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균열의 그림자)

차가운 금속의 숨결이 폐부를 파고들었다. 카엘은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우주선 ‘어둠칼날’의 흐릿한 창밖으로 쏟아지는 별빛들을 응시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수많은 태양들. 저 광활한 심연 어딘가에, 지온이 있었다. 한때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이제는 이 심장에 뜨거운 복수의 불씨를 지핀 배신자.

손가락 끝이 조종간의 차가운 표면을 무의식적으로 더듬었다. 3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잔상은 여전히 어제처럼 생생했다. 귓가에 맴도는 폭발음, 동료들의 절규, 그리고 자신을 조롱하듯 바라보던 지온의 눈빛.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 동료, 심지어 존재 자체마저 지워질 뻔했다.

“목표 지점까지 12 광년. 현재 속도 유지 시 4시간 37분 소요 예정.”

조종석 상단에 매달린 작은 모니터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엘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예정대로 진행해.”

낮게 깔린 목소리엔 감정이 없었지만, 그 속에는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분노가 숨 쉬고 있었다. 어둠칼날은 멸망한 옛 문명에서 발굴된 초소형 스텔스 정찰선이었다. 겉모습은 낡고 투박했지만, 내부는 카엘이 직접 개조한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했다. 적의 모든 센서망을 농락할 수 있는 은신막과, 단일 목표만을 노린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내는 ‘밤의 송곳니’ 포대까지. 오직 지온을 찾아내기 위해,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태어난 기함이었다.

목표 지점은 연합의 통제에서 벗어난 변방 구역, 이른바 ‘망자들의 묘지’라 불리는 소행성대였다. 지온이 최근 그곳에 비밀 기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헛된 정보일 수도 있었지만, 카엘은 단 하나의 실마리라도 놓치지 않았다.

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어둠칼날은 소행성대에 진입했다. 수십억 개의 바위덩어리들이 촘촘하게 박힌 거대한 미로. 연합군도 감히 발을 들이기 꺼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카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는 이런 혼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먹잇감을 추격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탐지 범위 내에 총 세 척의 반응. 모두 구형 ‘해머헤드’급 초계정입니다. 식별 코드 미상.”

시스템의 보고에 카엘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해머헤드급 초계정은 연합군에서 10년 전에 퇴역한 모델이었다. 지온이 그 낡은 함선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건, 그가 예상보다 더 깊이 숨어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유인하고 있을 가능성을 의미했다.

“은신막 전개 유지. 접근 각도 조절. 저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소행성 뒤로 돌아가.”

카엘의 지시에 따라 어둠칼날은 소리 없이 궤도를 수정했다. 시커먼 바위덩어리들 사이로 유령처럼 미끄러져 들어가는 함선. 그의 움직임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거대한 포식자와 같았다.

초계정 세 척은 거대한 소행성의 한 면을 순회하고 있었다. 그곳은 자연적인 지형이 아니라, 무언가 인위적인 구조물이 가려진 곳 같았다.

“잠시 후 소행성 그늘에 진입합니다. 모든 센서 출력 일시 정지.”

“좋아.”

카엘은 심호흡을 했다. 그의 손이 조종간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은신막이 완벽하게 작동한다 해도, 만에 하나라도 발각될 위험은 있었다. 그럴 경우,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밤의 송곳니’를 가동할 생각이었다.

어둠칼날이 소행성의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코앞에 거대한 입구가 드러났다. 인공적으로 파낸 통로, 거대한 우주 정거장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과연 지온다웠다. 이런 곳에 거점을 세울 줄이야.

“경고! 근접 거리에서 미확인 기체 감지! 은신막 가동 중…!”

시스템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경보음이 조종석을 가득 채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초계정들은 이곳을 경비하는 함선이 아니었다. 진짜 경비는 따로 있었다.

콰앙! 콰광!

두터운 은신막 너머로 강력한 에너지파가 어둠칼날을 강타했다. 방어막이 요동쳤다. 이런 은신 특화 함선에겐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적이 소형 함선 두 대입니다! 기종은… ‘사냥꾼’급 고속 공격정!”

