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 아래, 삐걱이는 금속음이 정적을 갈랐다.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햇빛은 먼지 낀 공기를 가로지르며 춤을 추는 작은 입자들을 드러냈다. 진은 허리춤의 만능 공구함을 다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얽히고설킨, 마치 금속의 거인이 쓰러져 잠든 듯한 폐공장의 잔해였다.
“세라, 이쪽이야.”
진이 낡은 증기압력계가 달린 벽을 가리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잔뜩 메마른 공기 속에서 맥없이 흩어졌다. 뒤따르던 세라는 고글 너머로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낡은 가죽 재킷은 곳곳이 해지고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그 아래 감춰진 몸놀림은 짐승처럼 날렵했다.
“확실해? 어제 탐사팀이 이 주변을 돌았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고.”
“탐사팀은 이걸 못 찾았을 뿐이야. 폐기물 처리 공정 기록을 보면, 이 구역 깊숙이 숨겨진 ‘핵심 증기 압축 밸브’가 있다고 분명히 나와 있었어. 우리 정화탑에 필요한 마지막 부품이라고.”
진은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얇은 빛줄기가 금이 간 콘크리트 바닥과 그 위에 쌓인 재를 비췄다. 발밑에서 눅눅한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곳의 공기는 다른 폐허보다 훨씬 무겁고, 금속이 썩어가는 듯한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시간이 없어, 진. 스키머 동력원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 이틀 내로 기지로 돌아가지 못하면…”
세라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서렸다. 식수 정화탑은 이미 낡아빠진 필터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핵심 증기 압축 밸브 없이는 작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물은 곧 생명이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지만,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들은 좁은 통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뼈대만 남은 채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오래된 산업 기계의 잔해들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그림자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 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강철문은 녹슬어붙어 있었지만, 그 견고함은 여전해 보였다. 진은 문에 귀를 기울였다. 미세한 떨림, 오래된 기계 장치가 마모되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뭔가 작동하고 있어.”
“안에서? 폐허가 된 지 수십 년인데?”
세라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문을 노려봤다. 진은 만능 공구함을 열어 특수 제작된 커터를 꺼냈다. 밸브를 돌리고, 조심스럽게 문틈에 커터를 밀어 넣었다. 끽끽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철문이 안쪽으로 삐걱이며 열렸다. 후텁지근한 열기와 함께 찌릿한 오존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들 앞에는 놀랍게도 작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기계가 웅장하게 서 있었고, 그 옆으로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와 밸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심장부에는, 진이 찾던 ‘핵심 증기 압축 밸브’가 영롱한 금속 광택을 뿜어내며 박혀 있었다.
“찾았다…!”
진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스쳤다. 그는 서둘러 밸브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콰앙!**
갑작스런 증기 분출음과 함께 바닥이 진동했다. 진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철문이 열리면서 생긴 공기의 흐름 때문이었을까. 공간 한쪽 구석, 거대한 원통형 기계 옆에 방치되어 있던 낡은 ‘수호기’가 깨어난 것이다. 닳아 빠진 강철 외피에는 붉은 녹이 슬어 있었지만, 두 개의 기계 눈에서 섬뜩한 붉은빛이 번쩍였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 마모된 유압 실린더가 움직이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다.
“젠장! 저게 아직도 살아있었어?”
세라가 즉시 어깨에 메고 있던 압축 공기총을 겨눴다. 총구에서 작고 날카로운 금속 탄환이 발사되었지만, 수호기의 강철 외피에 튕겨 나갔다. 둔탁한 금속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수호기는 느리지만 멈출 줄 모르는 움직임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거대한 두 개의 팔이 서서히 올라오며 날카로운 집게발을 드러냈다.
“공격하지 마! 저건 무력화시켜야 해! 핵심 부품을 노려!”
진은 외치며 밸브 쪽으로 달려갔다. 시간은 없었다. 그는 손에 든 공구로 밸브 주변의 고정 장치를 재빠르게 풀기 시작했다. **징, 징, 징!** 공구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절박하게 울렸다.
**콰직! 쾅!**
수호기의 집게발이 진이 방금 서 있던 자리를 으스러뜨렸다.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진은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했다. 열기와 함께 기계 기름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진! 빨리!”
세라가 다른 방향에서 수호기의 다리 부분을 공격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수호기는 방향을 틀어 다시 진을 향해 거대한 집게발을 휘둘렀다.
진은 이를 악물었다. 손놀림을 더욱 빠르게 했다. 마지막 고정 장치가 풀리는 순간, 진은 온 힘을 다해 밸브를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밸브가 뽑히면서 압축된 증기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기계 전체가 흔들렸다.
“됐어! 가자!”
진은 뜨거운 밸브를 겨드랑이에 끼고 세라에게 소리쳤다. 뽑힌 밸브 때문에 수호기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마치 전원이 끊어진 것처럼 기계음이 불안정하게 바뀌었다. 그 틈을 타 진과 세라는 열린 철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우우우웅… 쾅! 콰르르르…**
그들이 막 문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밸브가 뽑히면서 기계 내부의 압력이 폭주한 것이다. 폐공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천장에서 낡은 철근과 콘크리트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서둘러! 무너지고 있어!”
세라가 진의 손을 잡고 폐허 밖으로 전력 질주했다. 그들의 공중 스키머는 먼지 구름 속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스키머는 엔진이 간신히 작동하는 상태였다. 진은 밸브를 조심스럽게 좌석에 내려놓고, 세라는 스키머의 시동 레버를 힘껏 당겼다.
**푸우우우웅-!**
마지막 남은 동력을 쥐어짜듯, 스키머가 굉음을 내며 지면에서 떠올랐다. 폐공장이 거대한 먼지 구름과 함께 붕괴하는 것을 뒤로하고, 그들은 필사적으로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스키머는 삐걱거렸고, 엔진에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폐허 위로, 잿빛 하늘 아래, 그들의 스키머는 마치 먼지 속을 헤쳐 나가는 작은 벌레처럼 힘겹게 날아갔다. 진은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완전히 무너져 내린 폐공장의 잔해들. 그 속에서 그들이 겨우 얻어낸 밸브 하나가, 차가운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희망처럼 느껴졌다.
“기지로 돌아가야 해. 이 밸브 하나로… 모두가 살 수 있을 거야.”
진은 끓어오르는 엔진 소리 속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보였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위협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은, 곧 모두의 생존이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진은 고글을 고쳐 썼다. 또 다른 새벽이 오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 나아가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