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소리가 먹먹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훈의 램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광이 겨우 몇 발짝 앞을 비출 뿐이었다. 벽은 축축한 이끼와 알 수 없는 검붉은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은 아카데미 지하에 존재한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살아 숨 쉬는 지옥의 입구 같았다.
“이봐, 지훈.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아.”
민서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녀의 손에서 피어난 보랏빛 섬광이 주위를 스쳤지만, 불안정한 공기 탓인지 금세 흩어져 버렸다. 현우는 낡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벽에 바싹 붙어 걷고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퀘퀘한 흙냄새와 함께 비릿한 금속 향이 났다.
“느껴져. 이 아래에 뭔가가 있어. 우리가 찾던 것… 아니, 우리가 찾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게.” 지훈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마력 감지 능력이 이곳에선 통증처럼 울렸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지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불쾌한 진동.
갑자기 천장에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졌다. 민서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땅에 떨어진 것은 바스러진 뼈 조각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그러나 분명 인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런… 제기랄.” 현우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 아카데미가 자랑하던 ‘안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민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린 그저 지하 도서관의 낡은 기록에서 단서를 찾았을 뿐인데…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지훈은 뼈 조각을 무심하게 발로 툭 밀었다. “안전은 환상이야, 민서. 특히 마법사들에게는 더더욱. 이 아래에 잠들어 있는 것이 아카데미의 근간을 뒤흔들 힘을 가졌다면, 그들은 아마 모든 것을 숨겼을 거야. 아니, 숨기려고 했을 거야.”
그들이 나아가던 통로는 점차 넓어지더니, 이내 거대한 동굴로 이어졌다. 마법 램프의 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압도적인 어둠. 동굴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제단 같은 것이 솟아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바위 덩어리였지만, 지훈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저거… 뭐야?” 현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제단 주변의 바닥에는 정체불명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겹겹이 이어진 기하학적인 도형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 형상이. 그 얼굴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듯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갈망을 드러내는 듯했다.
지훈이 조심스럽게 제단에 다가갔다. 표면은 차갑고 매끄러웠지만, 그의 손이 닿자마자 섬뜩한 한기가 손끝에서부터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는 공간만이 존재할 뿐.
“아니… 아니야.” 지훈의 눈이 빠르게 제단 주변을 훑었다. “비어 있는 게 아니야. 여기에 뭔가가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거야.”
그 순간, 동굴 안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쉬이이익… 스스스…’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떼 지어 기어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동시에 거대한 뱀이 몸을 비트는 소리 같기도 했다.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며 피부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을 주었다.
민서가 비명을 삼켰다. “뭔가 오고 있어! 느껴져, 지훈! 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형태를 갖추려고 해!”
지훈은 즉시 마법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푸른 마력이 그의 손끝에서 빠르게 응축되기 시작했다. “현우, 민서! 제단 뒤로! 빨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붉은 눈 두 개가 번뜩였다. 그 눈은 단순한 동물의 눈빛이 아니었다. 수천 년의 증오와 원한, 그리고 굶주림이 응축된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악의가 담겨 있었다.
**콰아앙!**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제단 주변의 벽에서 낡은 비문들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묘한 고대 문자들이 붉은 빛으로 번뜩이며 지훈의 눈에 들어왔다. 그 문자들이 새겨진 방식은 마치 살갗을 찢어내어 파낸 듯,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마나… 갈망… 흡수… 봉인… 실패…’
듬성듬성 읽히는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카데미 지하에 잠들어 있는 것의 정체에 대한 섬뜩한 단서들.
“젠장! 벽이 무너지고 있어!” 현우가 소리쳤다. 그들이 숨어 있던 제단 뒤쪽 벽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균열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단순한 흙먼지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 주위의 마법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지훈의 램프 빛이 희미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민서의 보랏빛 마법도 힘을 잃고 잔상처럼 흩어졌다.
“안돼…! 마력이… 사라져!” 민서가 절규했다. 그녀의 얼굴은 공포로 창백해졌다.
지훈은 팔을 뻗어 민서와 현우를 자신의 뒤로 밀어 넣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검은 안개는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땅에 뿌리내린 금기의 정수, 마나를 먹어치우는, 존재해서는 안 될 재앙 그 자체였다.
붉은 눈의 존재는 이제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 뒤틀린 팔다리, 그리고 찢어진 비문 속에서 보았던 그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 형상. 그것은 제단 위에 솟아오른 바위 덩어리와 묘하게 겹쳐 보였다. 마치 제단 자체가 저 괴물의 일부인 것처럼.
“숨을 참아!” 지훈이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비록 주변의 마력이 흡수당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인 힘을 쥐어짰다. 그의 손에서 푸른 마력의 구체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뿜어져 나왔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해!”
그러나 검은 안개는 이미 그들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붉은 눈의 괴물이 피식, 웃었다. 찢어진 비문이 새겨진 벽은 마침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르릉!**
그 너머에서 펼쳐진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다.
수많은 뼈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고, 뼈들 사이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의 근원에는… 끔찍하게 말라붙은 시체들이 무수히 매달려 있었다. 그 시체들은 모두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선배들과 교수들의 흔적이었다.
금기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차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