사냥꾼급 공격정은 최신형으로, 은신 탐지에 특화된 센서를 장착하고 있었다. 지온이 이런 함선을 운용하고 있을 줄이야. 그의 첩보망은 역시나 녹슬지 않았다.

“은신막 해제! ‘밤의 송곳니’ 조준, 발사!”

카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은신이 들통난 이상,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방어막이 파괴되기 전에 적을 제압해야 했다. 어둠칼날의 선체 양옆에서 거대한 포신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푸른빛 에너지가 포신 끝에서 응축되기 시작했다.

“타겟 록온 완료! 발사!”

쉬이이잉- 콰앙!

두 줄기의 푸른 광선이 소행성대의 어둠을 갈랐다. 고속으로 돌진하던 사냥꾼급 공격정 한 척이 정확히 광선을 맞고 산산조각 났다. 조종석 너머로 폭발의 잔해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은 적 한 대! 회피 기동 중입니다!”

카엘은 조종간을 틀어 어둠칼날을 격렬하게 회전시켰다. 맹렬히 날아오는 적 공격정의 에너지파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그는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의 눈은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하고 있었다.

“후방 센서에 반응 감지! 새로운 적입니다! 대형함, 기종 불명! 초광속 도약 중입니다!”

시스템의 다급한 경고에 카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럴 리가 없었다. 이 소행성대는 지온의 비밀 거점일 뿐, 그를 막아설 만한 대형함이 상주할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방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분명 거대한 그림자였다. 심연을 찢고 나타난 거대한 전함의 윤곽.

“젠장… 이건 함정이었나…?”

카엘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대형함의 함교에서 거대한 주포가 어둠칼날을 향해 조준되는 것이 보였다. 압도적인 화력,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때, 함선 내부에 설치된 비상 통신망이 울렸다.

‘연결 요청. 수신하시겠습니까?’

카엘은 잠시 망설였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이라니. 누가 감히?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통신이 누구로부터 왔는지.

“수신해.”

정면에 홀로그램 영상이 떴다. 3년 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아니, 더욱 오만하고 비열해진 지온의 얼굴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경멸에 찬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랜만이군, 카엘. 죽은 줄 알았던 네가 이렇게 기어 나올 줄이야. 설마 내가 널 잊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카엘의 주먹이 조종간을 강하게 내리쳤다. 분노가 그의 혈관을 타고 끓어올랐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지금 당장 저 자의 목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때가 아니었다.

“네놈의 목숨을 거두러 왔다, 지온.”

카엘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온은 카엘의 반응에 비웃었다. “여전히 허세만 가득하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앞에서 네 허세는 통하지 않아. 이번에도 역시… 네가 패배할 차례다. 저 망자들의 묘지에서 영원히 잠들도록 해.”

지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형 전함의 주포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에너지포가 어둠칼날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왔다.

“회피! 회피 기동!”

시스템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어둠칼날은 소형 스텔스함이었다. 저런 대형함의 주포를 피할 수는 없었다. 카엘은 마지막 순간, 조종간을 거칠게 틀었다. 어둠칼날의 엔진이 한계까지 비명을 질렀다.

쾅!!!!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함선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시스템이 경고음을 토해냈다.

‘방어막 파손! 선체 균열 감지! 주엔진 출력 27%로 저하!’

카엘은 의식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의 눈은 흔들리는 지온의 홀로그램을 꿰뚫어 보았다. 지온은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크… 흐…!”

카엘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을 담고 있었다.

‘시스템, 최후의 프로토콜 가동! 모든 잔여 에너지, 초광속 도약에 집중시켜!’

“위험합니다! 현재 선체 상태로는 도약 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지금 당장!’

카엘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지온의 비웃음 속에서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둠칼날의 모든 동력이 후방 엔진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함선 전체가 붉은빛으로 번쩍였다. 전함의 주포가 재장전을 마치고 다시 어둠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지온의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만하면 됐어, 카엘. 이제 편히…!”

지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칼날은 거대한 섬광을 내뿜으며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것이 사라진 정적 속에서, 지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망쳤나? 끈질긴 놈… 하지만 다음은 없을 거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했다. 카엘의 복수심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남은, 유일한 존재의 이유였다. 심연 속으로 사라진 어둠칼날은, 이제 막 진정한 복수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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