등 불빛에 섬뜩하게 빛났다.

*콰아앙!*

미나가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동시에 손목의 팔찌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변신!” 그녀의 몸을 감싸던 낡은 망토와 옷이 빛과 함께 흩어지고, 대신 순백의 전투복과 갑옷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등 뒤에는 날개처럼 빛나는 마법진이 펼쳐졌다. 주변을 밝히는 빛의 힘은 잠시나마 그림자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빛의 검!”

그녀의 손에 거대한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미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가까이 다가온 그림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날카로운 빛의 궤적이 그림자의 몸을 두 동강 냈다.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림자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더 많은 그림자들이 달려들었다.

*콰쾅! 쿠르릉!*

미나의 마법은 화려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효율성만을 추구했다. 그녀는 빛의 검으로 그림자들의 맹공격을 막아내며 하준에게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하준!”

하준은 미나의 외침에 뒤돌아섰다. 틈새로 들어왔던 출구가 막혀 있었다. 하지만 병실 문 저편으로 희미하게 다른 복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소년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미나는 복도 중앙에 서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그림자들을 상대했다. 빛의 검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그림자들을 베어냈다. 그러나 수는 압도적이었다. 그녀의 빛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매번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몸속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반적인 그림자들과는 달랐다. 육중한 몸에 뼈가 튀어나온 팔, 그리고 머리에는 붉게 빛나는 수정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코어’ 그림자였다. 그것은 주변의 그림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했다.

코어 그림자가 거대한 발을 내딛자 병원 건물이 통째로 흔들렸다. 천장에서 먼지와 잔해가 쏟아져 내렸다. 미나는 간신히 몸을 피했다. 코어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을 방패 삼아 미나에게 다가왔다. 놈의 움직임은 느려 보였지만, 한 번 휘두르는 팔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실려 있었다.

“크윽!”

미나는 빛의 검으로 놈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충격파에 의해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손목의 팔찌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코어를 제거해야 해.

그녀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냈다. “집중… 빛!”

미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순식간에 그녀의 빛의 검 끝으로 모여들었다. 검 끝에서 거대한 빛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주변의 그림자들이 그 강렬한 빛에 움찔하며 물러섰다. 코어 그림자도 잠시 주춤했다.

“하아아앗!” 미나는 빛의 구체를 코어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콰콰콰콰앙!*

눈을 뜰 수 없는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이 병원 내부를 뒤흔들었다. 벽이 갈라지고, 천장의 잔해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거대한 코어 그림자는 폭발의 중심에서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주변의 작은 그림자들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미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녀의 변신은 풀리고, 원래의 낡은 옷차림으로 돌아왔다. 팔찌는 탁한 유리 조각처럼 빛을 잃은 채였다.

“미나 누나!”

복도 끝에서 하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잔해를 헤치고 미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아요? 다쳤어요?” 하준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제 도망쳐야 해. 건물이 무너지고 있어.”

그들은 다시 잔해가 쏟아지는 복도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병원 내부가 전체적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붕괴 직전에 이른 것 같았다. 그들은 겨우겨우 병원 뒷문으로 보이는 작은 틈새를 찾아 탈출에 성공했다.

바깥은 회색빛 저녁노을이 깔려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지친 몸을 스쳤다. 미나는 하준의 어깨에 기대어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몸속의 모든 힘이 고갈된 느낌이었다. 물자는 커녕, 겨우 목숨만 부지한 셈이었다.

“이제… 어쩌죠?” 하준의 목소리에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

미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붉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끔찍한 공포였다.

왜냐하면, 방금 전 그들이 겨우 탈출해 나온 메트로 병원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서… 붉게 빛나는 수정 하나가 그들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방금 미나가 파괴했던 코어 그림자의 머리에 박혀 있던 것과 똑같은 형태였다.

코어는… 단 하나가 아니었다. 혹은, 불완전하게 파괴된 코어가 다시 재생하고 있는 것일까.

미나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여정은, 결코 끝날 수 없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잿빛 도시는, 아직도 그들에게 수많은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