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방문객
지훈은 현관문을 닫으며 축 늘어진 어깨를 주물렀다. 늦은 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휘황찬란했지만, 그의 15층짜리 아파트는 고요한 섬과 같았다. 퇴근 후의 고단함은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흐릿한 시야로 천장의 전등을 올려다보자, 미세한 깜빡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그는 애써 불안감을 떨쳐냈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음료 캔을 따서 들이켰다. 잠시 후, 목마름이 가시자 문득 시선이 주방 조리대로 향했다. 어? 저건… 어제 밤에 분명히 소파 옆 컵받침 위에 올려두었던, 그가 아끼는 우주인 캐릭터 머그컵이 조리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가 여기다 뒀던가?’ 기억을 더듬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파 옆 협탁이 맞는 자리였다. 건망증이 심해졌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지훈은 컵을 제자리로 옮겨두고 침실로 향했다. 하루 종일 시달린 머리는 더 이상의 생각을 거부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지만, 이내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딸그락’ 소리.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훈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한번, ‘딸그락’. 마치 숟가락이 유리잔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빈 물컵 하나만이 조리대 위에 놓여 있을 뿐. ‘설마, 쥐라도 들어왔나?’ 안심하려는 듯 고개를 젓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쿵!’ 거실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밤새 잠 못 이루었다.
다음날 밤, 지훈은 샤워 중이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피로를 씻어내는 동안, 욕실 전등이 갑자기 ‘깜빡, 깜빡’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젠장, 또야?’ 전등 스위치를 몇 번이나 껐다 켰지만 소용없었다. 불안한 예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 거실에서 ‘치이익-‘ 하는 거친 잡음이 들려왔다. 그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갑자기 오작동하는 소리였다. 그는 비누칠도 채 끝내지 못한 채 급하게 샤워기를 끄고 욕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거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인공지능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날카로운 잡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숨을 헐떡이며 스피커 전원을 뽑았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잡음이 뚝 끊겼지만, 고요는 더 큰 공포를 몰고 왔다.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가족 사진 액자가 ‘스르륵’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의 눈앞에서. ‘말도 안 돼…’ 지훈은 뒷걸음질 쳤다. 발밑에서 ‘징-‘ 하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이 울리는가 싶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잡동사니들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리모컨, 열쇠 꾸러미… 모든 것이 마치 미약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거실 한복판에 멈췄다. 허공에,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투명하지만 굴절된 빛을 담은 듯한, 이질적인 왜곡. 주변의 가구들이 그 왜곡을 중심으로 미약하게 비틀리는 것 같았다.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건… 뭐야?’
그의 등 뒤에 있던 텔레비전이 ‘띠링!’ 소리와 함께 스스로 켜졌다. 화면 가득 뿌연 백색 잡음(노이즈)만이 가득했다. 그의 얼굴이 공포로 질렸다.
그 순간, 거실의 커다란 책장이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듯 앞으로 기울었다. 책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바닥에 뒹굴었다. 책장 아래쪽 나무 다리가 바닥에서 ‘삐걱’ 소리를 내며 2cm가량, 아니, 분명히 2cm가량 *들려* 올라갔다.
지훈의 입에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거대한 책장이 중력을 거부하듯 허공에 떠오르는 기이한 현상.
그리고 그 일렁이는 왜곡의 중심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가 ‘지이잉-‘ 하는 낮은 진동음을 내며 확장되는 듯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문이 열리는 것처럼.
지훈은 숨을 멈췄다. 그의 아파트가, 그의 세상이, 지금 막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침식당하고 있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그 왜곡 속으로 천천히 시선을 고정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것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었다.
이것은… 침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