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잿빛 먼지가 덮인 도시, 흉물스럽게 찢긴 고층 빌딩 사이로 붉은 노을이 피처럼 번졌다. 지훈은 망가진 상점가의 잔해 속에서 겨우 몸을 웅크렸다. 왼쪽 옆구리에서 지혈되지 않는 피가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찢어진 옷 위로 손을 얹어봐도 피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낡은 복면으로 가린 입술 새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바깥에서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인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짐승과 기계음이 뒤섞인 듯한 소리. 이 도시에 사는 ‘그들’의 소리였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으면 그들에게 발각될 터였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벽에 기댄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밤을 맞으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현수.
믿었던 친구의 이름.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오직 서로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그 이름.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

두 달 전, 폐허가 된 도시의 외곽.
우리 셋은 간신히 버려진 지하 벙커를 찾아냈다. 나, 현수, 그리고 동생처럼 아끼던 수아.
벙커 안은 예상외로 멀쩡했다. 낡았지만 작동하는 정수 시설, 통조림과 건조 식량, 심지어 몇 권의 책과 손전등까지. 우리는 마치 천국을 발견한 듯 기뻐했다. 사흘 밤낮을 달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이젠 살았어! 지훈아, 우리가 해냈어!”
현수는 감격에 겨워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의 얼굴은 햇살 아래 활짝 핀 꽃처럼 환했다. 며칠간 쌓였던 피로와 긴장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안도감에 그저 웃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 현수야. 수아도.”
수아는 낡은 담요를 끌어안고 벙커 구석에 앉아 잠시 동안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작은 어깨를 보며 우리는 다짐했다. 이 아이를 지키겠다고.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그로부터 일주일. 우리는 벙커를 정비하고, 주변을 탐색하며 보급품을 모았다. 나름대로 역할 분담도 했다. 나는 주로 바깥 탐색을 맡았고, 현수는 벙커 내부 관리와 수아를 돌보는 일을 했다. 현수는 손재주가 좋았고, 수아는 현수를 친오빠처럼 따랐다. 나는 내 몫의 일을 해내고 돌아와 현수와 수아가 함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이 차올랐다. 이 셋이라면, 어떤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문제는 벙커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작은 금고였다.
그 안에는 예상치 못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낡은 권총 한 자루, 그리고 한 뭉치의 지폐. 지금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이 쪼가리였지만, 그와 함께 들어있던 USB 하나가 우리를 흔들었다.

“이게… 뭔데?” 현수가 손전등 불빛 아래 USB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옆에 있던 낡은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다행히 노트북은 전원이 들어왔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지도 파일이었다.
“지도…?” 내가 중얼거렸다.
그 지도는 우리가 아는 어떤 지도와도 달랐다. 기존 지형과 맞지 않는 알 수 없는 표식들, 그리고 몇 군데가 붉은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그중 한 곳이 우리가 있는 벙커였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생존자들의 피난처’라는 문구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좌표까지 정확하게.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현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는 탐욕과 동시에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우리도… 저기로 갈 수 있을까?” 수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부터 균열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매일 밤 그 지도에 대해 토론했다. 수아는 희망을 품고 피난처로 가자고 졸랐고, 나는 이곳에서 더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벙커는 완벽한 은신처였지만, 외부 탐색은 언제나 위험했다.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현수는 양쪽의 의견을 듣는 척했지만, 점차 피난처 쪽으로 기우는 듯 보였다.
“지훈아, 어차피 여기서 계속 자급자족하는 건 한계가 있어. 언젠간 식량도 떨어질 거고, 기구들도 낡을 거야. 저 피난처가 진짜라면, 우리에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어.”
나는 불안했다. 미지의 장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현수의 눈빛이 낯설었다. 늘 함께 모든 것을 나누고, 나를 형처럼 따르던 현수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이득을 계산하는 차가운 빛이 스치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벙커 근처를 탐색하던 중 나타났다.
우리는 대규모 ‘그들’의 무리와 마주쳤다.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아 제대로 싸울 수도 없었다. 지훈이 맨 앞에서 싸우며 길을 열고, 현수가 뒤에서 수아를 이끌며 달렸다.
좁은 통로를 지나던 중, 나는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찢어진 철근이 옆구리를 꿰뚫는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지훈아!” 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현수는 뒤돌아 나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혼란과 함께, 이내 차갑게 굳어졌다.
“현수야… 수아 데리고 먼저 가… 난…”
“아니야, 오빠! 같이 가야지!” 수아가 내게 달려들려 했지만, 현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수아, 안 돼! 저기 봐!” 현수가 뒤편을 가리켰다. 거대한 덩치의 변형체가 우리의 비명소리를 듣고 다가오고 있었다. “지훈이 형, 미안해… 우리가 여기서 같이 죽을 순 없어.”
현수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설마 하는 마음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현수야…?”
“이건 우리 셋 모두를 위한 거야.”
그는 내게 다가와, 굳어버린 표정으로 낡은 권총 한 자루를 내 옆에 던졌다.
“버텨봐, 형.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그의 눈빛은 미안함이 아니었다. 절박한 생존 본능,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열함.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는 나를 버리려는 것이었다. 나를 장애물로 삼아, 수아와 함께 새로운 피난처로 가려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그는 모든 것을 독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현수야! 안 돼! 오빠!” 수아의 울부짖음이 찢어지는 비명처럼 귓가를 때렸다.
현수는 수아의 몸을 억지로 끌고 통로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의 등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피로 물든 내 시야 속에서, 수아의 작은 손이 허공을 휘젓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떠났다.
나를, 지옥 한가운데 버려두고.

***

“크윽…!”
옆구리의 상처가 다시 한번 지끈거렸다. 그때의 고통, 그리고 그보다 더 깊었던 배신의 상처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했다. 현수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건 우리 셋 모두를 위한 거야.’
개소리였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나를 제물로 바쳤다. 수아를 이용해 죄책감을 덜었을 뿐이다.
나는 그 지옥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품고.

두 달 동안, 나는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폐허 속에서 사냥하고, 숨고, 싸웠다. 온몸의 상처는 훈장처럼 박혔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증오심이 나를 지탱했다.
그들의 목적지, ‘생존자들의 피난처’. 현수는 틀림없이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수아와 함께,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묘하게 변했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잠시 멈춘 자리에,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아니, 저건…
나는 바닥에 박힌 낡은 거울 조각을 들어 조심스럽게 건너편 거리를 비춰보았다.
먼 거리에서 빛 한 줄기가 깜빡였다. 누군가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그 옆으로 낡은 짚차 한 대가 서 있고, 몇몇 사람들이 짐을 싣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이 눈에 익었다. 내가 폐허를 떠돌며 간신히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피난처를 오가는 보급부대였다.

드디어 찾았다.
피난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보급부대. 현수가 있을 곳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길.
내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엉망으로 찢긴 옷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었다.
“현수야… 기다려라.”
피와 증오로 얼룩진 맹세가 폐허 가득 울리는 듯했다.
“네가 내게서 뺏어간 모든 것을, 내가 너에게서 되찾아 줄 테니.”

지훈은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몸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